성북동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가져온 '보령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야기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면서 새로 한 일 중 하나가 집 이름 짓기다. 카피라이터 윤준호 선배(시를 쓸 때는 윤제림)의 '재춘이 엄마'라는 시처럼 누군가의 이름을 짓는다는 건 거기에 짓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는 뜻이다. 아내는 성북동 꼭대기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집 이름 좀 지어봐. 당신은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만날 남의 카피 써주고 네이밍만 했으니 이젠 우리를 위해 아이디어를 낼 때도 됐잖아."라고 나를 독려했다. 아내가 뭔가 시키면 잘하든 못하든 일단 열심히 하는 척을 하는 나는 그날부터 끙끙대며 집 이름 아이데이션에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해 며칠 만에 생각해 낸 것이 '성북동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었다. 작을 소(小) 다행 행(幸) 별 성(星)을 써서 '작지만 행복한 별'이라는 뜻을 담았으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살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 B-29'와는 다른 개념이었지만 아무튼 대지 27평에 건평 13평짜리 장난감 같은 집엔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우리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살면서 친구들을 많이 초대했다. 성북동의 좁고 높은 골목을 한참 올라와야 겨우 닿는 집이었지만 막상 오면 따뜻한 밥이 있고 많은 술과 간단한 안주가 있으니 오는 사람마다 보람을 느끼며 좋아했다. 대학로와 가까운 성북동이라 연극배우나 뮤지션, 극작가 같은 예술가 손님들이 많았고 우리 집은 자주 그들의 위한 작은 식당이나 술집 역할을 했다. 물론 돈은 받지 않았지만 말이다. 거실이 좁다 보니 옥상 파티 장소를 자주 했는데 오래된 산동네라 볼 건 별로 없었지만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는 야경이 기가 막혔다. 우리의 이런 일상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공개되었고 우리도 모르게 '퍼스널 브랜딩'이 되었다. 나중에 전철역 근처의 한옥에 반해 급히 계약부터 하고 살던 집을 내놓았을 때 세 시간 만에 팔린 것도 그런 유명세(?)의 결과였다.
집을 구입한 분이 당장 살 수 없는 입장이라 전세를 놓았는데 그렇게 해서 들어온 세입자가 연기자 임세미 씨였다. 부모 슬하를 떠나 처음 독립하는 집이라 좀 특이한 곳을 찾다가 우리 집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라 했다. 처음 인사를 한 날 마침 세미 씨가 서강준과 함께 출연하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찍고 있다고 하길래 드라마 연출자 한지승 감독이 중학교 동창이라고 했더니 금세 친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아래에 있는 한옥을 수리해 내려갈 때 집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지고 내려가려고 하니 세미 씨는 "아니,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지고 내려가시면 어떡해요?'라고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또 며칠 아이데이션을 해서 시소당(始笑堂)이라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지었다. 시작할 始 자와 웃을 笑 자를 써서 '웃음이 시작되는 집'이란 뜻이었다(시소처럼 균형을 잘 잡고 살라는 뜻도 있었다).
그리고 또 4년이 지나 보령으로 내려와 원도심에 있는 낡은 주택을 또 고치고 있으려니 8년 전 고민하던 날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이름을 지었듯 보령에서도 이 집에 맞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 보령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하느라 서울에 마련한 작은 월세 빌라는 이미 '금월당'이라 지어 놓았다(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주로 머무는 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몇 달을 생각해도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브런치 매거진의 제목 '보령에서 집을 고쳐 보령'처럼 고장의 이름을 이용해 지으려고 했으나 '와보령' '해보령' 같은 일차원적 조합 말고는 더 이상 생각이 더 뻗어 나가지 않았다.
이럴 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시 차분히 생각해 보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생각보다 컸다. 성북동의 첫 단독주책과 마찬가지로 이 집도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니 '작지만 행복한 별'이라는 뜻은 아직 유효하고 또 그게 아내와 나의 모토이기도 했다. '그래, 엉뚱한 데서 헤매지 말고 '보령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라 하자.' 이렇게 마음먹고 아내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여보, 보령 온라인 카지노 게임 어때?" 아내도 좋다고 했다. 역시 우리는 잘 맞는다. 나는 개운해진 마음으로 이제 네이밍의 고민에서 해방되었으니 술을 한 잔 하자고 외쳤다. 그러나 아내는 나를 제지하고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 되더니 "근데 이번엔 문패를 어떤 식으로 만들까? 한 번 생각해 봐. 아이디어를 내보라고."라고 채근하는 것이었다. 기획자와 사는 건 역시 힘들다. 이번엔 문패를 나무 말고 다른 재질로 해볼까, 캘리그라피는 어떤 식으로 쓰는 게 좋을까...... 또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