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에 앉아 책방지기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책방지기의 어머님이 오셨습니다. 같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어머님이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시더라고요. 매달 보름달이 뜰 때 송악산 둘레길을 걷는 모임이 있다고 말이에요. 달과 함께 밤길을 걷다니, 정말 낭만적이지 않나요?
보름달이 뜨는 날, 시간 맞춰 송악산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오늘은 길을 나서기 전에 특별 공연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7시가 지나자 송악산 비석 앞에 전통 한복을 입은 분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음악에 맞춰 무용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거 걷는 모임이라고 하지 않았어?”
춤사위를 보던 엄마가 저에게 귓속말로 소곤댔습니다. 저도 아는 바가 없어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거렸습니다. 이 모임의 오랜 멤버로 보이는 분들은 ‘좋다!’, ‘잘한다!’를 외치며 흥을 돋웠죠. 축하 공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 분은 북을 치고 한 분은 노래를 부르시더라고요. 혹시 내가 잘못 온 건가 싶은 찰나에 책방지기의 어머님이 등장하셔서 이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걷자고 하십니다. 알고 보니 모임 멤버분들이 재능 기부로 행사 전 공연을 하신 거래요.
사람들과 함께 송악산 둘레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아쉽게도 구름이 많이 껴서 달이 밝지 않았지만, 시야가 어두워지자 오히려 청각과 발바닥의 촉각이 더 섬세해지더라고요. 중간중간 멈춰 서서 송악산에 관련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어요. 송악산이 외국 자본에 넘어갈 뻔한 일과 송악산 곳곳에 숨은 동굴에 숨은 역사 같은 이야기들이요. 그렇게 걷다 보니 전망대까지 왔습니다. 구름 사이로 보름달이 살짝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물결 위로 희미한 달빛이 일렁거렸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방산의 실루엣을 보고 있는데(산방산 앞에 조명이 은근히 많더라고요. 뭐 하는 곳일까요?) 제가 서 있는 곳의 맞은편에 가파도와 마라도가 있다는 거예요. 육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등대가 깜빡깜빡하고 불빛을 보내고 있었어요.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습니다. 숲 속으로 들어가자 높은 나무에 달이 가려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서 걷는 누군가가 켜놓은 스마트폰 플래시가 거슬렸어요. 그 빛이 우리를 감싼 포근한 어둠을 찌르는 것만 같았거든요. 새 우는 소리, 바람 소리, 내 곁을 지나가는 반딧불이도 우리의 길동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둘레길을 걸어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이후로도 몇 번 더 보름달이 뜨는 밤에 송악산을 다녀왔습니다. 구름이 없어서 정말 달이 우리의 등불이 되어준 적도 있었지만, 바람 소리에 옆 사람의 말도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도시에 살면 인공 불빛이 밝아서 달빛의 위력을 느낄 새가 없지만, 보름달이 뜰 때 달빛에 그림자가 생긴답니다. 달에 의지해 사막을 건넜던 고대 수메르인들은 달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했대요. 저는 사막을 건너는 수메르인, 과거 시험을 보러 늦은 밤 산을 넘는 선비를 상상하며 송악산을 걸어봅니다. 달이 없었다면 지구인의 밤은 어땠을까요.
유일하게 아쉬운 건, 보름달이 뜰 땐 달이 워낙 밝아서 하늘의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언젠가는 별을 보며 사람들과 함께 오름을 걸어보고 싶어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로 북극성을 찾고 별자리를 그려보고 싶어요. 별똥별도 보면 더 좋고요! 우선은 보름달과 함께 송악산을 더 걸어보려 합니다. 궁금한 분들은 보름달이 뜨는 날 저녁 7시, 송악산 주차장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