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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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Dec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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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카지노 게임

처음 병실 문이 열리는 순간 우아한 진한 남색 롱 가운이 보였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창가 자리에 누군가의 흔적이 있는 침대와 커다란 여행가방 두 개가 있었다. 간호사는 수건과 환자복을 건네주며 이런저런 설명을 했고, 병실에 딸린 화장실에서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나왔다.


미국에 자주 간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영어를 잘했다.코로나 시대가 시작된 이후로는 아직 못 가고 있고, 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엉덩이뼈 수술을 받았으며, 금요일에 퇴원해서는 독방을 쓰고, 스파가 있는 호화로운 재활센터에 간다며 자랑을 했다.


얼마 전 받은 수술 때문에 몸이 불편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창가 자리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을 했기 때문에 처음엔 누구에게 말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는 자주 했던 말을 또 했다. 예컨대 퇴원하고 간다는 재활센터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불평불만이나 자기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이 말했고, 혼잣말도 전화통화도 자주 했다.


병실에 간호사나 의사가 올 때에도 그는 끊임없이 말을 했기 때문에 질문이 있을 때면 나는 손을 들고 물어봤다. 같은 방을 쓴 지 삼일 째, 나는 그의 나이, 가족관계, 결혼경력, 전에 하던 일, 싫어하는 것들, 아침으로 무엇을 어떻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 등등 그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내가 질문을 하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인지, 영어단어를 몰라서인지, 내가 말을 너무 빨리 했는지 못 알아듣거나 다른 대답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결국 다시 자기 얘기를 하는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에 질문은 많이 하지 않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외모에 관심이 많다. 한 번은 책 크기만 한 두꺼운 메이크업 파우치를 꺼내 하나하나 들여다보고는 향수를 뿌렸다. 약을 잘못 먹고 속이 안 좋아 빵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아서 향수 냄새 때문에 힘들다고 하자 미안하다며 다음부터는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언제는 갑자기 동양인을 지칭하는 듯 ‘너희’ 여성들은 해조류를 많이 먹어서 피부도 좋고 건강하고 유전자가 다르다느니 하는 얘기를 꺼냈다. 내가 뭐 다양한 해초를 먹긴 한다고 대답을 하니까 예전에 어떤 의사가 그랬는데 본인은 100% 유러피안이 아니며 어디 다른 나라 유전자가 섞였단다. 덧붙여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다며...


어쩌다 그의 관심이 내 쪽으로 와서 내가 뭘 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글을 쓴다고 말하자 뜬금없이 본인 이야기도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책이 나오면 사인을 해서 한 권 달라는 말도 덧붙이며... 그래서 그렇게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냈던 걸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영어를 할 때 은근슬쩍 독일어 단어를 섞어서 썼다. She 대신 sie, and 대신 und, with 대신 mit, thick 대신 dick…. 종종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땐 일단 독일어로 뱉어본 다음 그거 아냐고 물어보는 식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가끔 통역도 해주고 나한테 이런저런 설명도 해주고 하는 건 무척 고마웠지만 가끔은 차라리 영어를 못해서 말을 걸지 않는 독일 사람과 그냥 조용하게 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쪽에서 방문시간을오락가락해서 파트너가받아온 방문시간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가 있었다. 화장실밖에서 보이는 것도 아닌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먼저 시간에는 자신이 목욕을 할 예정이므로 늦은 시간에 오라고 했다. 파트너가 간 다음 그는 나에게 자신은 젊은 남자가 자신의 늙은 몸을 보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그때 내 머릿속엔 같은 날 점심을 먹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젊은 남자’ 재활치료사가 왔을 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브라가 맨 앞에 걸려있는 자신의 옷장을 열고 그 안에서 옷을 꺼내오게 한 뒤, 그의 눈앞에서 팬티만 입은 채 아무렇지 않게 옷을 갈아입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와 같이 방을 쓰는 동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병실에서 두 명의 여자와 큰소리로 다퉜다. 방문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거동이 그리 편해 보이지 않는 그의 언니가 아직 목발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주문에 맞춰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나는 뜨개에 집중했다. 갑자기 둘의 목소리가 격해지더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Auf Wiedersehen!(다음에 보자!)”이라는 말을 “당장 나가!”와 같은 뉘앙스로 하는 것이 들렸다. 그다음에도 둘이 티격태격하는 듯이 대화를 하기에 ‘혹시 독일어라 거칠게 들리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잠시 뒤 다시 한번 큰 소리의 “다음에 보자!”가 들렸고, 그의 언니는 들어온 지 약 오 분만에 병실 밖으로 쫓겨났다.


언니가 나간 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울면서 불편한 몸으로 혼자 짐을 쌌다. 그리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영어로 언니가 자기를 안아주지도 않고 안부도 묻지 않은 채 도와주면서 수술하고 약한 자신을 밀쳤다며 하소연했다.


괜찮냐고, 그래도 언니가 도와주러 온 거 아니냐고, 자기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도움이 필요해서 부탁했다고 했다. 그는 언니가 어릴 때부터 자기를 괴롭혔고 지금도 본인의 남편과 딸한테도 심술궂으며 악마 같은 사람이라며 너무 싫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본인 나이가 몇처럼 보이냐고 묻더니 언니는 일흔여섯, 본인은 일흔둘이라고 묻지도 않은 나이를 말해주었다. 내가 놀라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보톡스를 맞았다고 했다. 최근 일이 년은 못 맞았다는 말도 함께.


다음날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간호사랑 싸웠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아침식사에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은 있는데 티백이 없었다. 나에게는 직접 가져온 티백을 흔쾌히 나눠준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그동안 낸 건강보험료가 얼만데 티백 하나를 안주냐고 불평을 토로하며 조금 신경질적으로 간호사 벨을 눌렀다. 그냥 실수로 빠뜨린 거겠지 생각하며말하면 바로 주고별일 없이 끝날 줄 알았는데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둘이 격하게 말다툼을 벌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맛있어서 퇴원하면 사 먹으려고 모아놓은 빈 티백 봉투가 담긴 서랍을 간호사가 몰래 열어봤는지 어떻게 알고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티백을 안 먹고 모아놓는 줄 알고 자기 맘대로 새것을 안 줬단다. 간호사가 환자의 서랍 속을 보는 것도, 자기 것도 아닌 겨우 티백 하나를 가지고 환자랑 싸우는 것도 이상했다.


곧이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이런 여자들이 많아서 자기는 여자들이 싫다고. 남자들은 괜찮다면서. 당황한 내가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특별한 몇몇 여자들만 좋다고 하더니 갑자기 싫어하는 대상이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여성들로 옮겨갔다. 그건 그 사람들 몸이고 그 사람들의 선택이라고 말했더니 아기는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하기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방문하기로 한 친구가 늦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친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제 더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도 없는 것 같은 말을 했다. 교통체증 때문에 늦었다며 미안하다고 말하며 친구가 병실로 들어왔고, 반가워하며 휠체어를 빌려와 둘은 병실 밖으로 나갔다. ‘병실이 이렇게 조용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뜨개를 하는데 잠이 쏟아졌다. 언제 다시 돌아왔는지 큰소리로 떠들며 짐을 싸는 두 사람의 소리에 잠에서 깼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친구가 간 뒤 나에게 더 자고 싶냐고 묻고는 괜찮다고 했는데도 방의 불을 껐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아침마다 자기가 새벽에 샤워하는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묻고는 내가 깰까 봐 툭툭 소리가 나지 않게 침대 금속 부분에 휴지를 둘렀다고 했다. 그는 밤에도 소란스러웠다. 수술 후 옆으로 돌아누워 잘 수 없어 등을 붙이고 잘 땐 코를 골았고, 내가 잘 땐 간호사를 부르거나 침대를 올리고 내리고, 물건을 옮기는 등 소리를 만들었고, 내가 자는데도 대답이 두세 번 돌아오지 않을 때까지 말을 걸었다. 마지막 밤에는 특히 코골이가 심해서 참다가 귀마개를 받았다. 다음날 잘 잤냐고 해맑게 묻기에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잘 못 잤다고 하니 미안하다며 왜 안 깨웠냐고 그랬다.


파트너가 죽을 싸와서 같이 먹고, 방문 시간이 다 되어 헤어지기 전에 끌어안았는데 갑자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파트너가 돌아간 다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우리 때문에 운 게 아니라고, 외로워서 그랬다고 설명했다. “울고 싶으면 울어야죠.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더니 그는 나도 울 때가 있냐고 물었다. 내가 “당연하죠, 자주 울어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조금 기분이 나아졌는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다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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