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식 감자전 뢰스티
비가와서전이당길때면아내는당연한듯나를시켰다. “너네집에선내가만드니까, 오늘은날위해서해줘.” 나는빚진사람처럼군말않고아내의청을들어줬다.
어렸을때부터보고배운게있어서인지, 요리초보임에도 나는전만큼은도통하였다. 우리부부는주로김치전, 부추전, 해물파전을즐겼다. 하지만내가진짜먹고싶었던것은따로있었다. 그것은제사상의전들이었다. 엄마가해주던배추전, 깻잎전, 두부전, 동그랑땡, 동태전을나는무척사랑했다.
하지만아내는제사와명절때마다시댁에서전부치는것에이력이났다. 노동강도가높아서가아니다. 여자들은좁고더운부엌에서씩씩거리며노동을하는데, 남자들은거실에서희희거리며티비를보는모습을 보고 싶지않았던것이다.
특히아내는몇해전, 추석특집<진짜사나이300에서여자들이입대하여 좌충우돌하는모습을집안의남자어른들이비웃던걸 잊을수없다고했다. 남자들이구축한군대란세계에들어가진흙탕을뒹굴고얼차려 받는여자연예인들과가부장제가만들어놓은명절과제사를위해남편집에들어가전을부치는자신이오버랩되어티비속그녀들에게쏟아진비웃음이마치자신에게퍼부어진것처럼씁쓸했다고한다.
대학시절, 페미니즘운동을할때만해도아내는몰랐을것이다. 자신이 '가부장제의 부역자'란 소리를 들으며 결혼할줄도몰랐을것이고, 자신의결혼상대가둘째아들이긴한데, 형이미혼이라자신이큰집의첫번째며느리가될줄은상상도못했을것이다. 결혼해서제사나차례를지내야할줄도몰랐을것이고, 평생그림만그릴줄알았지, 명절마다프라이팬에그림같은전을부칠줄은꿈에도몰랐을것이다.
아내의성향을알기에나는결혼전부터제사나명절이면부엌에들어가잡일을거들었다. 엄마는손필요없다면서나가라고했지만나는끈덕지게부엌에눌어붙었다. 일종의밑밥을 깐 것이다. 결혼후엔자연스럽게아내와함께나도일했다. 부엌뿐 아니라집 청소, 손님접대까지하니 어쩌면내가더정신없었다. 하지만내겐아무도그러라고강요하지않았다. 오히려엄마는거실에가서쉬라고했다. 아내에게쉬라고하는사람은아무도없었다.
며느리가쉴수있는공식적인이유는임신밖에없었다. 마치전부치는것과아이낳는것외에다른삶은없는것처럼아내는명절로부터자유롭지못했다. 나는아내의마음을달래기위해명절마다더열심히일했지만그러면그럴수록아내는자괴감에빠졌다.
‘이렇게나를챙겨주는남편이있는데, 왜나는참을수가없을까?’
말로설명할수없는억울함을표현하기위해아내는나몰래독립출판물을내기도했다. 가부장제를비판하는글을모은건데, 나와나의가족에대해쓴책이었다. 나도한번보고싶다고했지만아내는다팔렸다면서보여주지않았다(다팔리지않았다). 얼마나많은욕을썼길래그랬을까싶다가도, 그렇게라도해서풀린다면베스트셀러가돼도상관없다고생각했다(다 팔렸으면 좋겠다).
그때의아내마음을온전히이해하게된건한참후였다. 아내의책장에서우연히보게된어느책의한문장덕분이었다.
남편은 내가 부탁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려 한다. 하지만 운을 떼는 건 언제나 나다.
- 에이드리언 리치 <분노와 애정
지금껏 아내를 따라 페미니스트인 척했지만 나는 세상이 주는 특혜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아내가 명절과 제사 때문에 힘들다고 해도, 그 짐을 함께 드는 걸로 내 몫을 대신했지, 내가 먼저 아내에게 하지 말자고 한 적은 없었다. 결혼 후 아내는 계속 그 짐을 내려놓고 싶어 했지만 나는 구순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바뀌기 어려울 거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그렇게6년을참은어느날, 명절을한달앞두고아내는공덕역족발골목에서소주를먹다말고이렇게말했다.
“나는카지노 게임 추천차례를지내러안갈거야. 만일아이가생긴다면남자, 여자로나눠진지금의모습을보여주고싶지않아. 지금은2019년이잖아.”
나는족발을먹다말고그릇에공손히두었다. 당시엔아이를가질지말지고민하고있던때라나는아내의문제제기를더심각하게받아들였다.
“어떻게하면좋겠어? 이번부터안갈생각이야?”
아내는그렇다고답했고,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러자고했다. 아내는카지노 게임 추천유일하게남은대안은이것뿐이라고했다.
“여자와남자같이음식을안하거나, 같이하거나.”
풀수없는숙제를받은 나는몇날며칠을끙끙댔다. 명절이조금씩다가오고있었다. 그동안나는엄마에게음식을만들지말고이제그만사먹자는이야기를숱하게했다. 하지만남자어른들에게당신들도주방에서일해야한다고말해본적은없었다. 상상만해도오금이저렸다. 장남인형은제사와명절을늘부담스러워했으나결정권자는 아니었다. 구순의할머니는전혀돌아설가능성이없었고, 아버지역시전통을중시하는분이었다. 키를쥔건엄마였다. 엄마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할머니와 아버지가 돌아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말을꺼내야할지고민하고있는데, 마치그만고민하라는듯엄마에게서대뜸전화가왔다.
나는뜸을들이다가솔직하게얘기했다. 우리부부가 지난 6년동안겪었던고민과갈등을처음으로카지노 게임 추천에게밝혔다. 아이가생긴다면이런차별적인모습을보여주고싶지않다고도했다. 이에대한대안으로(나는이대목에서침을꼴깍삼켰다) 여자어른과남자어른이모두음식을하거나, 하지않거나, 둘중하나를택했으면좋겠다고제안했다. 우리가이런제안을하는건전통을무시하는게아니라지금시대에맞게의미를이어가려는고민에서부터비롯된것이라는각주를달았다.
처음에카지노 게임 추천우스워하며그냥넘기려고했다. 하지만내가제법진지하게이야기하니까카지노 게임 추천무슨말도안되는소릴 하냐면서길길이뛰었다. 이정도로남자들이‘도와주는’ 집이어딨냐고했고, 주방이좁은데어떻게음식을다같이하냐면서그건현실적으로불가능하다고했다. 그렇다면나는다같이안하는방법을택하면되지않겠냐고반문했다. 엄마도이제나이가있어서 명절이끝나면일주일내내아프지않냐면서설득하려했다.
내얘기를한참듣던카지노 게임 추천자신은괜찮다고딱잘라말했다. 아직은팔팔하니걱정일랑하지말라고했다. 다만너희가그렇게까지힘들어할줄은미처몰랐다면서카지노 게임 추천미안하다고했다.
“나도시집살이해봤고, 그래서너희에겐안그러려고하는데, 내가부족한가보다.”
나는엄마가미안해할일이아니라고했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미안해했다.고민이많아진카지노 게임 추천아버지랑상의해보겠다며전화를끊었다.
며칠후, 엄마는아버지와논의를마쳤고, 할머니는본인이설득하였다고전화했다. 집안친척들에겐할아버지제사때모여설명하였다. 엄마와아버지는시대가변했으니, 이제그만집에서제사와차례를지내지않았으면좋겠다며친척들에게의견을 구했다. 친척들도그간며느리들이너무고생많았다면서 엄마의의견을따랐다. 다만가족끼리모이는것까지없앨순없으니, 대신절에서제사나차례를지내는걸로합의를보았다.
아내의문제제기로부터불과한달이되지않아내려진결정이었다. 남자어른들이함께일하는것은논의가되지않은한계가있었지만가족누구도상처받지않고다투지않고문제를해결할수있었다. 아내의용기와엄마의결단덕이었다. 우리부부는얼떨떨해하며엄마에게감사하다고말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담담히괜찮다고했다. 25살에시집와서미우나고우나37년동안했던일을카지노 게임 추천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스스로문닫았다.
하지만뒤도안돌아볼것처럼칼같던엄마의마음은자꾸만휘청였다. 카지노 게임 추천그후로도몇번내게전화걸어잘한선택인지모르겠다고푸념했다. 그럴때마다나는엄마에게힘을실어드렸다. 카지노 게임 추천“그렇지? 요즘엔그렇게도많이하니까.”하면서시원섭섭한목소리로전화를끊곤했다. 정년퇴직자의마음이꼭그런거겠지.
그후론제삿밥과제사전을먹을일이없었다. 아내의산후조리기간동안가끔전이생각날때면우리부부는감자전이나감자채전(뢰스티)을해먹었다. 다른전들은정제밀가루를사용해야해서웬만하면산모에게먹이고싶지않았다. 감자전과감자채전은감자가함유한전분때문에밀가루를넣을필요가없는착한전이라서종종요리했다.
우선감자를얇게채썬다음, 파마산치즈가루를골고루뿌렸다. 소금대신치즈가루로간을해주는것인데, 그렇게하면감자끼리더잘뭉치는효과를볼수있다. 팬에기름을두르고나선베이컨을먼저바짝구웠다. 베이컨을따로그릇에담아둔뒤, 베이컨이남긴기름에채썬감자를누룽지처럼평평하게펴서모양을잡아주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이때부터가중요하다. 전을할때는불세기를최대로해야한다. 전은기름에굽는게아니라튀기듯조리해야맛있다. 중불로천천히구우면기름이전에스며들어서눅눅하고기름지기십상이다. 그에반해, 강불에서튀기듯빨리조리하면전이튀김처럼바삭해진다. 기름이타서연기가나지않도록불조절에주의를기울이며감자채전을앞뒤로바삭하게부쳤다. 같은팬에계란프라이를한다음, 감자채전위에베이컨과계란프라이를예쁘게올렸다. 여기에치즈가루를한번더뿌려주면스위스식감자전인뢰스티완성이다.
우리부부는감자전의쫄깃함만큼이나감자채전의바삭함을사랑했다. 감자채전만먹어도이미맛있는데, 베이컨의짭조름함과치즈의감칠맛, 계란의고소함까지더해져완벽한조화를이루었다. 조상이스위스인이아니고선제사상에올라갈리없는뢰스티를먹으며나는우리를(정확히는아내를) 괴롭혔던그모든것들로부터완벽히벗어났다는사실을새삼실감하곤했다.
가끔씩생각한다. 그경험이카지노 게임 추천에게는어떻게남았을까.
가부장제가불편하고제사와명절이여자들을착취하는구조가싫었음에도불구하고, 나는엄마가정성껏부쳐준전을사랑했다. 소고기뭇국과삼색나물, 닭백숙과조기구이, 산적등엄마가해준음식을나는잘도받아먹으며자랐다. 그러니엄마가미안해할일이아니다. 가부장제가엄마와아내에게사과해야할일이다. 엄마는이제명절에가끔배달음식을시켜먹는다. 내가배추전과동태전이아닌뢰스티를먹는것처럼.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저는 감자볶음 할 때처럼 감자를 채 썬 다음, 물에 씻거나 담가 둔 적이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감자의 전분이 씻겨서 나중에 전 부칠 때 모양을 만들기가 어렵더라고요. 감자채전은 채 썬 감자를 물에 씻지 않고 조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