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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춘기 Mar 14. 2025

'먹고' 사는 일이 사실 전부다.

소소하지만 결정적인. 그 사소한 한 끗의 차이.

이틀 전 일이다.

오후 5시경 카지노 게임이 퇴근하면서 삼겹살을 가져온다는 톡을 했다.

오늘은 저녁으로 뭘 해 먹어야 할지 고민스러웠던 참에 잘됐네 싶었다.


쌀을 씻어 안쳐놓고 보니, 아이 반찬이 마땅치 않다.

냉장고를 살펴봤지만 집에 있는 거라곤 온통 아이가 먹을 수 없는 김치류 뿐이었다. 해서 집 근처 채소 가게에 아이를 얼른 들쳐 안고 나갔다.


양파, 애호박, 당근, 브로콜리, 숙주를 담고 삼겹살과 함께 먹을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제철채소인 냉이를 두부와 같이 사 왔다.


집에 얼른 와서 26개월인 아들에게 "엄마 밥하는 동안 잠깐만 '타요' 보고 있을까?" 했더니 아이가 너무 좋아한다. 요즘 우리 아들의 최애 미디어가 타요와 베베핀이다.

엄마가 상호작용하며 놀아주는 게 좋은 건 알지만, 엄마는 할 일이 많다. 우리 식구 밥은 먹여야지.


아이가 좋아하는 타요 중장비 편을 틀어주고, 부엌에 와서 아이반찬으로 줄 브로콜리 조림을 하고, 냉동실에 있던 황태채를 꺼내서 아기 황탯국을 끓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당근채볶음도 하나 만들어 두니, 전날 해뒀던 아이 콩자반까지 아이 식판이 한상 완성이 되겠다 싶었다.


이제 카지노 게임이랑 같이 먹을 냉이 된장국도 끓여야지.

냉이된장국은 처음 끓여보는 터라 친정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었다. 된장국 똑같이 끓이고 마지막에 냉이를 넣고 한번 바글바글 끓이면 끝이란다. 오케이! 쉽네!


멸치와 디포리를 넣고 육수를 낸 다음, 된장을 풀어주고 양파, 애호박, 다진 마늘을 넣고.

지난겨울에 친정 엄마가 보내줘서 조금 얼려두었던 굴도 한 덩이 꺼내 국에 넣었다.


다만, 냉이는 뿌리까지 먹는 거라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는데. 웬걸. 냉이를 깨끗이 씻는 게 일이다.

그때 시간이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아이가 서서히 배가 고픈지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밥빠!! 밥빠!!!"


그 좋아하던 타요도 뒷 전이고, 밥바 내놓으라고 징징대면서 외쳐대니 마음이 더 급해지기 시작했다.

아까 간식도 많이 먹었잖아. 평소에 아빠 퇴근시간에 맞춰 다 같이 밥을 먹었는데, 오늘따라 아이가 일찍 배고프다고 성원이다.


이왕이면 카지노 게임이 들고 오는 삼겹살을 구워 아이도 좀 먹이고 싶은 생각에 조금만 참아보라고 말하며 손은 냉이를 열심히 씻었다.


냉이 씻는 건 또 왜 이리 손이 많이 가는 건지.

냉이 이파리가 좀 시들해 보이는 것도 따서 버리고, 냉이 뿌리에 뭍은 흙도 깨끗하게 문질문질.


한 줌 냉이가 씻다 보니 또 뭐 이리 양이 많은지.


그때,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가 왔다.

밥무새는 울어대고, 냉이 씻는 손은 멈출 수가 없어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카지노 게임이 뭐라 뭐라 말을 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여보세요~" 대답했지만, 냉이 씻는 물소리에 카지노 게임도 내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듯했다.


서로 "여보세요, 잘 안 들려!"만 외치다가 순간 짜증이 확 일어 전화를 끊어버렸다.

급한 일이면 다시 전화가 오겠지 뭐.


2~3분 후 전화가 다시 왔다. 마침 달래 씻기가 끝이 났다.

후, 심호흡을 한번 하고 짜증 내는 아이를 안아 들고 전화를 받았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삼겹살과 먹을 쌈채소를 좀 사갈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오빠가 먹고 싶으면 사와. 난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같이 먹을게."


전화를 끊고 얼른 식판에 아이 밥부터 담아 주었다.

어제 만들어 둔 아이 콩자반에, 방금 만든 브로콜리 조림, 당근채볶음도 담고 국까지 담아 아이부터 식탁에 앉혔다.


그 틈에 카지노 게임이 도어록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왔다!!"

얼른 냉이된장국에 두부와 냉이를 넣어 마무리를 하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다만 카지노 게임이 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은지 아이를 보고 반가워하지도 않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주방 아일랜드에 삼겹살만 툭 올려두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잉? 무슨 일이 있나?


냉이 된장국이 바글바글 끓는 것을 확인하고 불을 끈 후 카지노 게임을 따라 방으로 갔다.

카지노 게임은 침대 위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표정은 심드렁했다.


"오빠, 어디 아파? 무슨 일 있어?"


카지노 게임은 아무 일 없단다. 배도 안 고프단다. 저녁을 안 먹어도 된단다.

아이랑 나 먼저 밥을 먹으라고 말하곤 누워서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아까 내가 전화를 똑바로 안 받아서 화가 난 건가?

냉이된장국도 끓였는데, 같이 밥 먹자고 몇 번을 말해도 됐다고 말하는 통에 우선 아이와 밥을 먹었다.


다만, 카지노 게임이 밥을 먹지 않으니 굳이 삼겹살을 구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해서 고기는 냉장고에 고이 넣어놨다.


아이와 밥을 먹고, 다 먹은 그릇만 치웠다.

저녁 상을 완전히 치우기 전 카지노 게임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로 밥 안 먹어도 돼? 무슨 일 있어?"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는 카지노 게임옆에 앉으며 물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다.


뭐 보고 있는 건가 싶어서 카지노 게임 유튜브 화면을 보니 "틀어진 부부관계 회복"에 대한 어떤 동영상 하나를 보고 있었다.


아, 역시. 아까 전화를 똑바로 받지 않은 게 화가 났나 보다 싶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하니 좀 귀여운 구석이 있네 우리 카지노 게임. ㅋㅋㅋ)


카지노 게임 옆에 앉아서 뭐에 화가 난 건지 꼭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카지노 게임의 옆구리를 툭툭 끈질었다.

"왜~ 아까 내가 전화 똑바로 안 받아서 그래? 미안해~"


몇 번이고 꼬시다 보니 카지노 게임이 슬슬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자기는 기분이 좋아서 삼겹살을 가져가겠다 말한 건데, 채소 가게에 갔을 때 쌈채소가 필요한지, 고추, 마늘은 사갈지. 자기한테 한번 물어봐 줄 수 있지 않았냐 한다.

당연히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한 건데, 똑바로 받지도 않고 끊어버렸던 것도 섭섭했단다.


카지노 게임의 섭섭한 마음이 약간 이해는 됐지만, 뭐 이런 걸로 이러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휴, 잠시 잊고 있었는데 우리 집에 큰 아들은 아직 사춘기였지. 참.


뭐 그런 걸로 삐치고 그래~라고 할 수는 없어.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옆에서 알랑거렸다.

"오빠가 삼겹살 가져온다고 해서 같이 먹을 냉이된장국 끓였어."


우리 식구의 저녁준비 때문에 바빴다는 걸 좀 어필해보고 싶어서 했던 말인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난 연애 때부터 말했지만, 된장국 안좋해. 알잖아. 난 된장보다는 김치찌개인 거."


아차 싶었다.


지금 이렇게 카지노 게임이 뾰로통한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최근에 언젠가 스치듯 카지노 게임이 몇 번 말했던.

"우리 집엔 맨날 우진이(아들) 반찬뿐이고, 내 거는 없네~" 카지노 게임의 말이 생각났다.


아이가 일반식을 시작한 이후, 모든 음식의 간을 아이에 맞추고 고춧가루, 땡고추 등 매운 음식을 지양하다 보니 카지노 게임의 취향에는 안 맞는 반찬들 뿐이었던 것은 맞다.


먹는 걸로 차별당하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는데, 내가 차별한 것은 아니지만 카지노 게임에게 좀 무심했던 것은 맞는 것 같아 정말 좀 미안했다.

카지노 게임 기분이 풀리라고 입 끝에 알랑거렸던 '미안해~'가 이제 마음에서 시작된 소리로 바뀌었다.


우리 카지노 게임, 우리 식구를 위해 매사 노력하는 거 내가 잘 알지.

그동안 내가 잘 표현도 안 하고, 신경도 잘 못써줘서 미안해.


진심으로 더 사과하고 카지노 게임을 보듬어 주고, 기분이 풀릴 때까지 카지노 게임 곁을 떠나지 않았더니 카지노 게임의 기분이 조금 회복이 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 식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혼 5년 차. 만으로 3년 5개월째 주부로, 와이프로 살다 보니 가정의 화목은 사소한 한 끗에서 시작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도, 관심도. 상대방에 알아챌 수 있게 잘 표현하고 사는 것.

'좋아하는 반찬' 하나에도 관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으니, 어려운 것은 아니리라.


오늘은 우리 카지노 게임이 좋아하는 고춧가루에 무친 콩나물과 삼겹살 넣은 김치찌개를 끓여서 함께 저녁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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