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비 아끼는 직업 구하기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들. 그 기억을 더듬어 나라별로 떠올려 본다. 싱싱한 과수원과 광활한 밀밭이 펼쳐진 호주, 와이키키 해변에서 만난 스팸 무스비, 젤라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이탈리아, 매운맛의 천국 태국까지. 내가 여행지에서 경험한 맛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그곳에서의 시간과 감정을 함께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시작은, 내가 떠나기로 결심했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닫히는 문, 열리는 나
조용한 골목과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나는 언젠가 이곳을 떠날 날을 꿈꾸곤 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는 말 그대로인 내 고향에서, 나는 늘 달아나고 싶었다. 고향 사람들은 내가 누구 집 딸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게 다 정이야’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 정이 너무 무겁고, 숨 쉴 공간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인이 된 뒤에도 내 삶은 이렇게 빤하게 드러나고, 마치 엄마를 비롯한 이웃사촌들과 삶을 공유해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다행히 바라던 대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 벅찬 기대의 이면에는, 모든 것을 온전히 내 힘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음을 그때는 몰랐다.
졸업을 앞둔 해
취업시장은 여전히 IMF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격증 하나 없는 ‘문송(문과라 죄송)’의 취업은 그야말로 안갯속이었다. ‘엄마 말 듣고 사범대에 가야 했나, 학원 강사를 해야 하나…’
온갖 불안이 마음 한구석에 덕지덕지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던 중, 9.11 테러가 발생했다. 세계의 중심이라 여겨지던 나라가 공격당했고, 공항과 항공업계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해외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잦은 직무에 대한 기피 현상이 뚜렷해졌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틈을 타 A 회사의 채용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문 하나가 닫히는 순간, 뜻밖의 방향으로 열리는 또 다른 문.
나는, 그 문을 밀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비 걱정 덜었어.
나는 자기 집에서 학교에 다니는 서울내기들이 정말 부러웠다. 나 같은 형편의 지방 학생에게는 서울에서 사는 비용이 제일 많이 든다. 그나마 기숙사가 가장 싼데, 입소 경쟁이 치열하다. 성적순으로 선발되기도 하고, 2년만 살 수 있는 조건이거나, 퇴소 사유도 많아서 ‘뻑하면 잘린다’는 말도 있었다.
차선은 하숙이었다. 그 당시 하숙비는 40만 원, 신입사원 평균 월급이 200만 원쯤이었으니, 월급의 20%가 숙소비로 빠져나가는 셈이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보증금만 해도 몇백에서 몇천까지 필요했고, 월세도 최소 50만 원 이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침까지 제공되는 하숙은 비교적 저렴한 선택지였다.
그래도. 그때의 내게 40만 원은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고향에 내려가는 방학엔, 카지노 게임 사이트비를 줄이려고 꼼수를 쓰기도 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집에서 짐을 빼 친구 자취방에 놓거나, 카지노 게임 사이트집 창고에 보관해 줄 수 있는지 사정하기도 했다. 어느 해엔, 카지노 게임 사이트비를 안내는 꼴이 못마땅했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집 주인이 눈 오는 날 내 짐을 몽땅 밖에 내던진 적도 있었다. “당장 찾아가라”며 통보했다. 나는 울면서 기차를 타고 올라와, 다른 카지노 게임 사이트집을 찾아 이사했다.
'그래도 직장인이 되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집에선 살지 않겠지?'
조그만 오피스텔을 얻고, 차도 사고, 투피스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출근하는 그런 삶을 상상했다. 목에 회사 카드 휘날리며, 당당하게 걷는 모습 말이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서야 현실을 깨달았다. 오피스텔은커녕, 하숙집에도 근근이 살다 결혼 자금조차 모으기 빠듯하단 걸. 서울이란 동네는 내가 누울 자그마한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야속한 곳이었다.
천지신명이 보우하사 A 회사에 채용되었다. 채용 조건은 해외지사 파견, 숙소 제공, 일 년 2번 휴가 지원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장기간 외국 생활해야 한다는 점은 큰 단점이었지만 그단점을 넘어서는숙소 제공이란장점.
‘이젠 카지노 게임 사이트비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합격 소식을 들은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사실, 나는 해외에 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많은 업무를 선호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이 내게는 더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이 맞았을 뿐이었다. 물론 평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소통을 편하게 할 수 있었으니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니며 가끔 상상했다.
‘오늘 내가 탄 비행기에 테러범이 있다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하지만 나는 ‘운빨걸’이라 믿고. 두려움은 접고 담요 덮고. 어쩔 수 없이 푹 자버렸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 여행용 멀티쿠커의 만남
일상은 고단했던 대학 시절을 보상해 줄 만큼 평온했고, 입사 동기들은 가족 같았다. 한인 마트에서는 불법 복제된 한국 드라마를 싸게 팔았는데, 주말이면 동기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드라마를 보는 재미로 살았다.
문제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잦고, 길었다. 나는 완전한 한식 파다. 매콤한 반찬과 쌀밥이 없으면 끼니를 먹은 것 같지 않다. 여러 나라의 음식을 시도해 봤지만, 결국 내 입맛을 만족시키는 건 한식뿐. 치즈 듬뿍 얹은 리소토, 파스타, 피시 앤드 치프스 등 몇 번이고 도전했지만 잘 맞지 않아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고역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일본산 여행용 멀티쿠커’를 알게 됐다. 호텔 같은 숙소는 가스 사용이 금지되어 휴대용 버너는 쓸 수 없었지만, 이건 전기 제품이라 괜찮았다. 커피포트처럼 생겼지만, 주전자 대신 작은 냄비가 달렸다고 생각하면 된다.(요즘은 휴대용 멀티쿠커 종류도 많을 만큼 대중적이 됐다)
‘유레카! 라면 하나 딱 들어가겠군. 이걸 만든 사람은 천재야!’
일본제답다. 손바닥만 한 크기지만 뚜껑과 손잡이까지 야무지게 설계된 이 작은 냄비는 곧 출장과 여행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결국, 나는 호텔 방에서 끼니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이 친구를 만난 뒤로는 어느 유럽이든, 느끼한 치즈 음식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라면 한 봉지로 입가심할 생각만 해도 든든했다. (지금도 우리 집 창고 한구석에 보관돼 있다. 그걸 볼 때면, 괜히 라면이 끓이고 싶어진다)
□ 여행용 쿠커 요리 리스트
봉지라면
햇반 데우기(밥도 된다)
계란찜 또는 삶은 달걀
3분 레토르트 데우기
분말 국 or 수프 끓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