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자택일
▮아들이 어렸을 때였다.
모기에 물린 듯한데 금방 다리가 퉁퉁 붓기 시작했다.비싼 외제 항생제 주사를 맞았지만부기가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물린 부위가 더 단단해질 뿐이었다.아이는 가려움과 열감 때문에 보챘다.그때 같은 병실에있던 분이 말했다.
"그런 것은 고약이 최고지."
고약은 종기에 붙이는 일종의 패치다. 웅담으로 만들어 '웅담고'라고도 불렸다. 흔히들 '이명래 고약'이라고한다. 그걸 붙였더니 곪아 있던 종기 속에서 고름은 물론이거니와 어버리(응어리)까지 다 녹아 나왔다.고약 한방으로 아들의 종기가 허망하게 누그러졌다.
▮ 기존에 먹던 하모닐란(독일제)과 엔커버(일본제)를 제쳐두고 메디푸드를 잔뜩 구입했다.
남편이 엔커버의 부작용 중에 설사를 할 수도 있다,라는 것을 확인했다.하모닐란도 마찬가지였다.아들은 수년 째 그 두 가지를 경관영양식으로 먹고 있다. 중동 전쟁 영향으로 하모닐란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그래서 차선책으로 엔커버도 곁들여구하고 있지만 그것도 구하기 쉽지 않기로는 마찬가지였다. 하모닐란을 구하지 못한자들이 엔커버 쪽으로 몰려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그 두 가지는 의사 처방을 받으면 의료보험 혜택이 될 뿐만 아니라 품질도 좋다. 그 이야기는아들의 주식만은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글로 발행된 적 있다.
"설사가 잡힐 때까지는 기존의 것 대신에 국산 메디푸드를 구해서 먹이세. 그게 설사에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남편의 그 말에, 부랴부랴 보름치 분량의 메디푸드를 구입했다.설사를 멈추게 하는 데에 효과만 있다면 못할 게 없었다.
▮"정로환을 먹여보세."
남편은 사자성어의 달인이다. 사자성어를 많이 안다기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자성어의 유래를 깨알같이 다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다. 몇몇 사자성어에 대한 유래를 남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지만 나는 돌아서면 까맣게잊어버린다. 몹쓸 기억력이다.
남편이 다짜고짜 말했다.
"우리 일단 설사부터 잡아보세, 설사가 잡혀야 엉덩이 짓무르는 것도 나을 게 아닌가?"
"무슨 말이에요?"
"00이 어렸을 때 말이야. 그 비싼 외제 항생제제치고 고약 하나로 나았잖아?"
"그래서요?"
"그래서 말인데, 정로환이라고 들어봤지?"
"그래서요?"
"그게 한방이 될 수도 있어. 에, 또, 정로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남편이 정로환이 세상에 나오게 된 유래를 사자성어 유래보다 더 세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슨 약 하나에 유래가 담길 정도로사설이 저다지도 길단 말인가?'나는 반은 듣고 반은 흘려 들었다.
"정로환은 말이야."라며 남편은 정로환의생산배경 및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여 검색해 보니 남편의 기억대로였다.
『원래는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질병이었던 티푸스 예방 목적으로 생산되어 병사들에게 지급되었다. 그러나 전선에서 복용하던 병사들은 설사를 멈추는 데 효과가 있다는 의외의 효능을 발견하게 되었다.등장 배경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도 있다. 러일전쟁을 치르던 당시 관동군은 배앓이와 설사로 인한 극심한 병력손실로 골머리를 앓았다. 원인을 조사하자 만주의 나쁜 수질이 원인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이에 일본에서는 메이지 덴노의 이름으로 효과적인 설사약을 공모했다. 이때 제약사들이 앞다투어 자사 제품을 응모했는데 그중 다이코(大幸たいこう) 신약에서 1902년 개발한 약이 가장 효과가 좋아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이 약을 보급받게 된 병사들은 설사를 하지 않게 되었고, 이후 메이지 덴노가 이 약에 정로환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즉, 이 설명에 따르면 정로환은 원래부터 지사제로 개발된 것이다.』(나무위키에서 발췌)
"러시아를 정복한 환이란 뜻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정복할 정(征) 자 대신에 바를 정(正) 자를 썼던 것이고." 남편은 한 마디 더 보탰다.
"아주 사소하고 간단한 것이 어쩌다 큰일을 할 수 있어." 그러더니또 사자성어를 한마디 더 읊었다.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라고 하잖아. 그러니 일단 한 번 먹여 보자고."
『 <도덕경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天下難事 必作於易), 세상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부터 일어난다(天下大事 必作於細)”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출처:생글생글 829호)
▮양자택일
퇴원하여 짐 정리를 끝냈다. 기분이 묘했다. 퇴원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인데 기뻐하지 못하고 있었다.퇴원이면 만세를 불러야 하는데...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들의 퇴원약을 식탁 위에 잔뜩 올려 두었다.
"일단 이거 다 치우고 정로환과 기존약(13년째 먹고 있는)만 먹여보세."라고 남편이 말했다. 퇴원약 중에 있던 항생제는 나쁜 균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소화를 관장하는 균들까지 죽인단다. 항생제라는 것은, 잡고 있자니 뜨겁고 내려놓자니 먹고 싶은'뜨거운 감자' 같은 것이었다.
한 달 넘게 해댔던 설사를 어떻게든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대로는 아무래도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다.양자택일의 기로에 섰다.고민 끝에 남편의 의견대로 하기로 했다. 병원 치료에서 뾰족한 효과를 보지 못했으므로... 그렇지만 첨단 의료 시설로 정밀 검사를 하여위험한 상황은 아니라는 걸 알긴 했다.
어? 그런데 정로환을 먹인날부터 설사하는 텀이 좀 길어졌다. 효과가 있는 듯했다.마침내, 이틀 만에 설사가 멎었다.그랬더니 동시에 엉덩이도 조금씩 뽀송해졌다. 물론 피부과에서 처방해 준 연고를 멸균 면봉으로발라 주긴 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응가를 누기 시작했다. 마치 태풍이 쓸고 지나간듯했다.돌아보니 한 해가 저물어 버렸고 새해의 첫 달도 벌써 기울어 있었다. 송구영신의 때를아들 간병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태산 같았던 걱정이 다 사라진 것 같았다.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
바라본겨울 하늘이
명경처럼맑았다.
[대문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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