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보자, 너'라는 말: 시편 37편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카지노 게임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편 37:1-2, 개역개정)
악인들 때문에 안달하지 말고
못된 짓 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아라.
그들은 풀과 같이 곧 시들어 없어질 것이다. (시편 37:1-2, 현대인의 성경)
대부분의 학대자들은 분노조절을 잘 못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내면에 있는 자기혐오와 삶에 대한 불만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수시로 터뜨린다. 좋게 말해도 화를 내고, 조언을 카지노 게임 폭발한다. 아이들이 신나서 깔깔대면 시끄럽다며 버럭 하고, 아이들이 조용히 대답을 안 카지노 게임 자신을 무시한다며 혼을 낸다.
카지노 게임의 말과 행동으로 무차별 공격을 받다 보면, 부당한 대우로 인한 좌절감과 무력감에 화가 난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왜 안 그렇겠는가, 나도 아이들도 사람인데.
시편 37편을 묵상하던 날도 그랬다. 이사를 앞두고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며, 한 달 가까이 학대자의 무차별 폭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제멋대로 일정을 바꿔놓고, 나와 아이들이 거기에 맞추지 못하면 화를 냈다. 짐정리 하느라 바쁘고 고된 일상 속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학대자는 늘 트집 잡고 시비 걸기 바빴다. 수시로 뒤집어쓰는 오물 같은 시간들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학대자가 몰고 온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내 안에 남는 건 분노와 불만, 카지노 게임과 거친 생각, 그리고 학대자를 향한 욕지거리뿐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긋지긋한 일상에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말씀을 펼쳤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카지노 게임지 말며 (개역개정)
악인들 때문에 안달하지 말고 (현대인의 성경)
'카지노 게임지 말며'라는 말이 가장 먼저 와서 박혔다.
'참 나, 어떻게 카지노 게임을 안 하냐고요? 악을 행하는데!'
시편 기자가 말하는 '카지노 게임' 그리고 '안달'은
라반에게 따지던 야곱의 마음(창 31:36),
디나가 겁탈당했을 때 격노했던 오빠들의 마음(창 34:7),
부르심을 거부하던 모세를 질책하던 여호와의 마음(출 4:14),
금송아지를 만든 백성을 향해 노했던 모세의 마음(출 32:19),
요나단에게 화를 내던 사울의 마음(삼상 20:30),
다윗을 꾸짖던 나단 선지자의 마음(삼하 13:21)과 같은 마음이다.
이렇게나 '정당한' 분노와 카지노 게임을 왜 하지 말라는 건가?
그게 다가 아니다.
시편 기자는 이어서 말한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개역개정)
못된 짓 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아라. (현대인의 성경)
아이를 낳을 수 없던 라헬이 레아를 부러워하던 그 마음(창 30:1),
아버지가 편애하는 요셉을 부러워하던 형들의 마음(창 37:11),
다른 신과 가증한 것들을 섬긴 이스라엘이 불러일으킨 여호와의 질투(신 32:16).
바로 그 부러움과 질투로 '악한 짓 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그들의 행위가
'불의'와 '못된 짓'이라고 못 박아 말하고 있다.
잠언 3장 31절 말씀이 떠올랐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의 행위는 그 어떤 것이든 따르지 말아라.
부러움에는 '나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서려있다.
'카지노 게임' 혹은 '분노'에는 악을 행한 상대방이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욕망이 담겨 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 앞에 노래를 시작하며
자기 안에 가득한 카지노 게임과 시기의 마음들을 먼저 내려놓는다.
여호와께서 금하셨기 때문이 아니다.
불경스러운 감정들이어서가 아니다.
화라락 점화된 나의 카지노 게임과 시기가
한없이 불타오르도록 놔두면
악인들의 행위를 따라 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저 인간은 저렇게 피해만 주며 막 사는데,
왜 나만 바른 길을 가고, 바른 성품을 지켜야 할까?
나도 그냥 같이 확 뒤집어 버려도
아무도 나를 비난할 수 없을 만큼
사악한 인간이랑 사는데,
왜, 나는... 왜, 나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카지노 게임의 모습,
그가 가져오는 재앙으로 넘쳐나는 '오늘.'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어김없이 빠져드는 생각의 굴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말한다.
'지금'이 아니라 '끝'을 바라보라고.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2절, 개역개정)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말한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9절, 개역개정)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0절, 개역개정)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래의 땅에 서 있는 나무 잎이 무성함과 같으나
내가 지나갈 때에 그는 없어졌나니
내가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였도다 (35-36절, 개역개정)
학대자를 향한 분노 섞인 카지노 게임과 시기는
그가 행하는 '불의'와 '못된 짓'이
영원할 것만 같다는 절망,
'현재'에 갇힌 것 같은 나의 좌절 때문이다.
시편 37편을 읽으며 시인도 분명
나와 같은 좌절과 무력감, 울분과 억울함을
수도 없이 많이 느꼈으리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악인이 맞이할 결말을
이렇게나 여러 번, 이렇게 다양한 모양으로
노래하고 또 노래하며 기도할 이유가 없으니.
시편 기자의 마음 안에 가득했던 '카지노 게임'과 '시기'
그리고 악인에게 보응하고 싶은 '공의의 분노'가
내 마음의 노래로 스며들었다.
나와 손을 잡았다.
함께 곡소리를 내며 카지노 게임했다. 불을 토했다.
곱게 죽지 않고 잘근잘근 찢겨 죽어도 모자랄
그들의 끝을 그렇게 상상했다.
바닥을 드러낸 공의의 우물이 다 채워질 때까지.
마른땅처럼 갈라진 나의 억울함이 눈물로 진흙이 될 때까지.
그리고 다시금 잠언 3장의 말씀을 이어서 떠올린다.
참으로 주님은 역겨운 일을 하는 사람은 미워하시고,
바른길을 걷는 사람과는 늘 사귐을 가지신다 (32절, 현대인의 성경)
카지노 게임의 괴롭힘은 나를 향하나
여호와의 미움은 카지노 게임를 향한다.
카지노 게임의 파괴적인 인격은 스스로를 외롭게 하나
여호와의 친밀함은 나에게 머문다.
그것만이 다시금 나의 위로다.
카지노 게임의 끝을 바라보며
그에게 빼앗긴 나의 오늘을 되찾는다.
카지노 게임과 시기로 학대자를 닮아가는 대신
여호와 앞에 모두 다 쏟아놓고 그분을 닮아간다.
카지노 게임가 푸른 풀 같이 말라 없어지는 날 (2절),
그 행위와 존재가 끊어지는 날 (9절),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날 (10절),
풍성해 보였으나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날 (36절),
그날을 바라보며 나의 오늘을 다시 찾는다.
카지노 게임과 안달을 내려놓고, 시기와 부러움을 쏟아놓고,
여호와를 바라보며 나의 지금을 오롯이 누린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나 대신 말씀 하시리니.
"두고 보자, (카지노 게임)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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