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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광용 Apr 12. 2025

카지노 게임 속의 과업

10시. 내 하루의 마지막 업무가 시작된다.
직함: 수면 유도 전문가.
업무 장소: 침대, 11세 아동의 옆 자리
주요 업무: 등 긁기, 발바닥 지압, 종아리 마사지.
급여: 카지노 게임의 평온한 숨소리.
복지: 없음.

열 살짜리 딸은 아직 혼자서 잠들기 싫어한다. 잘 시간이 되면, 아이는 내가 어디 있든지 상관없이 허공에 대고 외친다. "아빠, 재워줘." 호출을 받으면, 그날의 마지막 과업을 위해 출동한다. 베개를 벽에 세우고 등을 대고, 누운 아이 옆에 비스듬하게 앉는다.

고객 맞춤형 서비스가 시작된다. 등을 쓰다듬다가, 카지노 게임가 발을 내밀면 자동으로 발바닥을 꾹꾹 눌러준다. 때로는 종아리를 주물러 달라는 요구에 응한다. 오랫동안 카지노 게임를 재워왔던 한쪽 손은 자율 주행 시스템처럼 움직인다. 캄캄한 방 안에서 쓰다듬는 손길을 쉽게 이기는 카지노 게임는 없다. 카지노 게임는 보통 10분이면 잠든다. 손 하나가 카지노 게임를 위해 움직이는 동안, 나머지 한 손은 내 세계를 위해 움직인다.

요즘은 <왕좌의 게임을 다시 본다. 마지막 시즌의 결말에 분노해 한숨이 났던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서운함도 불편함도 무뎌졌다. 인간이란 원래 시간이 지나면 상처보다 필요를 더 우선시하게 되는 법이다. 다시 보는 존 스노우는 여전히 고지식하고, 대너리스는 여전히 눈부시다.

온라인 쇼핑몰 앱을 열어서 장을 보기도 한다. 독서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기에 이북을 켜기도 한다. 호기롭게 철학서를 펼쳤다가, ‘이건 아무리 봐도 밤 10시에 읽을 책은 아닌데’라는 변명을 하며 닫기도 한다.


가장 많이 하는 건 역시 메모장을 여는 일이다. 문득 떠오른 글감을 늘어놓고 이리저리 꿰맞춰본다. 그날에 있었던 일의 편린들을 긁어모아 어떤 의미를 부여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쓰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건 일종의 카지노 게임 속 명상 같다.”

카지노 게임를 재우는 이 시간이, 내겐 오히려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시간이라는 생각. 카지노 게임는 점점 느릿해지고, 나는 점점 또렷해진다. 소리가 사라지고, 감각이 예민해진다. 이럴 때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카지노 게임은 단지 카지노 게임이 아니라, 어떤 장소일지도 몰라. 우리가 만나야 하는 것들과 조용히 마주 앉는 그런 곳.”

아이의 등에 손을 얹고, 나는 그런 카지노 게임을 산책한다. 지금도 난, 남은 한 손을 부지런히 놀려, 카지노 게임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카지노 게임 속에서, 좋아하는걸 떠올리고, 분노를 누그러 뜨리고, 파편화 되었다가 하나로 이어진 나를만나고, 그럴듯한 아빠가 된다.

대개 나는 짧은 카지노 게임 속 시간에서 ‘잠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언젠가 아이가 “이제 나 혼자 잘 수 있어”라고 말하는 날, 그 카지노 게임은 내게서 조금씩 멀어질 것이다.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오늘 하루 무사히 살아낸 나를 조용히 쓰다듬던 일도 다른 형태로 변하게 되겠지.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이 밤의 작은 의식을 소중히 여길 생각이다. 카지노 게임에 숨어 움직이는 수줍은 내 손들은 아이의 등뿐만 아니라, 내 삶의 안쪽까지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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