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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생 Apr 06. 2025

소년의 카지노 게임

미운 오리 새끼에게 반한 카지노 게임

흙 속에 파묻힌 진주.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 백조. 그게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한 아이의 수줍은 카지노 게임때문이었다.


카지노 게임는 어릴 때 나를 보며 '까지 볼태기'라고 놀리곤 했다. 이마는 좁고 긴데, 양 볼은 통통하게 부풀어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가지라나. 맨날 놀이터에 나가 뛰어 놀았던 탓에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종아리 알도 굵어서 치마를 입어도 안 예쁠까봐 나도 안하는 걱정을 그렇게 사서 했다.


특히 나는 카지노 게임가 원하는 딸이 아니었다. 그는 참하고 똑똑한 딸을 바랐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천방지축 골목대장인데다가, 얼굴은 가지 같고, 다리도 굵고,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남자아이. 공부도 그닥 잘하지 못해서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래서 내가 정말 못나고 못생긴 줄 알았다. 카지노 게임가 너무 그러니까 정말 그런줄 알았다.


그런데 12살이 되던 해 발렌타인 데이, 나를 좋아하는 남자 아이가 나타났다. 그 아이를 만난 후부터 예쁜 소녀 감성을 달고 살게 되었다.


그날의 학교 교실은 간질간질하고 들떠 있었다. 색색의 리본에 크고 작은 선물 상자들, 초콜릿을 감싸고 있는 금은박지, 상자를 열었을 때 보이는 여리여리한 스타핑 뭉치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끼리 그런 설렘을 주고받고 있었다.


못생긴 내 몫은 당연히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몇 번의 쉬는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저 부러워하며 구경하다보니 어느 덧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친구와 수다 좀 떨면서 느릿느릿 집에 갈 준비를 하는데 맨 앞 자리에 앉아있던 한 남자 아이가 맨 뒤에 앉은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교실 뒤편에 있는 사물함에 가려는 것 같았다. 책상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막고 있는 내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치워 주려고 얼른 고개를 숙이며 쳐다봤는데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곧바로 고개를 휙 돌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그 아이를 보내고, 다시 어두운 책상 서랍을 뒤지며 집에 가져갈 노트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이거"


내 눈을 피했던 그 아이가 한 손에 선물 상자를 내밀면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리본으로 묶인 상자는 투명해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는데, 바닥은 분홍색 스타핑이 폭신폭신 깔려있고 빛나는 초콜릿 몇 개, 작은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날 하루 구경했던 선물 중에 제일 크고 예뻤다.


"뭐...뭐야?"


"첫 날부터 너 좋아했어. 나 너 좋아해"


학기 초라 아직 추워서 패딩을 입던 그 계절. 빨갛게 상기되어 더워 보이는 그 애 얼굴. 쉬는 시간 내내 사물함 속에 몰래 숨겨놨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꺼내온 그 아이의 마음.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와락 달려들며 나를 당황시켰다.


그건 사람에게서 처음 가져보는 설렘이었다.


친구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데 그 애는 그 난리통을 만들어 놓고 더운 얼굴과 함께 교실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날의 클라이막스는 나와 그 아이였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 "안녕"하고 집에 잘 가라는 인사만 주고 받았을 뿐, 다른 말은 서로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그 아이에게 매일 같이 묻고 있었다.


'어디가 좋아서?'

'내가 어디가 예뻐서?'


그건 결국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때부터 나는 외모를 의식하고 가꾸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세상에서 처음으로 나의 예쁜 모습을 발견해준 아이였다. 엄마 카지노 게임도 모르는 나의 예쁜 모습. 그걸 봐 준 사람이 실망하면 나도 꽤 속상할 것 같았다.


그게 변화의 시작이었다. 아침에 머리를 빗고, 로션도 바르고, 엄마가 사다주는 옷 말고 내가 직접 옷을 고르러 나갔다. 여태 미운오리새끼인 줄 알았는데. 내가 백조였다니.


그 맘때쯤 엄마는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애가 갑자기 부쩍 여성스러워졌어. 천상 남자같던 애가 갑자기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하고 자주 신기해했고,가꾸는 데 진심이 된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외모에 대한 관심은 더 커져만 갔는데, 카지노 게임는 내가 외모에 관심을 가질수록 마치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을 쳐다보듯 대했다.


"그렇게 옷 사러 다닐 시간 있으면 공부를 더 해라. 백날 그렇게 옷 사고 꾸며봐라. 머리에 든 거 없는 년들이 화려하게 꾸며 봤자지. 천박하기 밖에 더 하겠냐"


"출근길 지하철 한 번 타 봐라. 제대로 배운 여자들은 죄다 청바지에 흰 티만 입고 있지.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만 해도 사람 자체가 빛이 나니까 안 꾸며도 되는거야"


나를 가꾸는 행동이 오히려 천박하며, 지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들렸다. 카지노 게임한테 예쁘다는 소리 한 번 못 들어본 딸. 그런 딸이 이제는 천박해보이는걸까.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카지노 게임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는 알기나 할까. 사랑받고 예쁨 받는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리고 존재감있는 일인지. 그 소년의 카지노 게임 한 번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정도로 기뻤다는 것을.


사실 카지노 게임도 나만큼이나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어디서 저런 못난게 태어났나'하는 말을 밥 먹듯 들었고, 좀 커서는 농사는 안 짓고 공부만 한다고 방구석에 내몰려 수시로 발길질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카지노 게임를 높이 평가해서, 장학금도 주고, 선생님이 종종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밥도 주고 책도 주고 재워주기도 했다고 한다.


집에가면 맞을 일 밖에 없는데 선생님 집에만 가면 공부 잘한다고 귀한 아이 대접을 받으니, 공부 잘한 게 얼마나 든든했을까.


카지노 게임를 살린 건 공부뿐이었다. 그래서 자식인 나에게도 공부만이 최고라고 강요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카지노 게임만큼 죽기살기로 공부할 필요까진 없었다. 그러니 카지노 게임의 인정을 받을 일은 더더욱 없었고 뭘 해도 예쁨받거나, 친밀한 감정은 갖기 어려웠다.


그저 한 집에 사는 불편한 아저씨 같은 존재였던 우리 카지노 게임. 그러나 나는 그런 카지노 게임를 닮아도 너무 닮은 사람이었다.


카지노 게임에게 공부가 무기였다면 나는 외모를 무기처럼 다뤘다.


그날, 소년의 카지노 게임은 나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기쁜 감정을 알려주었는데 외모가 예쁘면 그런 순간도 더 많아지겠구나 싶던거다.


그래서 그렇게도 굳세도록 ‘예쁜 게 최고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굳센 마음은 카지노 게임가 아무리 나를 천박하고, 머리에 똥만 가득찬 가시나라고 하더라도 꺾이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가 농사를 지으러 나가지 않았듯이. 나도 그랬다.


우리는 그래서 참 닮았다. 카지노 게임는 공부였고, 나는 외모였을 뿐이다. 우린 너무 간절하게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이었다.때로는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세울 정도로.


힘 없고 가엾은 어린아이의 몸으로

감당해야했던 구박과 폭력.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힘을 키우려고

노력했던 아이의 모습.


삶을 포기하지 않은 그 아이들이

이미 엘리트였다고 위로하고 싶다.





심리학적으로 살펴본 주제들

1. 자존감(Self-esteem)의 형성과 회복

어린 시절 가족의 말과 평가는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아버지로부터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외모에 대한 비하, 능력에 대한 평가절하)을 받으며 ‘나는 별로야’라는 부정적 자기 이미지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또래의 인정(특히 좋아하는 이성의 관심과 카지노 게임)은 강력한 정서적 자극이 되어, 부정적 자아상을 수정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거울 자아(self as seen in the eyes of others)” 이론과 관련이 깊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그 시선이 긍정적일수록 자아상이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2. 부모의 양육 태도와 감정 발달

아버지의 말 속엔 강한 조건부 사랑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공부를 잘해야 예쁨 받을 자격이 있다’, ‘바른 행동을 해야 인정받는다’는 식이죠.


이는 아이가 “조건적 자기 가치(conditional self-worth)”를 갖게 만들며, 결과에 따라 자기 존재를 평가하고, 실망을 반복하면서 깊은 무가치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버지 자신도 어린 시절 정서적 결핍과 학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세대 간 전이(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라고 부릅니다.


3. 외적 변화의 내적 동기

소년의 카지노 게임 이후, 주인공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예쁜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감정을 경험합니다.


이 감정은 단순한 외모 꾸미기가 아닌, 자기 효능감(self-efficacy)과 자기 존중감(self-respect)의 회복으로 이어지며, 자신의 존재를 더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긍정적 자기 돌봄(self-care)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4. 사랑받고 싶은 본능 – 애착이론의 관점

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사랑받고 싶은 본능과 연결됩니다.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를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고 자아를 형성해 나갑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아버지에게선 그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소년의 카지노 게임을 통해 잠시나마 그 안정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경험이 자기애(self-love)의 시작점이 된 것입니다.


� 독자에게 드리는 심리학적 메시지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본능이자 건강한 정서 발달의 출발점입니다.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이나 상처가 전부 당신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 작은 인정, 사소한 칭찬 하나가 당신의 내면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상처는 반복될 수 있지만, 그 고리를 끊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나는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반복을 멈추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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