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두서없는 글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쓰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냥 써 보려고 한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를 읽게 된 것은 팟캐스트에서 김철홍 평론가가 일본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취향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일본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일본소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 자신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80년대 초반에 태어나 90년대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았고 그 자장 속에서 30년 이상 살아온 나는 일본 대중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정치적인 대립과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태도는 엄연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만 해도 혐한을 조장하는 일본 우익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정치적 태도를 가지고 있고 이창동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숨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에서도 이창동에 대한 존경심을 거듭 드러낸다.
나는 모든 대중문화 텍스트에는 정치적 의식 혹은 무의식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자보다도 후자가 좀 더 흥미롭다고 보는 쪽이다. 『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에서 거의없다는 <다이 하드가 “블루칼라 노동자계급의 백인 남성이 세계 최고의 남자라고 주장하는 영화(116쪽)”라고 얘기한다. 이 사실 때문에 <다이 하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 주장에 동의하는 이도 단순히 저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영화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는 정치적 의식 혹은 무의식을 미학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음의 문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품 속에서 알기 쉽게 가시화된 감독의 메시지는 솔직히 말해 대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상은 감독의 의도를 초월해 눈치채지 못한 형태로 ‘찍혀버린 것’ 쪽이 메시지보다 훨씬 풍성하고 본질적이라는 점을 나는 실감하고 있다(「영화라는 공동체」, 27쪽).” 정치적으로 올바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서 모든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영화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 사실을 무시하는 이는 좋은 창작자도 좋은 비평가도 좋은 관객도 될 수 없다고 믿는 쪽이다. 물론 좋은 관객이 대체 누구인지 묻는다면 그건 이 글의 취지를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 얘기는 다음 기회로 넘기고자 한다.
그렇다면 대중문화 텍스트로서 영화가 지향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무엇일까? 그 중에 중요한 부분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에서 얘기해 주고 있다. 대화를 통해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타인과 직접 소통하다 보면 타인의 몰이해에 우선 지쳐 버리게 된다. 하지만 텍스트로서 나와는 상관없는 상상 속의 인물을 대하다 보면 오히려 내 주변의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곤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들을 계속 읽게 될 것 같다.
“상상력이 중요하다고들 여기저기서 거듭 말카지노 게임 추천데, 이건 딱히 상대의 기분에 동화카지노 게임 추천 게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 그리고 그런 그들이 보는 우리의 것과는 다른 세계상을 상상하고 인정카지노 게임 추천 일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런 ‘타자’에 대한 상상이 훨씬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타자를 상상카지노 게임 추천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