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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Hyun Apr 03. 2025

칸타타

음악소설집

하나님은 아주 좋은 마음을 선물하시도다.

성도들은 이 작은 은혜에서 큰 기쁨을 누리도다.

그렇도다.

그가 또한 죽음의 긴 고난의 길로 이끄시더라도

마지막에는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시도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참 잘하신 것이라

나는 지금 내 헛된 망상으로 쓴 잔을 맛보아야 하지만

결코 놀라지 않을 것이라

왜냐하면 주의 달콤한 위로로

내 마음이 기뻐할 것이기에

여기서 모든 고통이 사라지리라.

- 바흐 교회 칸타타 75번 (BWV 75)


해가 지고 있었다. 먼 서쪽으로부터 내가 선 옥상까지 넓고도 긴 석양이 드리웠다. 한여름이라곤 하지만 평소보다 더 느지막이 내려앉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빨래를 걷는 내 움직임까지 느긋해졌다. 깡마른 빨래들을 하나둘씩 걷어 내려서는 왼 팔뚝에 걸쳤다. 낡고 닳았지만 거무튀튀한 아버지의 작업복이 그중 묵직했다. 누렇게 색이 변한 엄마의 속옷들이며 빛이 바래고 흐물흐물해져 버린 내 청바지도 걷어 내렸다. 해가 잘 드는 맨 바깥 줄에 걸어 두었던 카지노 게임의 하얀 셔츠들에는 아직 한낮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셔츠들은 곧 다려야 할 참이었다. 조금이라도 구겨진 카지노 게임의 셔츠며 바지는 엄마가 못마땅 해 했다.

엄마는 해가 지기 전에 들어와 풋내 나는 배추들을 구겨 넣고 국을 끓이고 있었다. 얼큰한 배춧국 냄새가 빨래를 걷고 있는 옥상까지 올라왔다. 카지노 게임는 매운 국을 좋아했다. 사내로서 별나게 하얀 얼굴을 가진 카지노 게임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식성이었지만 엄마는 카지노 게임의 식성을 내켜했다. 그때껏 아버지의 식성도 카지노 게임와 같았는지는 잘 몰랐다. 아버지는 늘 별다른 말없이 국을 삼키곤 했으니까.

빨래를 다 걷고 나니 기분이 묘해졌다. 걷은 빨래를 평상 위에 내려놓고서 다시 서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 아래 먼 도시는 석양에 온갖 조명들이 어우러져 들꽃이 흐드러진 산처럼 보였다. 동네 가까이 움푹 팬 낮은 지대의 주택가에는 생채기의 표식인 양 붉은 십자가들이 어지럽게 박혀 있었다. 무슨 십자가가 저리 많담. 십자가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삐쭉한 것도 있고 가로가 보통 이상으로 짧은 것도 있었다. 색깔도 조금씩 달라 보였고, 빛을 받지 않았는데 번쩍이는 것도 있었다. 카지노 게임가 밤이면 밤마다 듣는 음악들이 십자가들과 겹쳐졌다. 카지노 게임는 성가 같은 노래들을 늦은 밤까지 매일 들었다. 언젠가 카지노 게임는 그 음악이 ‘칸타타’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칸타타 칸타타 하고, 오랜만에 중얼거리며 평상에 앉았다.

평상을 마당으로 들이던 날, 엄마와 아버지 나 셋이서 마루에 나란히 앉아 카지노 게임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려 새 평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신문지에 둘둘 말린 채 핏기가 어리고 비린 돼지고기였지만 그때만큼 맛나게 먹은 적도 잘 없었다. 엄마는 카지노 게임의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고, 아버지는 돼지기름을 내려받아 허옇게 굳도록 식힌 다음 밥을 비벼 먹었다. 살코기는 대부분 카지노 게임 차지였지만 카지노 게임는 한 점, 두 점 내게 미뤄주었다.

옥상으로 옮겨져 더 보기 싫게 낡아버린 평상에 앉아 있으려니 엄마가 소리를 지르듯 물어왔다.

“네 카지노 게임는 아직이니?”

나는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지 않았고, 듣지 못한 척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전화 좀 해 봐, 저녁도 안 먹고 아직 사무실인가 보다.”

아들과 텔레파시라도 통하는지 엄마는 확신에 차서 빠르게 말했다. 빨래를 내려놓고서 마루에 걸터앉아 카지노 게임의 휴대전화 번호를 꾹꾹 눌렀다. 마지막 숫자를 눌렀을 때쯤 카지노 게임는 반쯤 열린 대문을 슬쩍 밀치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나는 멍하니 카지노 게임를 쳐다봤다. 카지노 게임의 주머니로부터 흔해빠진 벨소리가 울려 나왔다. 내가 건 전화가 시차를 두고 카지노 게임의 휴대폰 벨을 울려댔다.

카지노 게임의 한쪽 손에는 작고도 낡은 갈색 서류가방이 들려있었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그랬듯 다른 한 손에는 널찍한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레코드가 들어있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그날따라 비닐봉지가 가벼워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카지노 게임가 들어선 마당이 그다지 좁아 보이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 키는 180센티미터가 넘도록 컸고 마당은 카지노 게임가 드러누우면 꽉 찰 만큼 좁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느 날부터 그랬던 마당이었다.

멈춰 선 카지노 게임는 부엌으로 눈을 돌렸다. 카지노 게임는 부엌에서 내다보는 엄마에게 눈으로 인사를 했다. 레코드가 꽉 찬 비닐봉지를 든 날이면 늘 그래 왔듯 카지노 게임의 얼굴은 미안해하면서도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언젠가부턴 느긋해질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카지노 게임는 그러질 못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카지노 게임의 표정이 알 듯 모를 듯 평소와는 다른 것도 같았다. 방문 앞에서 잠시 멈칫거린 카지노 게임는 힐끗 나를 돌아보고서는 곧장 방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댓돌 위에 덩그러니 놓인 카지노 게임의 남루한 갈색 구두를 한참 쳐다봤다. 구두는 서로 토라지듯 브이자로 흩어져 있었다.


낮에 있었던 공장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봉제인형을 만드는 공장이라 뻔한 것이 좁은 공간 안에서 많은 먼지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위까지 더해졌으니 한여름에도 코끝이 간질간질하고 맹맹했다. 늘 두통에 시달리고 목이 칼칼한 것은 기본이었다. 에어컨은 공장장의 방에나 있었고 작업장에는 벽에 달려있는 선풍기 두 대가 다였다. 공장의 직원이 모두 열한 명이니까 대략 다섯 명당 선풍기 한 대 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틈날 때마다 물을 마시거나 더위를 식히기 위해 휴게실로 가기에는 눈치가 보이곤 했다. 휴게실과 공장장의 방이 미닫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따라 오전부터 더위를 타던 내가 물을 마시기 위해 휴게실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공장장이었다. 공장장은 휴게실 소파에 앉아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너희 오빤 요즘도 잘 나가냐? 동창회도 안 나오고 영 얼굴 볼 날이 없다야.”

공장장은 카지노 게임와 중학교 동기동창이었다. 카지노 게임는 공장장 얘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지만 공장장은 가끔 카지노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또 물어오거나 했다.

“카지노 게임는 에어컨 술술 나오는 방에서 계산기나 두드리며 근무하지?”

공장장은 마치 자기 방에만 에어컨이 있는 것이 미안한 양 카지노 게임를 빗대 이야기했다.

“카지노 게임한테 시집보내달라고 해. 참, 너희 카지노 게임도 아직 장가 안 갔지?”

나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그리고 공장장에게 등을 돌린 채 물을 따랐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카지노 게임라 ……, 배가 고파도 밥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먹는 것조차 포기해 버리는 카지노 게임가 계산기를 두드린다고? 쪼잔하게 그 작은 버튼들을 두드린다고? 하긴 카지노 게임는 밥상을 차려주지 않는다고 언짢아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밥 차려줘?’하고 물으면 카지노 게임는 ‘난 밥 따위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듯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밥도 귀찮아하는 사람이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서류를 뒤적이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는 저녁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서 양치질을 했다. 양치질을 끝낸 카지노 게임는 언제나 그랬듯 자기 방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카지노 게임의 등을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카지노 게임의 등은 카지노 게임가 좋아하는 레코드들의 재킷처럼 네모나고 널찍했다. 무어 잘난 아들이라고 그리 조심스러운지,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카지노 게임가 못내 대견스러웠던지 숟가락으로 배춧국을 떠올리다 말고 평온한 미소로 닫혀버린 카지노 게임의 방을 바라보았다.

지난 주말 카지노 게임는 끝내 맞선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는 무심했고, 엄마는 그런 카지노 게임를 나무랐다. 카지노 게임가 없는 자리이긴 했지만 엄마가 그토록 카지노 게임에게 화를 내는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엄마는 시래깃국을 얼큰하게 끓이며 퇴근하는 카지노 게임를 지그시 기다렸다.

엄마는 근 며칠 동안을 침이 마르도록 맞선 자리에 나올 여자를 칭찬했다. 여자는 직업이 없다가 막 생겼는데 직업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돈이 많은 집의 외동딸이었다. 여자의 아버지는 인근에서 소문난, 흔히들 말하는 부동산 졸부였다. 인물이 그만하면 썩 괜찮다고 엄마는 몇 번을 얘기했지만 카지노 게임의 피부보다 더 까만 피부 하며 카지노 게임의 어깨에도 못 미칠 작은 키를 나는 알고 있었다. 어느 해 겨울부터 동네 저 아래에 주유소를 차린 여자의 아버지가 외동딸을 주유소에 데려다 놓은 것을 나는 출근길에 종종 보았다.

그 주유소의 이름은 ‘미선 주유소’였는데 ‘미선’이 그 여자의 이름이었다. 여자는 주유소에서 소장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 이듬해 봄부터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고, 결국 일을 그만둔 모양이었다. 그 여자가 어떤 여자 인가완 별개로 카지노 게임가 과연 엄마의 청을 거절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것도 내 관심사였다.

그 집에서 먼저 카지노 게임를 탐냈는지 엄마가 그 집으로 하여금 카지노 게임를 탐내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지노 게임의 맞선은 주선까지만 성공이었다. 카지노 게임가 그 특유의 무심함으로 보기 좋게 거절한 후에 나는 엄마나 아버지 또 내가 카지노 게임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화를 내거나 할 자격은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카지노 게임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좋은 명문대를, 그것도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법대를 다녔다. 법대를 나왔으니 졸부 집안에서 탐을 낼만 했다. 물론 아닐지도 몰랐다. 우리 집이라 해봐야 카지노 게임밖에 내세울 게 없었고, 카지노 게임라 해봐야 그 빛깔 좋은 학벌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카지노 게임는 그 대학의 법대에서 반 수 이상이나 해낸다는 고시에 최종적으로 실패했다. 2학년 때던가 3학년 때던가 카지노 게임는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다. 결과가 나오던 날 아버지는 기분이 얼마나 좋았던지 들고 있던 미장 도구를 던져버리고 집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래도 엄마는 파출부 일을 다 끝내고서야 들어왔다. 엄마의 표정은 달콤했다. 그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아들은 의연한 어깨로 엄마의 미소에 답했다. 그로부터 꼬박 7년 동안 카지노 게임는 아무런 시험에도 합격할 줄을 몰랐다.

카지노 게임는 담담했다. 실패가 거듭되던 그 어려운 시절을 카지노 게임가 어떻게 보냈는지, 카지노 게임의 표정을 보고서는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고시에 실패했을 때조차 카지노 게임는 그저 다른 시험을 쳐보겠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카지노 게임 같은 천재가 어떻게 시험에 붙지 않을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담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점점 카지노 게임처럼 담담해할 수 없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카지노 게임는 결국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카지노 게임가 첫 출근을 하던 날은 기억나지 않지만 첫 월급을 받던 날은 지금도 또렷하다.

카지노 게임는 큼직한 박스를 몇 개나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나 아버지에게 줄 선물이 아니었다. 물론 내게 줄 선물도 아니었다. 가까스로 박스를 든 카지노 게임 뒤로 다른 박스를 든 사람이 뒤따랐다. 둘은 각기 몇 개의 박스를 들고 힘겹게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카지노 게임를 뒤따른 사람은 택시기사였다. 택시기사와 카지노 게임는 대문간 안으로 그 박스들을 부려놓고서는 다시 계단들을 밟아 골목길을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뒤 그들은 같은 모양으로 또 다른 박스를 대문 안으로 들여놓았다.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그 모습들을 마당에 서서 지켜보았다. 카지노 게임는 겸연쩍게 웃더니 그 박스들을 하나 둘 자신의 방으로 옮겨갔다. 모두 예닐곱 덩이였던 것 같다.

“그게 뭐니?”

엄마가 묻자 카지노 게임는 우물쭈물하면서,

“아무것도 아니에요.”하고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방으로 박스들을 들여간 카지노 게임는 방문도 닫지 않고 박스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카지노 게임의 첫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엄마와 아버지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첫 월급으로 사 올 선물을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그날로부터 매달 일정한 돈을 카지노 게임가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카지노 게임의 월급이 끊이지 않는 한 우리 네 식구가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그 행복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을 우리 가족은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내용물을 꺼낸 빈 박스가 마당으로 던져질 때까지도 나는 첫 월급에 대한 뻔한 기대를 버릴 수 없었다. 못해도 엄마와 아버지의 내복은 사 왔겠지 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앞으로 행복해지리라는 믿음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과 같았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가 박스에서 꺼낸 것은 기계 덩이들뿐이었고 마당으로 내던져진 박스에는 기계를 감쌌던 포장지 외엔 아무것도 더 들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열린 방문 사이로 얼마 동안 카지노 게임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곧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엄마와 나는 마당에 선 채 카지노 게임의 방안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가 박스에서 꺼낸 것은 정녕코 몇 덩이의 기계 뭉치와 두 덩이의 큼직한 나무통뿐이었다. 그것이 오디오이고 스피커인 줄은 나중에 알았다. 내가 토라진 척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을 때에도 엄마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카지노 게임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마저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후에도 나는 몰래 카지노 게임를 지켜보았다. 그때부턴 그 오디오란 것에 눈길이 갔다. 기계치고는 얼마나 예뻤던지 팽개쳐진 박스도 멋지고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둥그스름한 나무는 결이 참 고왔다. 그 큼직한 나무판 위에 은색 판이 하나 놓이고 그 위에 전구처럼 생긴 네댓 개의 진공관이 꽂혀 있었다. 진공관이란 것도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날 밤 나는 진공관에서 정말 가녀리고 예쁜 불빛이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카지노 게임의 방 안에는 복잡하게 얽힌 선들이 늘어지게 깔렸다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앰프라 불리는 그 두 덩이의 오디오는 카지노 게임의 책상 왼쪽에 나란히 앉혀졌고 그 앰프 옆에 레코드를 작동시키는 턴테이블이란 것이 곱상하게 놓였다. 그리고 스피커 중 하나는 책상 오른쪽으로, 나머지 하나는 얼마간의 고민 끝에 그 모서리의 반대편에 놓였다.

카지노 게임는 방바닥을 손으로 대충 쓸고 나서는 손을 털면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다시 허리를 숙여 법전들이 꽂힌 책꽂이의 맨 아래 칸에서 레코드 한 장을 꺼냈다. 그 레코드는 카지노 게임가 벌써부터 구해둔 모양이었다. 레코드의 재킷에는 귀엽게 생긴 소녀천사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천사는 하늘을 바라보듯 재킷의 모서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는 레코드재킷을 감싸고 있던 비닐을 뜯어냈다. 그리고는 재킷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고, 다시 그 종이봉투에서 까만색 레코드를 꺼냈다.

그때 나는 카지노 게임의 뒷모습을 눈여겨보았다. 뒷덜미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고 무거운 것들을 들고 날랐던 팔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의 움직임은 오디오를 설치할 때보다 더 느려진 것 같았다. 레코드를 꺼내고 들을 준비를 하는 카지노 게임의 모습에는 시간이 정지된 공간에서나 느껴질 법한 독특한 기운이 있었다.

카지노 게임는 무릎을 꿇은 채 오디오로 다가갔다. 그리고 레코드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레코드는 돌아가기 시작했고 카지노 게임는 레코드를 읽어내는 바늘을 조심스럽게 레코드 위에 올려놓았다.

해는 여전히 질 듯 말 듯했다. 빛들은 뻑뻑하고 습기 가득한 공기를 뚫고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마당 한편 카지노 게임의 방에서 시작된 조그마한 소리가 마당의 빛과 어우러져 무언지 모를 투명하고도 큰 음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악기들의 소리 속에서 높고 높은 목소리가 곱게 뽑아져 나왔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이 뽑혀 나오듯 말이다. 나는 ‘참 좋다’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공기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으니까.


내 방 문틈으로 마당 건너편 카지노 게임 방을 지켜보던 나는 방에서 나와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카지노 게임는 음악이 끝나자 바늘을 내려놓고 레코드를 뒤집었다. 그리고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자기 방의 방문을 닫으려 했다. 그 순간, 나는 카지노 게임의 눈빛을 보았다. 행복에 겨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난감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날 이후 3년 동안 나는 카지노 게임의 그 눈빛을 마주쳐야 했다.

그날부터 카지노 게임가 듣기 시작한 그 음악은 바흐의 칸타타였다. 언젠가 나는 구립도서관에 가서 칸타타가 무엇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바흐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이가 작곡한 그 음악을 알고 싶었다. 카지노 게임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엄마나 아버지의 길고 길었던 세월을 보상해주지 못하게 만든 바흐의 칸타타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내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바흐의 칸타타는 200곡이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는 5천 장 가까운 레코드를 사들였다. 그 레코드가 지금은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지만 칸타타 음반이 아닌 것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카지노 게임가 들은 음악들은 모두 칸타타였다. 매일 밤 그 음악들은 하나 같이 비슷했으니까.


놀라울 정도로 카지노 게임는 늘 같았다. 오디오를 들여놓은 그다음 날부터 하루 걸러 한 번씩은 레코드가 든 봉지를 손에 들고 퇴근했고, 늦은 밤까지 어떤 날은 동이 틀 때까지 칸타타를 듣곤 했다. 처음에는 구경거리였고, 나중에는 지겹고도 싫어졌다.

카지노 게임가 생활비로 내놓은 돈은 보잘것이 없었다. 월급의 대부분을 레코드를 사는 데 써 버렸기 때문이었다. 처음 몇 달간 엄마는 그런 카지노 게임에게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자 엄마는 섭섭함을 표현했다.

“쟤가 예배당 나가려나 부다.”

일생을 부처님만 모신 엄마도 카지노 게임의 방에서 들리는 음악이 교회의 음악인 줄을 알았다.

엄마와 아버지가 카지노 게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싶었다. 그러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가 칸타타를 듣기 시작한 지 거의 일 년이 된 시점에 나온 엄마의 반응은 신경질적이었다. 나는 엄마가 더 화를 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들을수록 재미없어지는 음악을 듣는, 아니 그 음악이 어떤 것이든 간에 레코드만 사다 나르는 카지노 게임보다 그 긴 시간 아들의 이상한 의식을 참아낸 엄마와 아버지가 내게는 더 대단해 보였다. 그간 카지노 게임를 나무라지 않았던 엄마와 아버지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도 퇴근길 카지노 게임의 손에는 묵직한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언제까지 그럴 거니?”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듯 말했을 때 카지노 게임는 물론 아버지와 나, 그리고 엄마 자신까지 모두 놀라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엄마는 ‘언제까지 음악만 들을 거니?’라고 물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집안의 기둥이 되고 사회에서도 장대해져야 할 아들이 빠져든 그 무엇을 집어 지칭하기가 두려웠을 테니까. 그때 아버지가 엄마의 말에 한 마디를 보탠 것도 새롭다면 새로운 일이었다.

“재준아, 뭐가 좋다고 그렇게 사다 날라?”

카지노 게임의 대답은 동문서답 같기도 했다.

“아버지, 전 교회에 나가지 않아요.”

카지노 게임는 방문을 닫아버렸다.


엄마는 여전히 파출부일을 나갔고 아버지는 허탕을 치더라도 새벽마다 부지런히 일을 나섰다. 엄마와 아버지는 지치고 늙어가고 있음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나 역시 몇 군데의 공장을 전전하고 밤에는 카지노 게임의 셔츠를 다렸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의 칸타타는 계속되었다. 카지노 게임는 엄마와 아버지의 지친 모습을 보지 못했을까. 물론 카지노 게임의 얼굴에 미안한 표정이 없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때때로 카지노 게임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무슨 돈을 그렇게 잘 쓰는지’ 하는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두 해를 넘겨 카지노 게임가 칸타타에 더 열중하자 아버지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는 모든 것이 더 지긋지긋해졌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나는 나대로 그랬을 것이다. 어느 날 마당에서 빨래를 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카지노 게임를 보고서 나는 카지노 게임를 향해 중얼거렸다.

“카지노 게임 좀 이상해, 아니, 아주 이상해.”

카지노 게임는 정말 이상했으니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도 이상했다.

“카지노 게임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아버지의 목소리는 칸타타의 코랄을 부르는 성가대만큼이나 우렁찼다.


누군들 짐작조차 할 수 있을까. 멀쩡한 한 남자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종교음악을 듣기 시작해서 세 해 동안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17세기에 이탈리아의 모노디에서 생겨난, 아리아·레치타티보·중창·합창 등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성악곡의 한 형식. 어원은 이탈리아어의 cantare(노래 부르다)이며, 기악곡 형식의 소나타에 대응하는 말이 된다. 가사와 내용에서 실내 칸타타(cantata da camera[이])와 교회 칸타타(cantata da chiesa[이])의 둘로 나누어진다. [중략] 독일의 칸타타: 칸타타라고 하는 말은 원래 실내 칸타타에 적합한 것이었으나, 18세기 초부터 겨우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에도 전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시초는 독창용 칸타타이며, 18세기 전반까지의 칸타타는 거의 이탈리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연장에 불과한 의미밖에 없었다. 그러나 드디어 성서 중의 격언을 가사에 넣기도 하고, 성서 구절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해설적인 서정시를 삽입하기도 하는 형태가 행해졌고, 이것들은 교회력이 있는 특정한 축제일이나 일요일의 예배용 음악으로서 즐겨 쓰였다. [중략] 바흐가 남긴 200곡이나 되는 교회 칸타타는 형식 내용이 모두 극히 풍부하여, 여러 가지 악기 편성에다 독창·중창·합창이 잘 짜여 있다. 폴리포닉 하게 구성된 합창에서 시작되어, 레치타티보와 다카포 아리아의 부분이 몇 대목인가 이어진 뒤, 합창으로 끝나는 다부분(多部分) 형식이 흔히 보인다. 콘체르타토 양식도 널리 활용되고, 때로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기악곡의 영향이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음화적(音畵的)인 수법도 쓰이고 있다. 바흐 이외에도 북스테후데·텔레만 등에 많은 교회 칸타타가 있으며, 그 뒤에도 많은 프로테스탄트 작곡가가 칸타타를 작곡하고 있으나, 대다수는 특별한 기회를 위하여 작곡된 것으로, 차츰 오라토리오로 흘러들어 간다. [출처: 음악대사전, 세광출판사(1996)]


도대체 카지노 게임에게 바흐는 무엇이고 칸타타는 무엇이었을까. 카지노 게임는 왜 바흐의 칸타타를 그토록 오랫동안 열심히 들었을까. 언젠가 용기를 내어 카지노 게임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는데 정작 카지노 게임는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씨익 웃기만 했다.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표시였을까. 카지노 게임는 칸타타를 듣는 이유에 대해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가 칸타타 듣기를 그만둔 날부터 엄마도 아버지도 카지노 게임의 그 과거에 대해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두려움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였다. 이런저런 까닭으로 나는 칸타타에 대한 카지노 게임의 이야기를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카지노 게임는 정말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지금에야 몇 가지를 짐작해보기는 한다. 그것으로 카지노 게임의 기이한 3년을 설명해 낼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카지노 게임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것에 관해 내가 기억하는 어떤 순간은 어느 일요일의 새벽이다. 물론 내가 직접 본 게 아니라 언제인가 아버지가 전해 준 이야기다. 아버지는 그것이 무척이나 소중한 추억인 것처럼 조심스럽게 딱 한 번, 카지노 게임의 그 어릴 적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주말이긴 했지만 아버지는 일을 나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다고 한다. 어둑한 마당으로 나서던 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카지노 게임의 방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카지노 게임의 방 여닫이문을 숨죽여 열었을 때 아버지는 일곱 살짜리 카지노 게임의 등을 보았다. 미동조차 없이 카지노 게임는 방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빛이라고는 어슴푸레 밝아와 겨우 흑과 백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양 밖에 없는 시간에 카지노 게임는 ‘이야기책’을 읽고 있었다. 게다가 카지노 게임는 아버지가 세 번이나 불렀을 때까지 책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때 아버지가 카지노 게임에게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형광등을 켜주는 것 밖에 없었다고 했다. 대견했던 것이다. 불 켜고 읽어라, 하는 것이 아버지의 조언이었다. 아버지는 책상을 사줄 돈도 없었고 책을 사줄 돈도 없어서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카지노 게임는 자라면서 몇 번이고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나 또한 언제인가 카지노 게임가 책에 빠져들어 등교시간까지 잊어버리는 걸 보기도 했다. 아버지는 카지노 게임의 독서에 감탄을 한 모양이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카지노 게임의 특별한 집중력, 다시 말해 새롭고도 생소한 세계에 자신을 가감 없이 빠트리고야 마는 모종의 자기희생(自己犧牲)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한 가지 일에 빠져들었다는 것만으로 카지노 게임의 칸타타를 설명해 내기는 어렵다. 그 시절 카지노 게임의 독서는 가족에게 기쁨을 주는 행동이었으니까.

카지노 게임의 방을 청소하면서 본 메모로 유추해 볼 수도 있겠다. 카지노 게임가 한참 칸타타에 빠져있을 때였나 보다. 카지노 게임는 밤늦게까지 칸타타를 듣다 잠이 들었던 듯했다. 카지노 게임의 책상 위에는 메모가 쓰인 16절지 한 장이 있었고, 그 메모 옆으로 대학 입학을 축하하면서 아버지가 선물한 만년필이 뚜껑이 열린 채 놓여있었다. 메모는 그랬다.

죽음만큼 중대하고 실질적인 문제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또박또박 써 놓았다. 카지노 게임는 죽음의 문제에 빠져있었던 것일까? 칸타타는 종교음악이고 종교란 죽음을 다루는 것이니까. 내가 카지노 게임의 메모를 읽고 난 후 그런 의문에까지 이른 것은 그로부터 훗날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카지노 게임의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카지노 게임가 죽음의 문제에 집착했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카지노 게임의 책상에는 늘 칸타타의 가사를 해석하기 위한 독일어 사전이 놓여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성경이나 십자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카지노 게임의 표정은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칸타타를 들을 때의 카지노 게임는 참지 못해 감격해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칸타타를 듣지 않을 때에는 평소처럼 묵묵했다. 그 글귀란 그저 다른 누군가의 말을 옮겨 적었을 뿐이라는 가정이 타당할 것 같다.

카지노 게임가 칸타타에 빠져든 것은 그저 칸타타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해 낼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도대체 어떤 이유가 더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카지노 게임의 방에서 음악 소리가 멈추었다. 잠시 후 브이자로 펼쳐진 카지노 게임의 구두가 반대방향으로 돌려지면서 카지노 게임는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카지노 게임는 대문 옆의 화장실로 가지 않고 내게로 걸어왔다. 더운 기운에 그때껏 마루에 앉아있던 나는 카지노 게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몇 초간 가만히, 카지노 게임는 서 있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그게 뒤춤에서 나왔는지 카지노 게임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왔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간 카지노 게임에게 무언가를 받아본 일이 거의 없었기에 나는 쉽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하지만 곧, 카지노 게임가 들고 있는 것들의 부담을 눈치껏 알았으므로 카지노 게임가 내민 것을 받았다. 통장과 도장이었다. 손 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이제 다 들어봤다. 됐다.”

무슨 말인지 나는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통장을 만지는 내 손의 감각은 편안해져 있었다. 통장에 쓰인 카지노 게임의 이름이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카지노 게임의 얼굴을 쳐다봤다. 카지노 게임는 빙긋이 웃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는 돌아서서 카지노 게임의 방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칸타타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며칠 뒤, 카지노 게임는 방안에 있던 오디오를 내다 팔았다. 오디오가 처음 들어오던 날처럼 누군가가 와서 카지노 게임와 함께 오디오를 내갔다. 연결된 선들이 하나하나 해체되고 오디오는 방바닥에 덩그러니 놓였다가 하나씩 둘씩 들어오던 때처럼 집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와 함께 오디오를 내간 카지노 게임는 한참 뒤에야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디오를 팔아치운 값인지 지폐 다발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예쁜 옷 사 입어’라고 카지노 게임가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낯설어서 웃음도 눈물도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당장 카지노 게임의 통장에는 돈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달부터 카지노 게임의 월급은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왔다. 몇 달째 카지노 게임가 칸타타를 듣지 않자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즈음부터 카지노 게임는 저녁마다 내 앞으로 걸어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니?’, ‘아버지는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 것 같으냐?’, ‘어머니 소원이 무얼까?’, 그런 것들이었다. 카지노 게임는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내게 친절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카지노 게임는 퇴근 후에 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엄마 대신 된장국을 끓이기도 했다. 그다지 훌륭한 맛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리고 엄마의 소원대로 맞선을 보러 다녔다.

나는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서 우리 가족은 카지노 게임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회복했고, 그 믿음은 마침내 십여 년 전 고시 1차 시험에 합격하던 때의 카지노 게임에 대한 믿음을 넘어서 있었다. 카지노 게임는 집안의 기둥답게 든든하게 우리를 지탱하기 시작했다.

월급 말고 어디서 돈이 생기기라도 하는 날이면, 카지노 게임는 아버지의 양복을 사들고 들어오기도 했고, 엄마를 위해 돌침대를 사들이기도 했으며 나를 위해 머리핀을 사 오기도 했다. 내 기억에는 그것이 레코드를 내다 팔아서 생긴 돈이었던 것 같다. 카지노 게임 방의 한쪽 벽을 채우고도 남았던, 터무니없이 많았던 그 칸타타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누군가의 손에서 누군가를 위해 조화로운 성가를 들려주고 있겠지.


겨울이 닥쳐오자 나는 카지노 게임 손에 이끌려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늦깎이이긴 했지만 어릴 적 꿈대로 나는 국문학도가 되었다. 카지노 게임는 내가 하던 공장일을 그만두게 했고 카지노 게임의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을 시켜주었다.

나는 첫 학기 기말시험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카지노 게임는 내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서 몇 번이고 술을 마셨다. 그리고는 나를 먼저 시집보내고 나서 이듬해 봄에 엄마가 짝을 지워준 작고 예쁜 여자와 결혼을 했다. 카지노 게임가 결혼을 하면서 우리는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의 새 집은 남향의 빛 바른 곳에 터를 잡은 깨끗한 집이었는데, 카지노 게임가 어떻게 그런 집을 구했는지는 몰랐지만 내 남편까지 우리 식구 모두는 지금도 카지노 게임를 자랑스러워하며 그 집에서 살고 있다.

이사하고서 3년은 카지노 게임도 함께 살았다. 그 3년 동안이 넘치게 행복해서 지금도 아득하다. 카지노 게임는 캐나다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고 올케 언니와 조카도 몇 달 지나지 않아 캐나다로 건너갔다. 먼 나라에서 날아오는 카지노 게임의 목소리는 항상 포근했고, 그것을 듣는 우리 식구들은 행복했다. 카지노 게임는 서울의 본사에 들릴 때마다 공항에서 곧바로 집으로 달려와 엄마와 아버지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또 적지 않은 돈을 옛날의 그 통장으로 송금해 왔다.

며칠 전 올케가 캘거리에서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슬쩍 물어봤다. ‘카지노 게임는 요즘 뭐 하고 놀아요?’, 하고. ‘지금은 아이들이랑 하키 갔어요.’하고 답이 건너왔다.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이 행복이 모두 바흐의 칸타타 때문은 아닐까, 하고. 나는 때때로 카지노 게임에게 물어보리라 작정하기도 한다. ‘카지노 게임에게 칸타타는 무엇이었는지’를. 하지만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번 추석 땐 꼭 물어보아야겠다. 다들 묵은 얘기처럼 관심 없어하는 척하지만 엄마와 아버지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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