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엣가시이던 백색 카지노 쿠폰를 버렸다. 카지노 쿠폰는 죄가 없다. 헤어진 우리 사이에서 이케아 카지노 쿠폰가 대신 죗값을 치르고 있다. 카지노 쿠폰들이 흰빛을 뽐내며 그의 집에서 우리 집으로 옮겨와 존재감을 내비치는 동안 우리는 그때 그때 용도에 맞게 사용했기에 고마운 물건이었지만, 그가 떠난 후엔 얼른 내다 버려야겠다는 생각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진열대에 떡하니 버티고 있던 연애 초기에 찍었던 설렘 가득한 스티커사진과, 이사 온 기념으로 사진관에서 찍은 마주 보는 얼굴이 담긴 액자와, 유행에 맞춰 인생 네 컷에 들인 우리 모습을 어딘가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두었기에 빈 진열대에는 책이 들어섰다가 이내 치워지고 토스터와 밥솥과 헤어드라이어로 채워졌다. 불현듯 흰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성가신 물건을 치워야겠다는 마음을 들어차니 얼른 행동으로 옮겨야겠어서 행동파가 나섰다. 이 카지노 쿠폰들도 내 표정을 읽었는지 손잡이 달린 각진 서랍장은 더 칙칙해 보였고 진열대는 칠이 벗겨진 티가 제법 나서 마치 우리 둘이 다투는 동안 서로를 긁고, 그로 인해 서로에게 긁힌 자국으로 보였다. 그가 처음에 자신의 공간에 카지노 쿠폰들을 들였을 때 얼마를 주고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2025년 1월 이 물건들의 값을 쳐주자면, 둘이 합쳐 7천원이다. 이케아 카지노 쿠폰임에도 7천원인 이유는 구청에 대형폐기물 신고 시 처분을 위해 내야 하는 수수료가 7천원이기 때문이다. 당근으로 팔면 소액이라도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중고거래에 재도전할까 생각해 봤지만 영 아니올시다여서 깔끔하게 가기로 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UY NOW! THE SHOPPING CONSPIRACY(지금 구매하세요: 쇼핑의 음모)를 본 이후로 2025년에는 덜 사고, 덜 낭비하는 삶을 살려고 맘먹었지만 비움의 미학도 필요한 법이라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키며 대형폐기물 신고서를 인쇄하여 서랍장 위에 붙인다. 서랍장은 아래에 바퀴가 달려있어서 밖으로 옮기기에 수월했지만 진열대를 지탱하는 부분에는 바퀴가 없어서 끌고 갈 때 요란하게 드르륵, 덜덜덜, 소음을 내었다. 그와 공유했던 물건들을 하나씩 버리며 나를 압박해 온 감정들을 하나씩 덜어낸다. 그가 떠난 직후, 비움의 속도가 가열하게 올라가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외면하였다.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고 나서야 해가 넘어가면서 분기점이 되어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를 추진력에 발동이 걸려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을 버릴 결심이 섰다.
버리기 시작하면 한없이 버릴 수 있다. 새로운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공유했던 물건을 버린다는 건 꽤나 능동적인 행동이다. 아직 쓸 만한 물건은 기부할 계획인데 여행가방에 물건을 담고 기부처까지 가려면 날씨도 받쳐줘야 되고 당도하기까지 거리도 멀어서 맘먹고 가야 한다. 전쟁 같은 사랑은 끝났고 패잔병처럼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다. 다행인 것은 '집안은 깔끔해야 한다.'는 신조가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분주히 물건들을 치우고 재배치하고 버릴 건 버리고 있다. 물 수(水) 자가 들어간 매주 수요일엔 투명한 물병에 차가운 물을 담아 화분에 물을 주며 식물들에게 남는 건 너네뿐이라며 식집사로서, 초록손으로서 투정을 부린다. 한동안은 종일 내가 처한 상황을 자책하며 골몰하여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두하였으나 희한하게도 해결책은 단순하다. 애써봤자 복기해 봤자 남는 건 고통뿐이므로 쓰잘데기 없는 애씀이고, 물건을 비우면 생각도 비워지기 마련이라는 단순한 지혜를 발견했다. 정말 놀랍게도, 아니 전혀 놀랍지 않게도 누군가의 되지도 않는 위로처럼 말 그대로시간이 해결해 준다. 기본템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이케아 카지노 쿠폰가 우리집에서 대형폐기물 구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나의 삶도 다른 삶으로 옮겨간다. 과거는 과거에 두고, 주어진 오늘에 집중하여, 원대한 꿈을 품고(아니, 굳이 또 원대할 필요까진 없고 소소한 재미를 곁에 두고) 한 치 앞을 모르는 모험길에 오르면 된다. 어쩌다 발에 걸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온몸이 흙먼지로 뒤덮여 상흔이 남더라도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면 몸이 알아서 회복한다. 지독한 비용을 치른 이별여행 끝에 7천원짜리 이케아 카지노 쿠폰를 떠나보내지만, 미련은 없다. 최종가인 7천원짜리 카지노 쿠폰 인생도 우리집에서 살 만했으리라 확신한다. 다른 집에 가서도 잘 살아. 안녕.
들리는 에세이: 이케아 카지노 쿠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