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우리는 서로를 몰랐다
다가올 처음에 대한 기대는 언제나 화려하다.
하지만 지나간 처음에 대한 기억은,
대개 아쉬움과 섭섭함에 눅눅하고, 무겁고, 건조하다.
마치 오래된 상자 안에 눌려 있던, 빛바랜 사진처럼.
⸻
2005년 겨울.
백마마을에 들어서는 버스 안에서,
나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 발을 내딛는 거리.
처음 계약한 학원으로 향하던 그 길.
하얀 입김이 터지는 찬 공기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은, 유독 무겁게 다가왔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잰걸음,
무거운 책가방을 멘 학생들,
건물 앞 삼삼오오 서성이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어두운 얼굴들.
그 모든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
그때 나는 스물다섯.
대학을 졸업하고, 몇 번의 시험에 낙방한 뒤
무너진 계절을 건너고 있었다.
그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어깨는 자꾸만 아래로,
고개는 자꾸만 숙여졌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 시절의 나에게
너무도 큰 결심이자,
어쩌면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꽉 쥐고,
그 학원의 문을 열었다.
⸻
내게 주어진 첫 수업은
예비고1 대상의 수능 독해.
떨림과 걱정으로 서 있던 나와,
새 출발을 앞둔
반짝이는 눈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함께한 교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정말 설레기만 했을까?
⸻
유독 뒷자리에 앉은 한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하얀 얼굴. 검은 테 안경. 날 선 머리카락.
하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었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내 수업을 듣고 있지 않았다.
교실 가득 찬 스무 명의 학생 중,
유일하게 아무것도 쓰지 않고,
유일하게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유일하게 나를 보지 않았다.
애써 외면하려 해도,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자꾸 내 시야를 뚫고 들어왔다.
⸻
그때,
천천히 움직이는 손끝이 보였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내가 가르치는 교재의 답지를 꺼냈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내 입과 답지를 비교했다.
나는 그 눈빛에서
증오에 가까운 날카로움을 느꼈다.
“아,
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나를 믿지 않는구나.”
⸻
그 순간,
발끝부터 차가운 기운이 올라왔다.
나는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고,
그 떨림은 곧 말이 되었고,
눈물이 되었다.
수업 시작 10분도 안 되어,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앞에서 울고 말았다.
⸻
모두가 당황한 순간이었다.
나 역시도.
그토록 많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앞에서
그렇게 울어버린 건 처음이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일단 교실 밖으로 나와 눈물을 닦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나는 지금 이 교실에 혼자다.”
⸻
머릿속은 소란스러웠다.
이 상황을 수습하라는 이성과,
나를 무시한 학생에게 받은 상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때, 본능이 말했다.
“지금 포기하면, 나는 아무것도 될 수 없어.”
나는 다시 크게 숨을 들이쉬고,
아무렇지 않은 듯 교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
그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을 가르쳤는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나는 건 딱 하나.
“시간은 흐를 것이고,
이 수업은 반드시 끝이 날 것이다.
그러니 그냥, 끝까지 해내자.”
⸻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났다.
문제는,
다음 날 또 그 반을 가르쳐야 했다는 것.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무서웠다.
눈물 사건은 소문이 되었고,
나는 ‘처음부터 울어버린 선생님’으로 남았다.
그 반.
그 시간.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나에게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가 되었다.
⸻
하지만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회피할 것인가.
맞설 것인가.
나는 후자였다.
⸻
나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교실에 들어갔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농담을 건넸다.
나는 준비해 온 수업을,
더 단단하게 준비해 온 수업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
놀라운 건 그 수업이 끝난 뒤였다.
그 학생이
조그만 초콜릿과 쪽지를 들고
조용히 나를 따라 나왔다.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최근 외고에 떨어졌어요.
그래서 심술이 나 있었어요.
원래 선생님이 아니라
너무 어린 선생님이 들어와서 불안했어요.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
나는 알게 되었다.
그 겨울을 지나고 있었던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
그 교실에는
설렘 속에 고등학교를 준비하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있었지만,
낙심과 실패를 안고 온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내가 먼저 부서진 마음을
조금 더 따뜻하게 품지 못했다.
⸻
살다 보면
어떤 시간은 한겨울 입김처럼
너무 차갑고,
그 숨결에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하지만,
그 하얀 숨이
때로는 가장 따뜻한 공기이기도 하다.
그 시절,
나의 겨울이 그랬다.
선생님으로서의 첫 시작.
그 겨울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