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쿠폰, 무역으로 읽다 - 3
1929년,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시작된 주식시장 붕괴는 단순한 금융 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전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는 대공황의 시작이었고, 이 경제 재난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각국이 자국 경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보호무역 정책이었습니다.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오히려 그 흐름을 주도한 국가였습니다.
대공황은 갑작스레 찾아온 충격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 이후 누적된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결과였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각국은 군수물자와 식량 생산을 위해 산업 생산력을 극대화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 생산 기반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특히 카지노 쿠폰은 유럽 전쟁국들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물자를 공급하면서 급속히 산업을 확장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유럽의 수요는 급감했고 부채를 갚을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생산을 멈추지 않았고, 자동차, 전자제품, 농산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급 과잉이 심화되었습니다. 동시에 소비자들은 신용 대출에 의존한 소비를 이어갔고, 금융 시스템은 점점 불안정해졌습니다. 기업의 주가는 실물 경제의 가치보다 훨씬 과대평가되었고, 거품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1929년 10월, 이른바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을 시작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하며 위기는 현실이 됩니다. 수많은 금융기관이 줄줄이 파산했고, 대량 실업과 소비 위축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와 일자리 확보를 위해 '관세 장벽'을 선택합니다.
1930년 통과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약 2만 개 이상의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명분은 분명했습니다. 외국 상품을 막고 자국 제품 소비를 유도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곧바로 다른 나라들의 보복 관세를 불러왔고, 세계는 일제히 무역 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세계는 이미 상호의존적인 글로벌 경제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는 단순한 내부 대응이 아니라 전체 세계 질서를 흔드는 행위였습니다. 수출이 줄자 미국 내부의 재고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농산물 가격은 바닥을 쳤으며, 산업 생산은 멈춰 섰습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세계 무역량은 1929년 대비 1932년까지 절반 이상 감소했고, 각국은 자국 중심의 폐쇄적 경제 체제, 이른바 고립주의로 급속히 회귀했습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국가들은 전후 복구가 미진했던 독일, 일본, 이탈리아 같은 신흥국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경제 회복을 위해 해외 시장에 접근하는 대신, 오히려 식민지 확대와 군사력 증강을 통한 자급자족 경제 체제를 모색하게 됩니다. 블록 경제 형성과 그로 인한 긴장 고조는 결국 국제 협력보다는 경쟁과 갈등을 강화시켰고,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토양을 형성하게 됩니다.
대공황은 단순한 금융 위기가 아니라, 세계가 잘못된 무역 선택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침몰시킨 사례였습니다. 미국이 선택한 보호무역은 단기적으로는 자국을 지키는 방패처럼 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 질서를 붕괴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쓰라린 경험은 전후 세계 질서 재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통해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GATT 체제 구축에 앞장서고, IMF, 세계은행 등 새로운 국제경제 기구들을 주도하게 됩니다. 무역의 자유로움이 곧 평화와 번영의 조건이라는 인식이, 이 시기를 거쳐 미국의 국가 전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 중 하나로, 무역과 자원의 문제가 어떻게 얽혀 있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