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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r 18. 2025

온 그녀들_카지노 게임 추천


식빵과 스콘은 불과 4시간 전, 가루상태였을 때 만해도 다음 날, 비행기를 타게 될 줄은 몰랐다. 미리 알았다면 아마도 이스트 빨 제대로 받아서 조금 더 부풀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빵이 되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다. 부서졌다 사라질 뿐. 무엇이 될지 모르는 천진한 가루였을 때를 그리워하면서 찔찔 짜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가루시절은 암흑과 같다. 암흑도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빛 자체가 없으니까. 볼 수는 없어도 소리는 들을 수 있다. 말도 안 돼. 가루가 어떻게 소리를 들어?라고 추궁한다면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런 것이라고 밖에는.

우리는 노력했다. 빵과 스콘이 잘되기 위해. 그런데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우리의 창조주는 빵을 만드는데 정말 중요한 설탕을 잊었다. 설탕을 빼먹은 채로 반죽이 뭔가 이상하다고만 생각하며 계속 반죽을 주물렀다.


여자가 빵을 실패한다면 떠나지 않을 것이다. 떠나지 않으면, 여자는 울 것이다. 빵들은 특히 눈물에 약하다. ‘눈물 젖은 빵’ 이야기는 빵들의 세계에서 발설하는 순간 처량해지는 금기와도 같다. 우리는 눈물 젖은 빵이 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설탕을 넣지 않았다는 것을 여자에게 알려야 한다. 점성이 생긴 우리는 최대한 뭔가 이상하다는 감각을 여자 손끝에 계속해서 전달했다. 이스트의 먹이인 설탕이 없다면, 눈물 젖은 빵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설탕이 놓인 그릇 쪽으로 계속 몸부림을 쳤다. 가루시절의 힘까지 탈탈 털어서.

반죽이 정말 이상해.

드디어 우리의 창조주가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설탕을 보... 보... 본다. 드디어 설탕을 넣는다! 야호오오... 하아암... 졸린다. 설탕을 넣으면 우리는 부드러워지고 곤한 잠에 빠진다. 가루시절은 완전히 종료다.

가루시절에는 주로 무엇이 될지 꿈꾸는 것이 주된 일과이다. 벌써 까마득한 가루시절을 회상해 보면, 모든 가루 입자들은 각기 다른 꿈을 꾼다. 물론 꿈을 꾸지 않는 가루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꿈을 꾸지 않는 것도 꿈꾸는 것이다. 꿈을 꾸는 게 좋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그녀를 데리고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밀가루에서 식빵과 스콘으로 빚어지고 구워져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의 눈은 부어있었다. 빵들은 가루시절 들었던 흐느끼는 소리와 부은 눈은 분명 연관이 있을 거라 추측했다. 이스트를 넣으면 부푸는 자신들처럼 인간에게도 무언가를 첨가하면 부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무언가가 무엇일지 우리는 궁금했다.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까.


여자는 빵을 만들던 테이블 정리가 끝나자 다정한 눈길과 목소리로 마르코, 마르코... 회색 털빛을 가진 짐승을 불렀다. 여자가 장난감을 이리저리 흔드는 대도 마르코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만 할짝. 여자의 다정함이 불길한 암시라도 되는 냥, 의도적으로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우리였다면, 빵부스러기를 흩뿌리며 장난감을 향해 몸을 날렸을 것이다. 지금도 몸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운명을 거부할 수는 없는 법. 빵으로 태어났으니 빵으로 살다 가야 한다. 그게 빵다운 삶이다.


여자는 빵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선물한다. 친구들의 취향을 고려해 어떤 빵을 만들지 고민하는 시간부터 즐겁고, 들뜬다. 여자가 그럴 때면, 우리는 포대자루 안에서 회오리를 일으킨다. 포대 안에 바람이 분다. 어떤 숨결이 느껴진다.


여자에게서 쉽게 나오지 않는 표정이 빵을 만들 때는 나왔다. 촉촉하게 잘 구워진 미소와 안도가 뒤섞여 있다. 즐거운 마음이 빵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가 부풀었다. 식빵은 달지 않은 요거트와 스콘은 달고 부드러운 대추야자를 품었다.


여자는 서둘러 집안을 정리했다. 정리하는 도중에도 마르코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해. 마르코, 하루만 있다가 올 거야. 널 돌봐줄 친구들도 오니까, 기대해도 좋아.”


침대 방 창문을 열고 이불을 털고 청소기를 돌렸으며 평소라면 잘하지 않던 물걸레질도 했다. 방정리가 끝나자 의자 위에 걸려있던 노트북 가방에 책, 양말, 속옷. 파우치 등을 넣었다. 노트북까지 넣으니, 가방이 묵직했다. 여자는 가방을 메어보고 방을 왔다 갔다 걷더니, 코끼리가 수놓아진 진초록 가방을 꺼냈다. 거기에 지갑, 아이패드, 책 한 권, 어린이용 밴드가 들어있는 파우치를 나눠서 넣었다. 서랍장 위에 잠옷은 꺼내놓기만 하고 넣지 않았다. 식빵과 스콘은 여자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냈으나, 무언의 신호라 여자는 알아듣지 못했다.


여자의 손에서 빚어지는 동안 식빵과 스콘은 여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했다. 빵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무언의 신호가 여자에게 통하지 않는 게 슬펐다. 여자에게 잠옷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자는 마르코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너를 돌봐줄 좋은 친구들이 집에 올 거라고. 하룻밤만 지나면 온다고. 거듭 말했다. 우리와 달리 마르코는 그녀와 눈을 맞추고 가르랑 거리기도 했다. 마르코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걸까. 눈동자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여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도 함께 간다. 우리가 있어서 여자가 간다. 여자는 무척 피로했는지 침대로 쓰러지듯 누웠다. 오래 누워있지도 못하고 몸을 일으키더니 책을 손에 쥐었다.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다가도 한 번씩 우리를 뿌듯한 미소를 머금고 바라본다는 것을. 빵인 것이 좋아지는 순간에 우리는 조금 더 맛있어진다. 종이봉투에 따로 담긴 우리는 직각의 죽집 종이가방에 또 한 번 담겼다. 드디어 떠난다. 우리는 누구의 선물이 될까. 오홋! 떠난다! 최상의 컨디션이다.

날씨는 최악이었다. 비 예보가 있었는데, 미세먼지로 세상이 뿌옇다.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탔다. 아쉽게도 기차는 타지 못했다. 아! 잠옷... 카지노 게임 추천는 버스 안에서 잠옷을 넣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불안해졌는지, 종이가방을 꼭 쥔다. 잠옷, 립 글로즈, 티백차... 챙기지 않은 목록이 자꾸 늘어난다. 빼먹은 것들은 여자를 체념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이 없어도 가방은 충분히 무거웠다. 집에서는 떠나왔지만, 일로부터는 떠날 수 없었다. 번역 마감이 다음 주라 일을 해야 한다. 단지, 집을 벗어나서 일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집 밥이 아닌,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 낯선 밥을 먹고 싶었는지도. 낯선 밥. 알지 못하는 맛.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조금 트였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머리가 제멋대로 자란 해조류 같은 여자 알그가 서 있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인사 대신 빵봉투를 내밀었다. 알그는 카지노 게임 추천를 보았을 때보다 빵 봉투를 훨씬 더 반겨주었다. 호들갑스러운 억양과 과장된 몸짓으로 빵 봉투를 가슴팍에 팍 안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과장된 알그의 몸짓이 반가웠다. 가방에 빵 봉투를 넣고서야 알그는 카지노 게임 추천를 보았다. 1년 만에 보는 카지노 게임 추천는 겨울나무처럼 앙상했다. 1년 만에 보는 알그는 찐빵처럼 둥실하게 부어 보였다.

알그는 해야 할 일이 너무 없었고, 카지노 게임 추천는 번역, 칼럼 연재, 강연, 논문, 일본어 공부 등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알그의 시간은 머리칼처럼 축축 늘어졌고, 카지노 게임 추천의 시간은 촘촘했으나 버석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와 알그는 둘 다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 낯선 밥을 맛있게 먹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밥을 좀 남겼고, 알그는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말끔히 비웠다.


알그의 예상대로 카지노 게임 추천의 가방은 무거웠다. 여행의 설렘으로 채워진 무거워도 가벼운 여행가방이 아닌 돌덩이 가득 든 짐가방 같았다. 앙상한 카지노 게임 추천가 메고 들기에는 힘에 부쳐 보였다. 알그는 몇 번이나 가방 바꿔 멜까요? 말하려다 삼켰다. 둘 사이에 조금 안 어울리는 문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알그와 카지노 게임 추천는 수식어 하나 없는 평서문 같았다. 형용사나 감탄사가 끼어들기에는 긴장도가 높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생일 기념으로 1월 초에 놀러 가겠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논문 마친 기념으로 여행을 왔었다. 그냥 떠나는 여행이 되지 않는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는 여행에도 ‘기념’이라는 명분이 필요했다. 알그는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생일이 언제인지 묻지 않았지만 선물을 준비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었다. 그냥 주기에는 어색해서 알그 역시도 명분을 앞세웠다.


“생일 선물이에요.”

“양말인가요?”


알그는 무엇을 샀는지 바로 말하지 않았다. 어른이 어른에게 할 법한 선물은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이 있어서였다. 입 밖으로 이거다,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카지노 게임 추천의 숙소 쪽으로 걸었다. 미세먼지가 자욱해 모든 풍경이 희미하고 의뭉스러웠다.


카지노 게임 추천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마치 인형극 무대 위의 인형처럼 배우가 줄을 잡아당겨 걷는 느낌. 숙련된 배우가 아니라서 인형의 움직임이 어색한 상태, 꼭 그렇게 걷고 있었다. 오랜 가뭄으로 강바닥이 다 드러나고 곳곳에 고여 있는 물들은 탁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비가 오길 간절히 기도해야겠어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 낱말이 알그는 좋았다.

‘간절히’와 ‘기도’

알그의 선물은 필통이었다. 8년 정도 쓴 헝겊필통을 버리고 학용품을 정리했다. 칸칸이 나누어져 있어 포스트잇, 마스킹 테이프 등, USB, 지우개. 한 데 어지럽게 섞여있던 것들을 분리해서 넣었다. 자신도 몰랐던 하지만, 필요했던 필통을 선물해 준 알그에게 고마웠다. 코끝이 찡했다.


그 시각, 알그는 커피를 내렸다. 식빵을 썰어 접시에 담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의 식빵은 특별하다. 부드럽고 촉촉한 일반 식빵과 다르게 촘촘하고 다부지다. 먹으면 힘이 솟는다. 일반 식빵은 사 먹을 수 있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의 식빵은 카지노 게임 추천의 손에서 나온다.


알그에게 그림책의 세계를 열어준 건 카지노 게임 추천였다. 좋은 그림책을 손에 쥐면 카지노 게임 추천를 떠올린다. 그림책이 있어 늙는 일이 걱정되지 않았다. 오랜 친구들은 멀리 있고, 희미해진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알그에게 생생한 사람. 가까이 있고 선명했다. 하루만 늦게 왔으면 좋았을 걸. 다음 날, 미세먼지가 걷히고, 맑고 시린 겨울 하늘이 나왔다.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는 빵이 있다. 든든하다. 빵이 있다면 카지노 게임 추천는 언제, 어디로든 출장을 갈 수 있다. 빵이 명분이 되어줄 것이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봄에 다시 올 것이다. 빵과 함께. 그때는 아마 봄이라는 명분을 끌어올 것이다. 빵과 함께 오는 카지노 게임 추천를 맞이하기 위해 알그는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 안경 세로줄 얼룩이 떠올랐다. 눈물자국이었을까. 알그는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원피스의 용도가 떠올랐다. 안경닦이로 딱이네. 아니면... 손수건을 볼품없게 만들어주는 거야. 울다가도 어이없어서 웃음 나오도록. 알그는 잘 만들 자신은 없었지만, 볼품없게 만들 자신은 있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자신이 글을 너무 못 써서 울었단다. 수수께끼는 풀렸고, 카지노 게임 추천를 빵으로 친다면, 가루시절에는 상상하지도 못 한 일이었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날마다 오랜 시간 자판을 두드린다. 글을 쓰고 또 쓴다. 가루들은 응원하고 알린다. 글을 쓰는 비법을.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무언과 공짜로 전수한다. 가루들의 움직임을 카지노 게임 추천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글이 안 풀릴 때, 빵을 만들고 난 후 글이 술술 써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을 것이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알그와 헤어지고 난 뒤 숙소 1층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번역 작업을 했다. 집에서 하는 것보다 잘 되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1박 2일은 무엇이었을까.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가루시절이 있었다면, 어떤 꿈을 꾸었을까. 카지노 게임 추천는 빵이 된다면, 어떤 빵이 되어 누구에게로 가고 싶을까? 카지노 게임 추천의 빵을 먹는 동안 알그는 카지노 게임 추천에 관한 상상을 탄생시켰다. 알그의 상상이 더해진 카지노 게임 추천는 전과 또 다른 사람이었다.


알그는 카지노 게임 추천와 보낸 시간을 소설처럼 써두고 싶어졌다. 알그는 오랜만에 이름을 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그는 미역처럼 치렁치렁한 머리카락과 카지노 게임 추천의 빵을 함께 씹었다. 우리가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알그는 알지 못했지만. 맛있게도 먹더라. 알그는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번역, 칼럼기고, 강연... 자신이 최근까지 꿈꾸던 미래를 카지노 게임 추천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횡단보도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가 했던 말이 갑자기 어떤 계시처럼 떠올랐다.

“발효가 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니까요.”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빵 부스러기를 훔치며 무엇보다 발효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몇 달 전부터 장바구니에 넣어놓기만 했던 ‘제과제빵 프랑스어’ 사전을 구매했다. 빵을 굽고 싶은 건지,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낯선 이름들을 만드는 데 도움을 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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