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눈보라가 휘휘 몰아친다. 순천에 살면서 이렇게 거센 눈발은 처음이다. 옆집 야자수 나무의 부채살 모양 커다란 잎들이 세차게 흔들리며 눈을 쏟아내는 듯하다. 겨울 패딩을 다시 꺼냈다.
카페를 둘러보다 창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생명처럼 나부낀다. 정지할 듯 느리게 서서히 내리다가 순식간에 정신없이 나린다. 반짝 해가 들고 눈이 사라질 듯 내린다. 눈송이의 하강을 끝까지 지켜볼 수 없어 아쉽다.
어제는 오후 4시가 넘어서 밖으로 나갔다. 보통은 밖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인데...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조금 어리둥절했다. 토방에 잠시 앉아 시간을 보냈다. 바람은 찬데, 볕은 따사롭다. 요 며칠 방에만 있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마당으로 잠깐씩 나와 볕을 쬔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손등에 손을 올려보니 따땃하다. 겨우내 퍼렇게 얼어있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손이 봄볕에 녹나 보다. 얼굴빛도 전보다는 생기가 돈다.
메려다 노트북 포함 이것저것 넣은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았다. 가방 없이 털레털레 걸었다. 등과 어깨가 허전했지만 무얼 하지 않아도 된다. 오고 있는 친구를 카페에서 기다리려다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서 사람 구경을 했다. 벚나무 아래에는 붉은 톤의 모자를 쓴 할머니들이 쫄로리 앉아 있었다. 커다란 바위 위에 널브러져 누워있는 아이, 모래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음료를 마시는 아이, 홀로 앉아 있는 사람, 손목 스냅으로 가분하게 줄넘기를 하는 남자. 공원 풍경은 다채로웠다.
5시가 다 되어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두어 모금 마시니 친구가 왔다. 친구는 그림책 '검은 돌'을 꺼내 내게 건넸다. 책반납 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발견한 그림책인데 돌'이 나와 내가 생각났다고. 뒤표지에 실린 글을 옮긴다.
딸과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무엇으로 사는가.
반복되던 여성의 역사는 이 책에서 끝난다.
모든 딸들이 이 책을 읽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떠나길 바란다.
내내 울더라도.
정희진 (서평가,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나를 떠날 때 비로소 나는 떠날 수 있다. 그렇게 떠나더라도 내내 울 것이 빤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앞에서는 차가운 내 마음 안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잃은 슬픔은 살아남지 못할 것처럼 말하지만.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파도 사이로 수많은 돌이 검게 빛났다.
밀물에 젖고 썰물에 흔들렸지만
돌은 아무런 저항 없이 그저 거기 있을 뿐이었다.
저 돌은 이곳이 아닌 저곳을, 이것이 아닌 저것을 원하지 않겠지.
누군가를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림책의 한 페이지가 마음을 툭. 떨어뜨린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문장.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방에 모로 누워 있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 생각이 자동으로 난다. 그러고 나면, 아름다운 풍경도 맛있는 음식도 조금은 식어버린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창가 자리에 모녀가 앉았다.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눈을 바라보다 띄엄띄엄 이야기를 나눈다. 눈이 내리는 풍경 앞에 모녀가 있다. 눈이 아니라 모녀에게 눈길이 머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랑 눈앞에 보이는 저런 시간을 다시 보낼 수 있다면...
'검은 돌'을 들고 짬을 내어준 친구에게 고맙다. 6시 30분이 넘었는데도 밝다. 내가 좋아하는 살구빛 노을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간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매화향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