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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Jan 28. 2025

카지노 쿠폰가 생활이 되기까지

카지노 쿠폰 찾아가는 과정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좋아하다 보면 그것이 내 특기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짧지 않은 내 인생에서 나는 힌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무관심했고 그 무관심한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알고 싶을 때,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지? 너는 그런 걸 찾아서 참 좋겠다. 부러워. 난 왜 모를까. 알 수 있을까?" 다 늦게 대학 전공과는 전혀 다른 공부를 하고 경력을 쌓아하는 친구를 보며 언젠가 이런 말을 했었다. 그렇게 불안정한 마음으로 수년이 흘렀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힌트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있었다. 책이 별로 없던 우리 집에 어떤 이유로 들어온 '이원수 아동문학 전집'을 읽고 또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카세트 라디오에 테이프를 꽂아 녹음 버튼을 누르며 이원수 작가의 연극대본을 읽으며 나름 효과음도 내며 녹음도 했었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였는지 갓 중학교 입학해서였는지 그때는 집에 굴러다니던 (누가 읽었는지 모를) 정비석의 손자병법을 읽으며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친한 친구 둘과 함께 한 방이 도서관 수준으로 책으로 가득했던 친구의 집에서 친구 아빠 몰래 책을 가지고 나와 돌려가며 읽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았던 재미있는 소설은 중국 작가 김용의 무협소설 시리즈였다. 영웅문, 의천도룡기, 동방불패 등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던 어떻게 보면 엇비슷한 구조의 권선징악이 뚜렷한 이 소설들을 사랑했다. 이 작품들을 계기로 '이야기 중국사'로 기억되는 고대 중국사 책을 읽었었다. 또한 사춘기의 암울한 시기에는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빠지기도 했었다. 아마도 이 시기가 내 카지노 쿠폰 인생의 최전성기가 아니었을까. 공부는 안 하고 하루에 두세 권을 읽었으니. 그 이후로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그리고 삼십 대 초반까지 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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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쿠폰 다시 책을 손에 든 것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부터이다. 내 주위에는 아무도 육아를 돌봐줄 사람도 관련 지식이나 비법을 전수해 줄 사람도 없었다. 엄마는 바빴고 살림이나 육아 같은 것엔 카지노 쿠폰 보기에도 믿을만한 구석이 없었다. 신기하게 육아 선배인 친구나 자매, 친척도 없었으니 궁여지책으로 찾은 게 '육아서' 읽기였다. 갓난아이와 유아를 위한 지침서인 삐뽀삐뽀 119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아이 교육과 심리에 대한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책 안의 이론은 실제에 적용하기에 괴리감이 있었다. 그때는 거기에 있는 내용들은 '일반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나 엄마들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몰랐고 교육에 성공한 사람들이 쓴 책은 특수 케이스라는 것을 간과했었다.


그 당시엔 까다로운 성향의 아이와 예민한 엄마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에야 이런 성향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카지노 쿠폰 어떻게 성장하면 좋을 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사하는 책들을 볼 볼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평범한 (순둥순둥한 혹은 무난한) 아이와는 다른 딸을 보며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다른 엄마들과 육아나 교육 방식(무조건 어떤 책을 읽혀야 카지노 쿠폰 어떤 학원에 어느 시기에 보내야 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비난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그래도 이제는 각종 심리 서적들을 읽으며 나는 더 늦지 않게 성장카지노 쿠폰 있다.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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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암울하고 무기력한 이삼십 대를 보낸 나는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지 알고 싶은 의지가 없었다. 생각도 용기도 일말의 열정도 없는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끔은 숨고 싶기도 하고 내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가면을 쓰고 나를 숨기고 싶었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세상에 나오고 싶지 않았다. 네까짓게 뭘, 네가 그래봤자지, 이럴 줄 알았지, 겨우 이 정도야라는 식의 말을 들을까 봐 어떤 시도도 하고 싶지 않은 이 구덩이에서 나를 건져준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결혼이었고, 내 딸이었고, 나의 영원한 동반자였다. 그들은 나를 위해 해 준 것이 없다고 할지 몰라도 나의 남편과 딸은 언제나 내 옆을 지켜주고, 손잡아주고, 지지해 주기를 지속하고 있다. 나를 단단하게 둘러싼 껍질을 깨고 나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고, 내 힘이 너무 약해서 안에서 깨지 못할 때는 밖에서 함께 깨 주었다. 내가 뭔가를 하면 열 배, 스무 배로 좋아해 주었고 칭찬해 주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나를 찾고 싶었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블로그에 책리뷰를 부족한 글솜씨로 올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널린 것을 잘 알지만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노력한 결과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었고 매일 읽고 쓰는 것이 업이 되었다. 남편이 "와 대단해!"라고 칭찬할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박차고 나와 카지노 쿠폰 모임을 활성화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 편으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지만 어떤 일인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내 일을 궁금해하면서 엄마는 말 끝에 "돈은 많이 벌어? 얼마나 버는데?"라고 역시나 돈 이야기만 한다. 엄마에게 가치 있는 사람은 돈 버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놀고먹는 사람이라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 한 푼 못 버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책을 읽을 때면, 내 글을 쓸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많은 글들 속에 묻히는 글일지라도 나는 내 마음속 이야기를 글자로 옮기는 것에서 기쁨을, 성취를 그리고 치유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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