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푸름 Oct 25. 2024

4월의 카지노 게임

백수린, <눈부신 안부

안녕하세요.

상록의 서가입니다.


3월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상록의 서가 오프라인 영업 종료 후 휴식을 했습니다. 바쁜 시간을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옛 동창들도 만났습니다. 몇 번을 반복해도 즐거운 추억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로가 기억하는 과거의 모습이 한참 달라 실랑이가 있었어요. ‘아니, 내 기억이 어디서부터 왜곡됐나’라는 생각이 일며 아득해져 버렸습니다. 동창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혹시 그때 내 판단이 잘못됐나’라는 의심에 화끈거리더군요. 이내 ‘나 지금도 잘못 판단하고 카지노 게임 거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몰려왔습니다.


그런 걱정을 잠재워준 백수린의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를 소개해드려요. 소설의 주인공 ‘해미’는 뇌종양에 걸린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오랜 시간 찾는데요. 그 속에서 성장과 희망을 전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해미는 독일 친구 ‘한수’에게 자신의 어머니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선자 이모가 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말이죠. 해미는 첫사랑의 단서를 찾으려 선자 이모의 일기장을 훔쳐 봅니다. 유년시절 추억과 2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사람을 연모하던 선자 이모의 지고 지순한 마음도 엿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라는 명분이 있지만 상처로부터 도망치고 자기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어린 시절의 카지노 게임와 성인이 된 후, 다시 선자 이모의 첫사랑 상대 찾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카지노 게임를 보여주며 성장을 위한 실패의 필연성을 말합니다.


자신을 조건 없이 보살펴 주던 파독 간호사 이모들의 따스한 손길이 아픔으로 인해 움츠렸던 카지노 게임가 도약할 수 있는 힘을 더했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인생에 따스한 온정이 얼마나 큰 희망인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래서 일까요. 작가는 이 책이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잘 가닿아 눈부신 세상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작가의 말에 적어둡니다.


이 소설에서 집중해서 보셨으면 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처음 읽었을 때 놓친 부분이라 아쉽습니다) 제목과도 연관이 있는데요. 바로 ‘안부’입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독일에서, 한국에서 연이 닿았던 사람들이 해미에게 안부를 물어옵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안부’가 고립된 채 살아가던 해미에게 세상으로 나가기 전,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할 수 있는 ‘선글라스’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작은 안부 메시지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는 낙관에, 그 누군가가 자신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저는 아무런 반론이 없거든요.


아마 백수린 작가는 처음 듣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저는 단편소설 <여름의 빌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곳의 이야기도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평단에서는 백수린 작가 소설을 ‘아름다운 문장의 극치’라고 평가합니다. 고운 결과 빛을 가진 문장이지만, 그보다 더욱 빛나는 건 작가의 ‘치유’에 대한 의지, 어리석었던 과거를 마주하려는 용기 같다고 저의 추천 평도 덧붙입니다.


처음 카지노 게임로 돌아가 저의 걱정에 대한 적절한 답은 ‘내 마음을 모르는 것만큼 잘못된 판단은 없지 않나’ 입니다. 해미처럼 과거를 딛고 일어나 진짜 진심을 마주해볼 용기까진 없지만, 우선은 나의 마음을 인정해주자는 결심입니다. 그런 판단이 잘못될 리는 없을 테니까요.


3월이 지났지만 손끝에 도는 시린 기운이 가시지 않아요. 이래서 벚꽃은 피려나 하는 애꿎은 걱정을 세어봅니다. 한 번도 틀린 적없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믿음직스러운 계절이건만, 달력에 적힌 3월에 그만 조급해집니다. 그저 서서히 대지를 데우는 계절의 노고를 느긋하게 바라보면 되겠죠.


상록의 서가 올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