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빛과 길
21세기에 이르러 호주 무료 카지노 게임계는 무료 카지노 게임자 전기 무료 카지노 게임로 국제 무료 카지노 게임제에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이 경향을 이끌어 온 앤드류 도미닉, 저스틴 커젤, 토마스 M. 라이트 등은 무료 카지노 게임에 구조의 책임이 크다고 공통적으로 분석한다. 그들은 ‘악의 평범성’에 주목하였고, 그것을 방조하는 구조를 해부한다. 이들 중 앤드류 도미닉은 호주를 떠나 다른 나라의 무료 카지노 게임 메커니즘을 분석하기도 하였는데, 이번에는 저스틴 커젤이 호주 바깥의 미국으로 향해 미국적인 무료 카지노 게임, 특히 백인 남성들이 저지르는 무료 카지노 게임 유형을 탐구한다.
1974년 걸러 태생의 저스틴 커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네아스트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대체로 무료 카지노 게임자의 일생을 탐구해왔고, 설령 <맥베스나 <어쌔신 크리드와 같은 작품을 연출하더라도 이기적이고 잔혹한 욕망과 폭력성을 고찰했기에 스크린에선 매번 피가 튄다. 그런데 이 핏줄기를 어떤 시네아스트들이 심미적으로 포장하는 것과 달리, 커젤은 경악과 비명을 유도한다. 그 핏줄기를 발생시킨 폭력이 매우 끔찍하고 불쾌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감상자는 내심 공권력이 개입해 이 생지옥을 어떻게든 수습해주길 바라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공권력이 늘 폭력을 방조해왔다고 진단한다. 구조는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피해자 곁을 음흉하게 어슬렁거리도록 협조한다. 또 가정 폭력의 경우 제 관할이 아니라고 답한다. 가정 폭력을 해결할지 말지 결정권을 가장에게 위탁한다. 또한 아주 쉽게 소요 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산업이 성장하는 와중, 국가는 이를 경제라는 이유로 방조한다.
그래서 커젤의 작품에서는 사적 제재가 자주 등장한다. 무력을 지닌 개인의 복수가 성공하면 모두로부터 추앙받는다. 이에 그들은 군주가 된 것만 같은 성취감과 뿌듯함에 중독된다. 자신을 강자로 만들어주는 폭력, 공권력이 굳이 제지하지 않는 바로 그 폭력을 마음껏 휘두르며 정당방위를 넘어서게 된다. 국가 또한 스스로의 통치 방식이 폭력이기에 선을 넘지 않는 폭력을 방조한다고 해석할 수 있고, 이로써 국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개인들 간의 폭력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연쇄를 이룬다. 지금 여기의 무료 카지노 게임자를 다루더라도 구조에 의해서 이전에도, 이후에도 똑같은 무료 카지노 게임자가 있을 수 있다고 커젤은 말하는 것이다. 바로 그 탐구가 미국으로 확장된다.
새로운 대륙에서 프로파일링과 수사를 확장하는 커젤이 진단하길 미국은 빛과 길이 하나다. 도입부,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유대인 DJ가 진행을 하고 있다. 그는 멍청하고도 저열한 백인우월주의 기독교인을 만나 골머리를 썩고 있다. 하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고 차분하고도 지혜롭게 맞받아친다. 이후 기독교, 이를 믿는 백인들이 빠지게 되는 '광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청취자들에게 조언한다. DJ의 얼굴과 그 입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 곧 시각과 청각이 일치하던 무료 카지노 게임는 이내 곧 DJ가 말하는 내용과 시각을 합치시킨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세 명의 백인이 거닐고 있다. 이들은 끈끈한 동료처럼 보였지만, 이내 곧 밥이라는 남자가 앞서 가던 동료 윌터를 배신하고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후 밝혀지길 윌터는 소위 '떠벌이'로서 밥이 은밀하게 준비하던 테러 계획을 외부에 유출하여 차질을 빚었다. 밥은 윌터의 잘못과 실수, 자신과 다른 기질을 이해하거나 항변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자신의 맹신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마치 쓰레기 치우듯 타인의 존엄을 짓밟을 수 있는 게 바로 광신주의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이 광신을 윌터처럼 입으로만 떠벌거리지 않는다. 들려주기보단 보여주는 방안을 택한다. 방법은 '조명'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밥 일당이 길을 나서는 장면을 익스트림 롱숏으로 포착한다. 어둡고 또 어둡다. 빛이 필요하다. 그래서 빛을 쏘지만 그 빛의 소유자는 세 명 중 오직 한 명이다. 그 빛으로 비추는 '길'도 하나요, 대상도 오직 윌터의 '주검'만으로 제한된다. 분명 어둠은 아주 널따란 롱숏에 담겼기에 만약 빛이 많다면, 설령 빛이 부족하더라도 방향이 유연하다면 많은 것을 들춰낼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도입에서 경직된 빛은 오직 하나 밖에 보지 않는다. 밥의 믿음과 관련된 것만을 말이다.
이후 FBI 요원 테리가 그 마을에 파견된다. 마을이 밥만큼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자신의 인종인 '백인'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윌터 살해 시퀀스, 테리 파견 시퀀스, 그 이후에 마을 이곳저곳을 누비는 모든 숏에서 길은 오직 쭉 뻗은 '고속도로' 단 하나 뿐이다. 커젤은 고속도로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광신주의를 가시화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써 상징화한다. 커젤은 무료 카지노 게임 내내 부드럽게 워킹하는 드론으로 거대한 대자연을 하이 앵글 구도의 익스트림 롱숏에 담아내며 숭고함과 경이로움을 부각한다. 하지만 그 광활한 풍경에서 감상자의 눈은 이리 저리 튈 수가 없다. 그 풍경에 단 하나의 거대한 길, 고속도로가 깔려 자꾸만 그 쪽을 보고 따라 가게 된다. 그렇다, 광신주의는 ‘획일화’다. 오직 나만의, 또는 자신과 유사하거나 목적이 동일한 사람들만을 허용하는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사상이자 믿음이다.
커젤은 광신주의의 성격을 더 깊게 파고 들어간다. 광신주의는 나의 믿음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결과다. 여기서 믿음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임을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광신주의는 참/거짓, 옳고 그름으로부터 무료 카지노 게임 내내 거리가 멀다. 사실과는 다르거나 아직 확신할 수 없는 것임에도 어떻게든 믿고 싶은 것은 ‘부정하지만 옳길 바라는 이익’이다. 테리는 마을에 팽배한 신나치주의를 파헤치기 위해 아리아 네이션 교단에 방문한다. 테리는 교단 신부에게 잘못을 따진다, 그리고 가리킨다. 테리가 바라보는 신부의 얼굴이 부조리의 육화다. 하지만 신부는 그 비판에 수긍하지 않는다. 고개를 휙 돌리고 대화를 거부하여 무료 카지노 게임에선 '컷'이 발생한다. 테리가 문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로서 자신은 그의 믿음 하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신부는 본디 밥을 예뻐했었다. 자신들과 방법론만 다르고 단지 극단적일 뿐, 근본적인 믿음은 교단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신부는 이제 와서 밥과 선을 긋는다. 밥과의 접촉이 자신의 권위를 침해하기 때문, 심지어 자신의 교도들을 모두 약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이미에게 밥의 계획이 담긴 책을 넘긴 것무료 카지노 게임 추정된다. 하지만 애초부터 차별적인 인종관과 백인들의 말 같지도 않은 피해의식무료 카지노 게임 점철된 밥의 믿음은 사이비나 이단무료 카지노 게임 규정해 마땅하고, 그가 사이비라면 그에게 자양분을 준 신부 역시 사이비다. 하지만 광신주의자가 무엇을 사이비로 규정할지 말지는 오직 이익 침해 여부다. 그와 자신이 동일하더라도 나는 면피된다. 광신주의자는 진실에 눈이 먼 자들이다.
이들은 아주 치열하게 제 목적만을 추구한다. 여기서 커젤은 광신주의가 종교계나, 지리적으로 폐쇄된 좁은 마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미국을 지탱하는 여러 기관들도 광신적으로 제 목적만 중요시하며, 어쩌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광신주의를 양성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본 작품은 처음엔 선과 악의 대립이 극명해보였다. 선한 쪽은 타인에게 온건한 반면, 악한 쪽은 자신과 유사한 타인이 아닌 이상 가차 없다. 하지만 점차 선하다고 여겨온 이들한테도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테리는 밥을 무리하게 쫓으며 교통 법규를 모조리 어긴다. 상대 차량이 재빨리 대처를 잘했기에 망정이지 큰 규모의 인명사고를 낼 뻔 했다. 그는 법을 어기고 여러 희생자를 발생하면서까지 밥을 쫓으려한다. 그것이 대의이기 때문에? 그것 보단 개인적으로는 과거에 완수하지 못한 일, 공적으로는 FBI의 사명에 있다. 그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제이미를 폭압적으로 몰아세우기도 하고, 밥의 계획에 가담했다는 어떠한 물증도 없는 데비를 과잉 진압한다. 이렇게 국가가 국민에게 내리는 '오더'가 시민들 사이에서도 내면화·관습화된다면, 내 목적을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광신주의자들이 더더욱 많아져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 광신주의자들이 커젤이 늘 탐구하는 무료 카지노 게임자이기 때문이다. 내 이익을 위해선 타인 따위는, 법 따위는 얼마든지 유린해도 좋다는 마인드로 말이다.
커젤은 광신주의자 양성 과정을 더 치밀하게 분석한다. 테리한테 더 큰 의구심이 드는 장면은 그가 '사슴 사냥'을 나설 때다. 그는 정의감에 불타서, 유해 조수를 퇴치하고 개체수를 조절하겠다는 사명으로 사슴을 사냥하는 게 아니다. 앞 시퀀스에서 그가 무시당했기에 사냥이 주는 일련의 쾌감이나 성취감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목적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무료 카지노 게임자를 쫓는 것도 정의와는 무관한 일일 수 있다는 의심이 조금씩 피어오르지만, 더 중요한 숏은 다음이다. 밥이 사슴을 겨냥하는 테리의 얼굴을 은밀하게 조준한다. 인간의 기분을 위해 동물을 사냥 및 지배하는 행위가 인간한테서 인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료 카지노 게임 속 대사, "짐승처럼 죽여 놓았네."처럼 인간 스스로가 보호하고자 하던 인권에 대한 합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형국이다. 광신주의자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데 어떤 거리낌도 없어 한다는 것은 밥이 제 아들, 클린턴을 교육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밥은 미취학 아동인 클린턴에게 사격을 가르친다. 빈 병을 정확히 맞추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주변의 얼빠진 남자들은 그걸 보고 "잘했다"라고 시시덕거린다. 본디 그 나이 때 아이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기분에 따라 자신보다 작은 생물들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사회화 교육은 아동의 감수성이 타인, 더 나아가 약자와 소수자를 동등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공감 능력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커젤은 이 방향이 뒤집혀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 악한 본성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마음껏 하라고 모든 제재를 해제한다. 심지어 감독의 전작 <니트람처럼 누구라도 총기를 살 수 있는 산업이 번창해있다. 오직 제 기분만 중시하는 이데올로기와 총기 산업이 미국적 광신주의자를 양성하는 조건이라고 커젤은 보는 것이다.
이렇게 용의자로 시작된 그들은 점차 가해자, 무료 카지노 게임자로 확정된다. 하지만 이들은 억울해한다. 뭐, 주변에서 하라고 독려를 했기에 오직 자신만의 잘못은 아닐 테지만, 어찌됐든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임이 더 뚜렷하다. 가해자가 된 이들은 사회에서 밀려 나는 게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그런데 밥은 그들, 바로 그 남성들에게 국가에 의해서, 이 사회를 장악한 유대인에 의해 부당하게 패배한 것이라 선동한다. 그리고 늘 그가 영입하는 인물들에 한해선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본다. 본디 억울함을 호소하는 타우로스의 얼굴은 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볼 수 없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밥은 그 책임을 면피하고 가해자의 가당찮은 억울함에 고개를 끄덕이며, 심지어 눈물까지 흘려준다. 그들을 지긋이 바라봐주는 밥에 의해 이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아야 할 그들은 '리버스 숏'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은 '타자화'하고, 정작 전가한 대상의 약자성이나 피해자성은 뒤집어쓰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도록 누군가가 선동한다. 바로 그 선동가는 마찬가지의 무료 카지노 게임자 밥과 신부지만,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 사회를 활보한다. 이로써 마찬가지의 가해자들과 접촉하며 집단적인 나르시시즘 내지는 동성애·동종애에 빠지는 것이다. 가해자에게 관대한 사회,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구조가 악의 평범성에 빠진 광신주의자를 양성한다.
앞서 이들끼리 리버스 숏으로 상대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스크린에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언급하였는데, 반면 인종이나 성별이 같지 않은 이에겐 리버스 숏을 결코 관대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여성에게 말이다. 밥은 두 집 살림을 차렸다. 본처 데비를 놔두고 질라와 바람을 피운다. 여기서 감상자는 데비와 질라의 이름도 뒤늦게 알게 되고, 그녀들이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무료 카지노 게임 말미까지 잘 모른다. 왜냐하면 밥의 시선에서 그녀들은 온전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그들의 병력을 불려줄 '아기'를 생산하고, 의례에서 세력을 확인시켜주는 용도로만 스쳐 지나간다. 남자의 목적에 의해서만 존재하게 되는 여자들은 남자들을 좀 보고 싶어 하지만, 그들은 그녀들의 시선을 차단함에, 나르시시즘적 리버스 숏 내지는 동성애·동종애적 리버스 숏이 그와 그녀 사이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렇게 남성의 용도 외에는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그녀들은 불륜이라는 배신까지 당하지만, 공감 능력을 철저하게 거세당하던 남자들과 달리, 여성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연민하고 이해하는 '과잉 공감'을 훈련받는다. 즉 가해자는 약자를 짓밟도록, 또 가해자끼리는 부둥켜안도록 설계된 반면, 피해자는 그 가해자를 두둔하고 그저 도구로서 전락하더라도 어떠한 불만도 피력하지 않도록 세뇌되었고, 그것이 광신주의 사회의 근간이다.
광신주의 사회는 무료 카지노 게임 내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묘사된다. 분명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 반유대주의를 신봉하는 강도들이기에 백인이 유대인들에게 모든 자본을 저당 잡혔다는 피해의식에 매몰되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은행 창구는 여성이 맡고 있기에 가부장적인 남성들은 그녀들한테도 부당하게 빼앗겼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커젤의 하드보일드한 연출은 이 현장을 정말로 급박하게 손에 땀을 쥐게 만들지만, 정작 경찰은 테리에게 이 마을에선 별 일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송어를 허가증 없이 낚시하는 것은 무료 카지노 게임지만, 반유대주의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인 행위는 무료 카지노 게임로 인식되지 않는다. 유대인의 돈을 정당하게 되찾았다며 철썩 같이 '노동'이라 믿고, 의기양양하고도 자연스럽게 귀가해 질러에게 돈다발을 안겨주며, 그녀는 피칠갑이 된 남편의 모습과 출처 불분명한 돈을 보고도 어떠한 의심도 않는다. 감상자가 보기엔 심히 뒤틀린, 그러나 무료 카지노 게임 내부에서 그 부조리는 아무렇지 않은 평범함을 띠는 것이다. 왜일까, 지금까지 본 광신주의의 특성은 가해자에겐 이기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책임을 덜도록 만들어준다. 반면 피해자들이 그들에게 나름 협조를 하면 돈다발 일부를 받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선동한다. 즉 가해자라면 누구나 다 보편적으로 구미가 당길 법한 궤변과 타자화, 피해자한테 세팅된 정교한 스톡홀름 증후군이 광신주의를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관도 분명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무료 카지노 게임은 설령 진부한 얘기일지라도, 골방에 틀어박혀 자기 망상적 테러계획을 작성하는 광신주의자들을 바깥으로 이끌어내어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은 공권력에 내재해있다고 믿는다. 광신주의자들에게 리버스 숏은 자아도취이자 동성애·동종애다. 그 광신주의자들이 착취하는 피해자들에게 리버스 숏은 성립하지 않았다. 그러나 공권력은 피해자들과 리버스 숏을 성립한다. 늘 여성은 지시를 일방적으로 받는 존재였지만, FBI와 경찰은 설득도 해보고 그들의 말을 끊지 않으며 어떻게든 들어준다. 때론 과격하다가도 결국에는 온건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이다. 또 카니가 테리에게 손에서 일을 떼라고 지시한 이유는 코피를 계속 흘리는 그의 건강을 염려했기 때문이요, 밥을 추적하던 테리는 총에 맞은 제이미를 보자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응급처치 한다. 마지막으로 카니는 흑인 여성이고, 제이미의 아내는 원주민 여성이다. 이들은 동성과 동종도 사랑하지만 이성도, 타 인종도 사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어떻게든 밥을 구하려고 불타는 목조 주택에 뛰어든 테리는 가해자 이전 인간이기에 지켜져야 할 권리와 존엄을 어떻게든 사수하려 시도한다.
이들은 반성을 할 줄 안다. 독단에 의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FBI 수준이 이래요?"라고 비판하는 제이미의 날카로운 발화에도 수긍한다. 자신만 위대하다고 섬기는 광신주의에서 깨어나야만 여러 개의 빛이 반짝일 수 있다. 비록 밥 체포라는 목적은 하나여도, 그 목적에 다다르는 요원들 각각의 빛은 여러 개다. 뿐만 아니라 커젤은 결말에서 테리가 사슴을 쏠지 말지, 그 길을 여러 갈래로 열어둔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져 온 공감 불능을 반성하고, 커젤이 펼쳐놓은 2.39:1의 화면비를 가득 채우는 익스트림 롱숏에 내재한 다양한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밥의 정신이 오늘날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으로 이어졌으니, 심지어 다른 나라의 서쪽 법원에 발생한 사태에도 영향을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다른 선택을, 이로써 성립될 서로가 보존되는 리버스 숏의 희망을 커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