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잊기 힘든 사람
자주 들르는온라인커뮤니티 사이트에누군가가 퍼온 설문이 있었다.
댓글을 달았다.
'3번, 4번. 추억이 크지 않아도, 많지 않아도 잊혀지지 않아.'
깊은 사연까진 알 수 없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내 댓글에 '좋아요'를 눌러 동의를 표했다.
내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성애자이지만, 사실 확신하진 못한다. 다만 여자를 사랑한 건, 탁월한 비쥬얼에 홀려 탐닉했던 연예인들이 전부였다. 이성인지 여부보다 겉거죽이 날 홀리는지가 중요했다. 내 주변에 내 마음을 빼앗을 탁월하게 고운 낯짝은 없었으니 이성애자였겠거니 하는 거다. 어차피 인간이란 이해의 대상이 되기 힘드니 낯짝만이라도 맘에 들어야 하는 나는 탐미적인 인간이다. 살면서 호의가 생기는 좋은 사람들이야 세상에 많았지만, 그 호의가 호감까지 간 적은 드물다. 그 호감을 넘어 스스로 내가 꽤나 많이 좋아했었지,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둘 뿐이다.
내 첫사랑은 나를 기억조차 못할 중학생 적 선도부 선배였는데, 낯짝이 마음에 들었다. 제 눈에 안경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수학여행으로 전교생이 서울의 놀이공원에 갔을 때, 다른 학교 여학생들이 비쥬얼이 맘에 든다며 함께 사진 찍어줄 수 있냐는 추파를 받을 정도는 되는 얼굴이었다. 물론 그보다 잘생긴 얼굴들이야 티비를 켜면 널렸을 테지만, 실물 영접이 가능한 미남이란 매우 희소하다는 건, 여자라면 고개가 떨어져라 끄덕일 수 밖에 없을 걸?
나는 어릴 적 주변에 풀과 산 뿐인 깡촌에서 자랐고, 아빠는 외출할 땐 집안의 유일한 아들만 끼고 다녔다. 덕분에 내가 7살까지 보고 자란 가족 아닌 사람은 윗집 친구, 전도에 열심이던 젊은 전도사 부부가 한겨울 대리육아하듯 동네 애들을 모아 뛰놀게 했던 기도원에 모인 어린이 열 명 안팎이 전부였다. 이 때문인지 유독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안면인식과 길을 찾고 외우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려면 적어도 단 둘이 대화해본 날짜의 합이 열 손가락은 넘어야 겨우 사람 얼굴을 기억해낸다. 그러니 자신의 첫인상이 어땠냐고 누군가 내게 물어오면 퍽 난처하곤 했다. 누군지 기억도 못하는데 첫인상은 뭔 첫인상이야!
그런 나는 첫사랑의 첫인상을 기억한다. 사실 막 되게 엄청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중학교 입학카지노 게임 추천 1주일도 안돼 학교 중앙계단 쪽으로 홀로 터벅터벅 하교하는 길이었는데, 웬 남학생 하나가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걷다가, 괘씸한 친구놈을 발견한 듯, 재빨리 입에 문 사탕의 막대기를 잡아 빼고선, "야, 이 새끼야!"카지노 게임 추천 1층 복도를 전력질주하던 모습이니까. 허이구, 요란한 선배들이네, 생각했었다. 어이 없게도 그 때의 그 햇빛과 그 선배의 얼굴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금 내 나이를 반토막내도 그때의 그 선배보다 많을 것임에도, 난 그 순간을 한 번에 기억해서는 오래도록 기억카지노 게임 추천 있다.
그 당시 선도부원이 도서관에서 도서를 대출해줬고, 선도부 선배들은 서로 친해서 대출 담당날이 아니라도 도서관을 반 아지트 삼아 점심시간마다 모여있곤 했다. 난 그 선배를 한 번이라도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자주자주 도서관에 방문하곤 했다. 한 번에 빌릴 때 두 세권을 빌렸는데, 도서관에 자주 가고 싶어서 최대한 빨리 읽었다. 제사보단 젯밥에 더 관심있던 거였지만. 덕분에 내 독서량은 거의 일 평균 한 권이었다 말해도 될만큼 엄청났으며, 학기가 끝날 즘 압도적 대출량으로 다독왕 상장을 받게 되어 웃지 못할 짝사랑의 증거가 남아버리고 말았다. 그 시절 닥치는대로 읽어댄 책들 덕분에 여러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고루 접하게 됐는데, 덕분에 우연하게내가 알고 있는 문학작품들 얘기를 접할 때마다 자연히 그 선배를 추억하게 되어버린다. 말 한 마디 붙이지 못하고, 그저 70센티 거리 쯤에서 바코드를 찍고 넘긴 대출도서를 건네 받은 게 전부였던 관계인데도.
**실없는 소리를 덧붙이자면, 살면서 육안으로 영접한 가장 잘생긴 남자는 '하도영' 역으로도 익히 알려진 배우 정성일 님이다. 우연히 대학로에서 '미스터 신'이라는 작품을 접하게 됐는데, 2인극의 남자 주인공이었다. 잘생긴 외모에 아우라처럼 흘러나오는 쓸쓸한 멋이 있었다. 난 가장 앞 좌석에 앉았고 배우 분은 연극 동선 상 객석 중앙 통로에 잠깐 앉아 암전 속에 대기했었는데, 조명이 켜지고 잘생긴 배우가 바로 옆에 앉아 있어 순간 튀어오를 뻔 했다. 그 분은, 직접 본 사람 중 내가 첫인상을 기억할 수 있는 두 번째 사람이 되었다.
내가 많이 미안한 그 카지노 게임 추천
대학 시절 어느 날, 통학하기 위해 탑승한 마을버스 안이었다. 언니에게 얹혀살던 집에서 대학교까지는 버스로 20분 조금 넘게 걸렸다. 오전이 공강이라 정오를 좀 지났을 때였는데, 당시 웬 중학생 무리들도 단체로 버스를 타고 있었다. 하교 시간이라기엔 많이 이른 것 같은데, 생각했다. 만원버스까진 아니었어도 탑승객은 마을버스 의자보다 넘치던 상황이라, 내 뒤로 살집 없이 호리한 남학생이 섰다. 대학생인 나는 책가방이 아닌 손잡이 드는 가방을 들고 있었고, 그 남학생을 가방을 등에 메고 있었다. 책가방을 골라 등에 메었더라면, 그날 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을까.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뒤쯤이었다. 내 오른쪽 어깨로 내가 입은 반팔 티 한 장, 카지노 게임 추천이 입었던 교복 한 장 스쳐온 체온이 느껴졌다. 남학생이 가슴팍을 내 어깨에 기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공공버스 치한인가? 황당했지만 성추행이라기에는 크게 외설적인 신체 부위도 아니고, 공공버스에서 요란카지노 게임 추천 싶지 않았던 나는 조용히 힘을 주어 천천히 그 가슴팍을밀어냈다. 잠시간은 괜찮았다, 다시금 체온이 전해오기 전까진. 두 번째로 나의 어깨와 카지노 게임 추천의 가슴팍이 맞닿았을 땐, 좀더 신경질을 담아 빠르게 그 가슴팍을 쳐냈다. 잠시간 다시 괜찮았었다. 세 번째로 체온이 전해오기 전까진. 인내심의 한계였다. 생각해보면 내가 자리를 피하면 간단할 일이었는데, 그때의 난 어쩜 그리 융통성도 없었을까. 어리다고 봐줬더니 이 새끼가! 더는 당해줄 수 없었다. 뭐하는 짓이냐고 따지기 위해 몸을 돌려 그 카지노 게임 추천을 힘껏 노려봤다.
그 카지노 게임 추천은 급작스레 몸을 틀어 공격적으로 바라보는 나를 보곤 몹시 놀랐다. 그리고 순간, 어윽, 어윽, 통곡을 하는 듯한 고함 소리를 냈다.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그 카지노 게임 추천과 나에게로 쏠렸고, 그 시선에 더 당황해버린 카지노 게임 추천은 그 고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더 소리내었다. 그 아이는 동작 틱과 음성 틱을 둘다 가진 뜌렛 증후군을 앓는 카지노 게임 추천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예쁘지도 않은 내게 먼저 거리낌 없이 닿아온다 했어. 주변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 표정은 '우려했던 일이 터졌네, 어쩌냐.' 말하고 있었고, 승객 중 유일하게 이성적 판단이 가능했던 여자 인솔교사는 빠르게 하차벨을 누르고 "얘들아, 다 내리자." 학생들을 통솔했다. 버스에서 우르르 내리는 남학생들의 표정에 안타까움은 있었지만 짜증은 없었다. 그 틈에 그 카지노 게임 추천도 내렸는데, 그 카지노 게임 추천은 내리기 전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울고 있지 않았지만 그 눈빛은 내가 살면서 처음 본 원망과 슬픔을 담고 있었다. 그날의 눈빛은 서로에게 칼이었다.
그때 그 카지노 게임 추천의 나이만큼 세월이 흘렀는데도, 나는 그 아이를 오래 잊지 못했다. 그 아이의 얼굴은 전혀 기억이 안나는데, 그 눈빛만은 절대로 잊혀지질 않는다. 버스를 내리며 나를 바라보던 그 카지노 게임 추천은 내 얼굴을 금세 잊었을까, 오래 두고 기억하며 원망했을까. 진심으로 미안했다고, 너를 공격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를 방어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변명한다면 카지노 게임 추천은 날 이해하고 용서해줄까? 내가 오래 기억하고 틈틈이 미안해했다는 게 그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닿을 수 있다면, 내 오랜 죄책감에 면죄부가 되어줄까?
추억은 갯수가 아니라 그 농도가 결정한다. 크지 않아도, 많지 않아도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