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겪고 싶진 않지만서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선 소를 세 마리 키웠다. 사나운 소, 누나 소, 검단리 소라 불렀다. 사나운 소는 이름마냥 성질이 사나운 놈이었고, 누나 소는 사나운 소의 자식이었으며, 검단리 소는 둔하지만 힘이 좋고 순한 편이었다. 우리 집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우리 남매들에게 있어선 돈도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랄 운명을 낙점받은 것이라 봐도 무방했지만, 그럼에도 1남5녀를 키우는 데 있어 들어가는 불가피한 지출은 있게 마련이었다. 세 마리 소가 틈틈이 낳아두는 카지노 쿠폰는 젖을 뗄 쯤 팔려나가 6남매를 길러내는 살림 밑천이 되었다.
정을 줘봤자 매번 팔려나가는 카지노 쿠폰인데도, 우리 부모는 갖고 있었는지 의심스러웠던 그혈육의 정을, 사나운 소는 갖고 있었다. 어쩌면 매번 자식을 뺏기는 어미의 한 서린 분노가 사나운 소를 사납게 만들었던 건지도 모르지. 평소에도 사나웠던 사나운 소는 카지노 쿠폰가 태어나면 더더욱 사나워졌다. 그나마 아빠가 코뚜레를 단단히 움켜쥐고 얼굴 몇 대를 때리면 곧 성질을 다스렸기에 봄여름철 풀을 뜯을 수 있게 너른 풀밭에 매어놓곤 했다. 외양간에 매어두는 짧은 끈만으론 맘껏 풀을 뜯을 수가 없어서, 아빠는 여분의 끈 하나를 더 연결해 활동 반경을 더 넓게 해주었다. 그러면 나의 할 일은 나무 그늘에 앉아 틈틈이 숙제를 하면서 소를 묶은 끈이 풀려 이웃집 옥수수밭을 망쳐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거나(이 때문에 여러 번 싸움이 났었다), 소의 동선이 꼬여 묶어맨 줄이 풀이나 나무에 꼬여버리면 제대로 풀어주는 소일거리 뿐이었다.
나는 이 일이 남동생을 제외하면 가장 어린 나에게 주어진 특혜라는 걸 아주 잘 알았다.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으니 언니들이 감안해준 덕이 크겠지. 언니들은 뙤약볕에 앉아 김을 매는 동안, 나는 팔자 편하게 앉아 쉰 것과 다름 없다. 자라며 언니들에게 받았던 가장 큰 이해였다. 그나마 우리 집에서 가장 사랑과 배려에 가까운 경험을 했던 건 나였다.어쩌다 가장 사랑 없는 캐릭터로 자라버렸는지 모르겠다만. 어쨌든아빠의 매듭 매는 솜씨가 영 별로였다. 묶어둔 줄은 종종 풀려서 누군가는 반드시 감시원이 되어야 했고, 나는 느리고 둔해서 노동력에 탁월한 도움은 되지도 않았다. 농사꾼의 딸이지만 농사가 적성이 아님은 일찍이 알았다.
내가 카지노 쿠폰을 날았던 따스했던 초여름은 참 목가적인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 날이었다. 그래서 사나운 소도 신났던 걸까? 그날 따라 요란하게 동선을 잡더니 기어이 날 움직이게 만들었다. 사나운 소가 빙빙 돌며 제 새끼 목에 줄을 두어 바퀴 칭칭 감아버린 것이다. 태어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카지노 쿠폰는 여렸고, 힘을 조절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멀리 갔다간 묶어둔 줄이 카지노 쿠폰의 숨통을 조여버릴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카지노 쿠폰에게 다가가 목에 칭칭 감긴 줄을 풀어주었다. 그 순간, 싸늘했다, 무언가가 전속력으로 나에게 돌진하는 소리가 들렸다. 카지노 쿠폰에게 접근한 나를 사나운 소가 위협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뒤돌아 볼 틈도 없이 나 역시 달렸다.
불행히도 나는 운동회 달리기 3명이 줄 세워 달리게 해도 꼴찌를 해버리는 짧고 둔한 다리의 소유자였고, 자식을 지키려는 모성 앞에선 생존본능도 형편 없었다. 사는 내내 과체중과 경도 비만 사이에 살았던 육중한 몸이라도, 기본적으로 난 반에서 키가 가장 작은 아이였으니, 초등학교 2학년 여아가 300kg은 훌쩍 넘을 소의 공격에 대항할 만한 체급이 아니었다. 그나마 판단력이라도 빨랐기에 앞모습이나 옆모습이 아닌 뒷모습이 쇠뿔에 받혔다. 그리고 곧 카지노 쿠폰을 날았다. 그건 밀려났다고 할 수 없는 거리였다. 허공을 날아 3미터 쯤 사나운 소와 멀어졌으니까. 그러고도 사나운 소는 내게 다시 돌진했다. 두 번째로 쇠뿔에 날아갈 순간이었다. 그리고 난 운이 좋았다. 아빠가 끈을 제대로 묶어둔 것이다. 내 등뼈와 사나운 소의 쇠뿔은 손가락 하나 길이도 되지 않은 상태로 멈춰버렸다. 두 번째 비행을 각오했던 나는 그제야 울음이 터져나왔다. 절뚝이며 집에 돌아와 상황을 알렸고, 소를 감시하러 넷째 언니가 파견되었다.
그 후로도 사나운 소는 오래도록 함께였다. 그토록 지키려던 새끼는 또 팔려나갔지만. 한 번은 카지노 쿠폰가 팔려나가지 않으려 누워버려 소장수 아저씨와 아빠가 끈으로 묶어 끌어냈었다. 같은 카지노 쿠폰는 아니었는데, 팔려나가는 카지노 쿠폰를 보며 통곡하던 나를 아빠는 신경쓰지 않았고, 엄마는 오래 두고 비난했었다. 내가 무언가에 쉽사리 정을 주지 못하는 데엔 매번 팔려나가는 카지노 쿠폰를 지켜보며 소리내지 못하고 반복하던 이별의경험도 한 몫 할 테다.
그때 쇠뿔에 받힌 부분은 척추뼈에서 딱 손가락 한마디 반 차이나는 부분이었다. 위험한 상황이었을 거다. 조금만비껴 받혔더라면 하반신에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사나운 소가 한 순간도 밉지 않았다. 그 소는 내게 카지노 쿠폰을 날게 한 소였다. 나의 선의를 공격으로 갚았고, 나를 위협했는데도. 동물이라 그런 걸까. 쇠뿔에 깊이도 받힌 상처는 멍이 박혀 문신처럼 남아있었지만, 6학년 여름이 되었을 때, 넷째 언니는 내게서 더이상 그 흉터를 발견해낼 수 없다고 했다. 이후 멍청하게도 난 종종 라이트형제가 아니었다면 내가 카지노 쿠폰을 날아본 첫 번째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고 헛소릴 하곤 했는데, 요상하게도 쇠뿔에 받혔던 사라진 상처가 때때로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