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이 방 안의 온도를 바꾼 것이 느껴지자 나는 눈을 뜬다. 블라인드를 걷으니 예상대로 대지를 펄펄 달구는 해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발코니에 나가 사과향 액상을 베이핑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이웃집의 바나나 나무를 내려다 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웃과 왕래하기 싫어 가만히 둔다. 스마트폰을 들어 파토 차트를 확인하면서 아침 서핑을 할지 고민을 한다. 파도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 아침은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하기로 한다.반팔과 반바지 타이즈로 갈아입고 부엌에 가서 방탄커피를 만든다. 커피를 마시며 운동실로 걸어가는 짧은 동안에도 햇빛이 내 살결을 태우는 느낌이다. 과학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바벨을 머리위로 들어올리다 보니 오늘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이 정리가 된다. 스마트폰으로 메일함을 확인하자 영화와 드라마 연출 제의들이 쌓여있고, 역시나 딱히 구미가 당기는 것은 없다. 오리지널을 굳이 고집할 생각은 없지만, 역시 내가 직접 쓰고 연출하는 작업이 가장 재밌는 건 어쩔 수 없다. 남이 쓴 걸 연출하려면 시나리오가 특이하거나 출중해야 하지만, 그런 시나리오를 찾는 것보다 내가 직접 쓰는게 더 빠르다. 한국에 가기 싫어서 내가 차기작 선정을 미루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아니다. 나는 아직 그렇게 게으르지 않다. 단순히 한국이 가기 싫었다면 미국 프로젝트를 맡았겠지. 지금은 쉬면서 오리지널을 쓸 타이밍이다.
점심은 언제나 똑같은 메뉴다. 닭고기를 모닝글로리와 함께 볶다가 레몬그라스, 땅콩, 피쉬소스를 넣고 버무린다. 인디카 쌀은 오래 먹으면 질리지만 아직은 괜찮다. 정말 맛있는 자포니카 쌀이 그리울 때면 나는 이미 한국에 있을 것이다.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집에서 커피를 내릴까 카페로 갈까 고민하다가 집에만 있으면 글을 쓸 것 같지 않아서 카페에 가기로 한다. 오후 썰물과 밀물 중간점에 맞춰 서핑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바이크에 서핑보드를 싣고 보드쇼츠로 갈아입은 후 시동을 건다. 야자수 거리와 논을 지나 단골 카페에 다다르니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다. 가장 글이 잘 써지는 좌석은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했고, 나는 적당한 구석을 찾아 자리한 후 노트북을 꺼낸다. 기존에 써놨던 시놉시스들을 훑으며 이 중에 시나리오화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새로 시놉시스를 쓸지 고민한다. 고민이 길어지다보니 오늘도 몇자 적지 못하고 벌써 미드 타이드가 되었다. 서퍼인 카페 주인에게 아침 서핑을 했는지 묻고, 그는 탈만 했다고 대답한다. 파도에 관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그의 입에서 그런 표현이 나왔다는 것은, 내가 바다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5분도 걸리지 않아 해변에 도착했고, 파도는 역시나 훌륭했다. 라인업에서 맨날 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의 배려에 실력이 미천한 나도 파도를 하나 양보받는다. 이렇게 대놓고 떠먹여준 파도를 못잡으면 그것도 민폐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모국이 아닌 곳에 있어도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성향은 줄어들지를 않는다. 혼신의 힘을 다해 파도를 잡고 3초 정도 짧은 라이딩을 마치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 오늘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이 파도 하나로 족한 하루로 기억될 것이다. 내가 영화감독인 것을 아는 서퍼들이 한국에서 온 서퍼들에게 내 이름을 아냐고 묻는다. 나는 창피해져서 곧바로 파도를 잡아타고 해변으로 나온다. 집에 바로 갈까 샤워실이 있는 식당에서 맥주를 한잔 할까 고민하다가 집으로 향한다. 어제 읽다만 책의 뒷부분을 읽는 것이 석양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보다 즐거울 것 같아서이다. 해가 지면 이제 제법 선선하다. 모기향을 피워놓고 수영장 옆 비치베드에서 책을 펼친다. 바람때문에 찰랑이는 물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즈음 책에 완전히 몰입한다. 그렇게 잘 시간이 되고, 나는 침실로 향한다. 블라인드를 내리면서 내일은 좀 더 글을 써보자는 다짐을 한다. 안 써진다고 서핑만 할게 아니라 새로운 액티비티를 해야 글이 더 잘 써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쿠버다이빙을 하기엔 이미 이 섬의 모든 곳에 다 들어가 봤는데. 그렇게 따지면 서핑은 안 가본 스팟이 있어서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차라리 낚시를 가자. 그리고 생선요리를 해먹자. 내일은 오늘과 조금이라도 다른 하루를 보내길 다짐하며 침대로 향한다.
감사카지노 쿠폰라는 것을 써보면서, 카지노 쿠폰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하루에 대해 써보면, 그것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생각해보면, 그런 카지노 쿠폰적인 삶에도 내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을 살아도 그닥 행복하지 않을 것을 안다면, 굳이 그 이상을 좇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동빙고동에서 꿈꿨던 삶을 나는 마포에서 살고있다. 그렇다고 내가 더 행복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도 이루었다. 그렇다고 회사를 다닐때보다 행복한지는 모르겠다. 내 글만 보아도 내가 얼마나 우울한지 알 수 있지 않나. 성공한 감독이 되지 못해서 그렇다고 반문하는 자신에게, 너가 성공한다고 달라질 것 같냐고 응수해주고 싶다. 모두가 같이 작업해달라는 감독이 된다고 해서 너가 행복할 것 같아? 왜 나는 스탠리 큐브릭 같은 작품을 못 만드냐고 자책하고 우울해하겠지. 당신도 한번 써보시라 카지노 쿠폰. 당신의 카지노 쿠폰속에서 당신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나. 어떤 하루를 보내나. 어떤 내일이 오기를 기대하나. 당신은 그 카지노 쿠폰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