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에 발을 담글 때 같은 물에 담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자연의 변화, 그리고 흐르는 세월을 멈출 수 없단 뜻 되시겠다. 하지만 이 문장을 곱씹어 보면 발을 담그는 사람 역시 변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변한다. 물리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변한다. 환경 즉, 자신의 처지와 입장이 변하면서 스스로도 변한다. 변화의 크기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 크게 변하는 시기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부모의 부재다.
부모 중 한 분이 돌아가실 때, 그 중에서 엄마가 이 세상에 없고 날 때, 자식은 크게 변한다. 그리고 부모 둘 다 없어져서 '고아'가 될 때 또 다시 크게 변한다. 부모의 상을 당하면 3년 간 무덤 옆에 머물며 슬퍼하라는 말은 옳은 말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런 일이 있으면 한동안 '협상'이나 '결정'을 미룰 일카지노 게임 사이트. 멀쩡해 보여도 격하게 감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힘들어서다. 특히 사기에 주의해야 한다.
둘째는, 나에게 큰 병이 생기거나 사고를 당해 죽다가 살아나는 위기를 겪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서 지면 그걸로 끝이 된다. 하지만 이 위기를 겪으면 두 번째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즉, 위기는 '위험한 기회'가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을 겪으면 삶이 단순해진다. 삶의 주변들이 모두 군더더기였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진짜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군인지 알게 된다. 이건 이런 위기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사람 순서로 나에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은 군더더기다.
그리고 자주 쓰는 말이 생기는데 바로 '뭣이 중헌디' 이다. 내가 추구했던 거의 모든 것이 허장성세였음을 알게 된다. 대부분이 '씰데 없는 것들'이란 뜻이다. 그래서 '뭣이 중헌디'에 들었던 것만 추구하면서 살게 된다. 내가 보면 고농도의 압축된 삶을 사는 것인데, 남이 보기에는 '사람이 변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변화를 꿈꾼다고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면 바보다. '나도 변하고 너도 변하고 모두 변한다'는 전제를 깔고 세상을 바라보면 한결 덜 서운해지고 덜 화가 나게 된다.
몇년 사이 한껏 움츠렸던 때가 지나간다. 나라도 변하고 나도 변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지금이야말로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때다. -richb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