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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8. 2025

적반하장(賊反荷杖)

잘못한 사람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나무란다

며칠 전 일이다. 연차를 내고 볼 일을 본 나는 짬을 내어 아들 머리를 이발하러 단골 미용실에 갔다. 손님이 몇 명 있어 대기 후, 아들 커트를 시작했다. 때마침 미용실에 들른 애아빠도 새치를 감추긴 위한 염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들의 이발을 끝마친 후 애아빠에게 미용실 비용을 맡기고 집에 돌아가려는 차 아들이 갑자기 외쳤다.

"엄마 옷이 바뀌었어!"

"뭐라고 잘 확인해 봐!"

아까 아들 이발 전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있었는데, 옷을 바꿔 입고 갔나 보다.

미용실 원장님이랑 외투를 확인해 보니 주머니에 카드와 두 군데 학원 명함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아들이 다니는 학원이었다.

미용실 원장님이 연락처를 모르는 손님이라, 일단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 옷이 바뀌었다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내 연락처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명함에 있는 학원에 전화를 걸어 혹시 방금 전에 미용실에서 이발한 친구들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명함에 있는 학원은 바로 옆 아파트 상가에 있는 학원들이었다. ) 희한하게 두 학원다 미용실에 들른 학생은 없다고 했다. 일단 우리 외투가 아니니 미용실에 두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미용실 원장님이 연신 죄송하다고 하셔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혹시 카드사에 전화하신 분이신가요?"

"네. 댁 아드님하고 저희 아들하고 외투가 바뀌어서요. 혹시 아드님 어디 계셨는지 알면 저희는 옷 찾아갈게요. 아드님 옷은 미용실에 두고 왔어요. "

"그런데, 저희 아들은 미용실에 간 적이 없는데요. 거기 어디 미용실인데요? 저희는 처음 들어본 곳이에요."

"네? 미용실에서 머리는 자르셨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신다고요? 잠시만요"

집 코앞에 미용실에 있기에 미용실로 달려가서 원장님께 전화를 드리고 직접 통화를 하게 했다.

"손님이 일로 오신데요. 일단 오시면 어떻게 된 일지 알겠죠.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때마침 아들 영어학원 원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어머님 아까 미용실에서 외투 누가 바꿔갔다고 했죠? 저희 학원에 학생 한 명이 자기 외투가 없다고 그냥 갔는데, 한 번 와보시겠어요? 다른 외투가 남긴 했거든요."


그 길로 학원에 들려(번거롭게 해서 죄송한 마음에 호두과자를 사들고) 확인해 보니 아들 외투가 맞았다. 일단 감사하다고 하고선 내려오는 길 전화통화를 하면서 주변을 찾는 여성분이 보였다.


학원장님이 "방금 전에 영수(가명) 어머님 내려가셨는데 못 보셨어요?"했던 말이 스치듯 지나갔지만, 괜히 껄끄러워 못 본 척했다.


잠시 후 미용실에서는 학원에서 내 옷을 찾았는지 물어보고, 그분은 본인 미용실에 처음 오신 분이 맞으셨으며, 어쨌든 옷 주인이 맞으니 돌려드렸다 했다.

미용실 원장님, 학원 원장님, 나 모두 그 외투가 어떻게 미용실에 온 건지 궁금했다. 우리 아들보다 먼저 온 학생이 친구들끼리 옷을 바꿔 입고 두고 간 건지, 그렇다면 그 친구는 또 어떤 옷을 입은 건지참 희한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불현듯!! 갑자기!!!'이거 우리 아들이 영어학원에서 바꿔 입고 온 거잖아. 그럼 미용실에 간 적 없다는 그 친구의 말이 맞고, 그 어머님 말씀도 맞고, 그래서 그 친구의 옷이 미용실에 우리 아들 몸을 타고 온 거고 아들 옷은 그대로 학원에 있는 거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미용실에 가서 우리 아들이 잘 못 한 거 같다고 사과를 드리고(미용실 원장님은 믿기지 않는지 다음 주에 CCTV 업체 불러서 확인해 보신다 했다. 본인도 이 사건의 전말이 궁금하다고), 학원장님께 번거롭게 했다고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건 그 외투를 바꿔갔다고 생각한 그 친구와 어머님께 사과드리는 것. 처음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을 못했다. 당연히 내 아들을 믿었기에 나의 과실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동료 작가님들 모두(한 분의 예외 없이) "이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잖아요"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한 없이 부끄러진 마음으로 전화를 들고사과를 드렸다. "아까는 저희가 황당하다 생각했는데,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참 당황스러우셨겠어요. 죄송합니다. 아이는 외투도 없이 저녁에 수영학원 갔다고 하던데 괜찮은가요? "정중히 묻고, 약소하지만 주말에 가족들과 드시라고 케이크 쿠폰을 보내드렸다. 다행히 원래 마음씨가 좋으신 분인지, 아이가 실수할 수 있다고 괜찮다 하면서 나중에 커피 한 잔 하자는 말로 마무리 했다.


난 내가 마흔이 넘어가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완전 오산이었다. 그냥 고상한 척 흉내만 냈던 것이다. 상대방이 100% 잘못했다고 오판한 순간, 그 사람을 나도 모르게 우습게 보고 말았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은 오히려 상황을 인하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내 태도에 반성하면서

사건의 마무리는 아들 단속이었다.

나도 내 태도에 대해 반성하니, 너도 니 물건 제대로 확인하고 다녀라!

그리고 학원에서 형아 만나면 옷 바꿔 입고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해라!!


*다음번에 롱패딩이던 숏패딩이던 아들이 좋아하는 빨강으로만 장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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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일주일 후에 뿌염을 하러 미용실에 다시 방문했다.

원장님께 혹시 CCTV보셨나고 살짝 여쭤보니

cctv 업체를 바뀌면서 지난 영상이 저장이 안되었다고..

본인도 진실이 정말 궁금한다고...이렇게 그날의 진실은 미궁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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