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함께 사는 삶은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 순 없었다.
남편이 말과 함께 살아보련다. 선언을 했을 당시
나는 순진한 남편을 홀린 말이란 녀석이
도대체 어떤 생명이길래 내 남편을 꼬셔서
내 중년 인생을 롤러코스터 타게 만들었는지
화가 났고 또 궁금했다.
남편처럼 나 역시 취미로 말을 타고 있긴 했으나
당시 내가 생각하는 말이라는 존재와
남편에게 말이란 존재는 비교불가한 영역이었다.
말을 탄지 오래된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를 그렇게 말했다.
나는 말에 미쳐있다.
말에 미쳐있다니.
말 타는 게 얼마나 좋길래
말에 미친다는 표현을 하는 걸까?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말에 미친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표현처럼
남편은 말에 미친 사람이었다.
말을 타는 걸 좋아한 것뿐만 아니라
말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사랑했고
말을 사랑하고 아끼고 말에 대한 모든 것들을
궁금해했고 알기를 원했다.
남편의 말 인생에 동행하기로 결심을 하고
나 역시 학교에 들어와
말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늘어갔다.
말과 함께 지내는 시간으로 하루가 지나갔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나는 말 등위에 앉아 말과 함께 운동을 하거나
말을 씻기고 말똥을 치우며
말을 돌보는 삶을 살았다.
남편은 말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이 되면
그가 입으로 풀어놓은 말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나 역시 본격적으로 말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자
나의 모든 대화의 주제와 화젯거리도
온통 말 이야기뿐이었다.
남편과 나의 대화의 주제는 온통 말이야기였다.
남편과 나의 삶은
이미말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생활이었으므로
그것은 당연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 친구들과 학교에서 지낼 때,
카지노 게임의 모든 대화도
말에서 시작하여 말에서 끝이 났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식당에서도, 차를 마시는 도중에도,
카지노 게임 우리가 탔던 말들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카지노 게임가 배우고 있는 기승술에 대해
한자리에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에 대해 긴 수다를 떨었다.
내 또래들이 모여서
자식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
시댁이야기로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내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하고서
말이야기를 했다.
말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말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하여
말과 내가 함께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야기했다.
카지노 게임 빌어먹을 말 때문에 울었고
말 덕분에 또 많이 웃었다.
내 친구들과 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
몸에 딱 달라붙는 승마복차림으로
점심시간 늘 가는 식당에나타나면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테이블에 앉은
모든 이들의 시선이일시에 우리에게로 쏟아졌다.
그렇게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밥을 먹을 땐
역시나 말 이야기가 다시 시작이 되었다.
밥을 먹으며 웃고 떠들면서 말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식당 안에 가득했던 사람들은
썰물 빠져나가듯이 사라졌고
식당 안에는 카지노 게임만 덩그러니 남아
정신없이 수다를 떨곤 했다.
카지노 게임가 점심때 단골로 다니던
식당 사장님과 직원들에게
말 타는 사람들, 로 불렸던 나와 내 친구들은
밥 먹으러 와서까지 한자리에 앉아
몇 시간이고 말 이야기로 수다를 떨어대는
말에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친,
정말 못 말리는 사람들이었다.
남편에게 말이라는 존재가 그러했듯이
말이라는 녀석이 내 생활에 차지하는 존재감은
나도 모르는 사이 아주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내가 첫 번째 지도자 자격증을 딴 그 해
나는 남편 마장에서
주말마다 회원들에게 레슨을 했다.
남편 마장에는 회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대부분의 수업은
직원이었던 코치가 진행했었다.
나는 학교 강의가 없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남편 마장 회원들 수업을
내 시간표로 배정하여 수업을 했다.
그들은 즐거움과 건강한 삶을 추구하며
말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나는 그들이 최대한 즐겁고 유쾌하도록
신경을 쓰며 수업을 했다.
내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나의 스승들에게 배우는 과정들은
사실 괴롭고 고통스럽고
모욕적인 경험들로 가득한 시간들이었다.
나는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기 전에
잘 해내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렸고
수업은 비난과 지적이 난무했으므로
불행하게도 나는 배우는 과정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나에게 수업을 듣는 회원들에게만은
순수하게 말을 타는 즐거움과
운동을 즐기며 배우는 기쁨으로 충만한
즐거운 승마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나는 학교에서 같은 학생으로서
배울 기회를 공평하게 누리지 못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들의 수업을 듣는 내내 소외되기 일쑤였고
실력이 뛰어난 소수의 학생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공평하지 못한 교수들 수업방식에 신물이 났다.
내가 지도자로서 내 수업을 하게 된다면
나는 절대 저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내 수업을 듣는 회원들 모두에게
어느 한 사람 소외감 느끼지 않도록
공평하고 성실한 수업을 해야지.
그들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내 수업을 진행할 때
나는 그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소외감에 마음다치는 회원이 없도록 세심히 신경을 썼다.
이렇게 말하기엔 참 안된 말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은 전공 교수의 수업일수록
내가 경험하는 수업은 더 형편없었다.
그들의 수업은 거만함과 태만으로 가득 찼고
디테일한 티칭은 없는 자유기승 수업에 가까웠다.
그들의 명성과 기승 실력에 비해
내가 제자로서 느끼는 지도자로서 그들의 역량은
정말이지 실망스러웠다.
학생들이 말을 탈 때 그들이 건네는 단 한마디의 티칭을 듣기 위해
어린 학생들은 교수 주위를 빙빙 돌며 말을 탔다.
교수의 눈에 띄어야
한마디라도 얻어 듣는 게 있을 것이라는 기대들 때문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야만 교수들의 티칭을 한마디 얻어들을 수 있다니.
그건 아주 진짜 개똥 같은 일이었다.
교수들의 지도 태도에 대해서 화가 났다.
학생들이 지식을 구걸하는
비렁뱅이 거지들도 아닌데
나는 그런 짓을 해가면서까지
거만한 교수들 앞에서 지식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내 학습권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는 것도 화가 났다.
자존심이 강한 나는
그들 시야와 관심에서 저만치 벗어나서
그저 묵묵하게 내가 타야 할 말에 집중을 하면서 말을 탔다.
그들 강의 내용에 대해 실망이 더해질수록
나의 분노는쌓여갔다.
나는 한학기내 내 이를 갈며 말을 타다가
학기말 강의평가를 할 시기를기다렸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교수들의 강의평가란에
솔직하고 거침없는 강의평가를 남겼다.
그건 학생으로서 주장할 수 있는 나의 합당한 권리였다.
몇몇 교수들은 거만하며 수업에 태만했고
배울수 있는 기회는 균등하지 못했고 공평하지 못했다.
나는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정당한 방법으로 복수를 했다.
그렇게 강의평가를 남겨두면
다음 학기에는 좀 나아 지지 않을까.
강의평가는 어떤 식으로든지
교수들에게 전달이 되어지길 바랬다.
학생들에게 평가받는 내용이
스스로 부끄럽고 창피함을 느껴서라도
그들 수업의 질이 나아지길 바랐다.
그러나 순진한 내 기대일 뿐이었고 변화는 없었다.
본인이 말을 잘 타는 것과
누군가를 잘 지도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나를 지도했던 지도자들은
어릴적부터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국가대표 경력도있는 아주 뛰어난 실력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수업 때
엘리트코스 과정 수업에나 어울릴법한
아주 어려운 고급 승마 용어들을 주되게 사용을 하며자기의 전문 지식을 과시했다.
(자기를 과시했다.라는 문장 이외에 더 적합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들이 그러한 어려운 용어들로 도배를 하며
자기의 지식을 과시를 할 때
나는 그들이 멋져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제자들의 수준과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아주 불친절한 지도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들 입에 익숙한 알아듣기 힘든 전문 용어들은
배우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춰
얼마든지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제자들의 이해와 성장을 돕는
최소한의 배려조차 하지 않는
교육자이자 지도자로서 그들의 태도는
실망스러운 게 당연했다.
본인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난다 해도
자기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제자가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뛰어난 실력이 무슨 소용인가.
능력 있는 지도자는 가장 쉬운 언어로
가장 알아듣기 편한 표현으로 지도할 수 있어야
진짜 능력 있는 지도자인 것이다.
학교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교수는
제자를 양성하는 지도자이자 교육자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본분을 잊은듯했다.
교육자는 선수가 아니라 지도자임을 말이다.
그들 수업을 들으며 깨달은 게 많은 나는
내 회원들에게 수업을 할 때
그들이 알아듣기 쉬운 언어와 표현으로 설명했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그러나 최대한 디테일하게.
내가 내 수업을 듣는 회원들에게 설명해 주는
모든 기승술들은
내가 말위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백 번 연습하여
이해하고 터득한 방법들이었다.
내가 몸으로 깨달은 해법들은
내가 몰두하며 고민했던 것만큼
회원들에게 디테일하게 설명해 줄 수 있었다.
내가말위에서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하고 깨달은
해법들은 내 몸과 머릿속에 기억이 되어있다가
내 회원들이 말위에서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그들에게 명확한 설루션이 되었다.
나는 그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최대한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수업을 듣는 회원들은
내 수업을 즐거워했고 좋아했다.
나 역시 회원들과 소통하며
유쾌하게 함께 즐기는 수업이 좋았다.
나는 내 시간을 더 잘게 쪼개어
내 강의 타임을 늘려갔다.
배우는 학생과 지도하는 지도자 입장을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학교에서 내가 배우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마장에서 내 회원들을 지도할때는행복을 느꼈다.
내 실력을 쌓기 위해 나는 배우는 것에 잠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매일매일 기승일지를 썼다.
내가 그날 탔던 말의 기질과 행동특성을 기록하고
내가 그날 말을 타면서 고전했던 문제들과
그날 말위에서 배우고 깨달은 내용들을 기승일지에 기록해 나갔다.
그렇게 쌓인 자료들은
내가 마장에서 내 회원들을 지도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들 투성이다.
뭔가 흐름을 타면서 잘되어간다 생각할 땐
꼭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는 법이니 말이다.
남편 마장이 제법 자리를 잡아가며
회원들의 수가 늘었다.
내가 맡은 수업의 타임도 늘어가며
회원들과 교류가 활발해질즈음
남편 마장이 잘된다고 여기저기 소문이 났다.
그러자 타 마장 운영자들의 질투에서 비롯된
찔러보기식 은밀한 민원들이 카지노 게임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들이 민원이라고 신고한 내용에는
마장이 규제를 당할 근거는 없었고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상황도 전혀 없었다.
그저 타 마장 운영자들이 카지노 게임를 괴롭히기 위해
그냥 한 번씩 찔러보는 식의 민원임을 알았다.
민원은 집요했고
우릴 괴롭히는 의도가 다분한
아주 질 낮은 수가 읽히는 일이었다.
몇 다리만 걸치면 누군지 뻔하게 예상되는
좁은 승마판이었다.
내 지인들을 통해서 소식을 들어보니
민원을 넣은 이들은
평소에 나와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말과 함께 사는 삶과
좁은 승마판에서 서로 이름을 주고받으며
말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회의감과 피로감이 밀려들었다.
그런 일들이 몇 달에 한 번씩 우릴 괴롭히는 동안
남편 마장이 자리하고 있던 리조트가 매매가 되어서 주인이 바뀌었다.
새 주인은 카지노 게임에게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공지해 왔다.
계약기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법적으로도 복잡한 상황되었다.
시끄러운 말들과 복잡한 법적인 문제들이 오고 갔지만
카지노 게임 영세 승마장 세입자신세였으므로
결국은 계약이 파기되었다.
카지노 게임 당장 한 달 후 20마리의 말들을 데리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마장옆 숲길에 거친 돌들을 골라내어
훌륭한 체험 숲길을 만들고
체험과 교육파트 모두 카지노 게임가 공을 들인 만큼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회원들과 관광객들이 먼저 찾아와
마장살림이 안정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카지노 게임 우리가 그동안 일군것들을 다 버리고 떠나와야 했다.
그래. 인생살이라는 게 꼭 그렇더라.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돌아가는 게 있던가.
기를 쓰며 마장을 살려내느라 애를 쓰던 남편은
새 마장을 차린 지 몇 년 만에 겨우 살려놓은
마장 환경을 다 버리고 떠나야 했다.
그리고 마땅한 마장 자리를 찾아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모든 것들이 리셋이 되었다.
처음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던 휑했던
그 마장에서처럼.
남편과 내가 정성을 들여 일군 마장은 망했다.
한순간이었다.
눈발이 날리는 겨울날에
남편은 20마리 말들을 데리고
새로운 마장 자리를 찾아야 하는 고민에 빠졌다.
20마리 말들을 데리고 갈 마장자리를 찾는다는 것은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장을 할 적법한 자연환경이어야 했고
체험과 교육을 진행하기에도
접근성이 좋은 곳이어야 했다.
말들이 지내기에도 편안해야 했다.
그 시기는
남편과 내가 말 인생을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남편은 말인생을 살면서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랬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도
이미 말에 미쳐있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삶은 단순했다.
말들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한 말들과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말들도 행복하고
카지노 게임도 말과 함께 행복한 삶이라니.
그 얼마나 순진한 이상주의자 같은 생각이었던가.
순수한 마음으로
말을 돌보고 말과 함께 하루를 지내며
그 속에서 순수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삶,
물질적인 욕심을 내지 않는 사는 삶이라 해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선
최소한의 물질적인 여건들을 갖춘 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말과 함께 사는 삶을 살면서
나는 이제 말에 미쳐간다. 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말에 미친다는 말은,
말타기를 미치게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말에 대한 연민. 사랑. 갈등. 분노. 기쁨. 보람을
느끼는 순간순간들이
그야말로 온전히 내 삶이 된다는 뜻이었다.
카지노 게임 이미 삶의 모든 순간에
말에 대한 연민, 사랑, 갈등, 분노와 기쁨, 보람과 고통을느끼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누가 봐도 말에 미쳐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있었다.
남편과 나는 인생이 카지노 게임를 이끄는 대로
흐름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왔다.
평생 그랬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말과 함께 사는 삶은
카지노 게임 마음이 더 진실하고 순수할수록
카지노 게임 인생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된 듯 느껴졌다.
거센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되는 연어들처럼.
말과 함께 사는 삶은 순조롭지 않았고
매 순간 고통스러웠다.
괴롭고 힘들며 외로운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