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4~10
두 편의 르포르타주를 동시에 작성하던 12월 3일 화요일 심야 11:06에 동료 교수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다.
-계엄령 선포 방금
-네?
-작가님... 조심하세요.
모를 듯해서 알려드려요
그랬다. TV도 라디오도 없는 나는 모르고 카지노 게임다.
다른 교수의 문자 : 우리 학생들 이번 토요일에 국회에서 시상식 하기로 했는데...
맞다. 내수업에서 참여한공모전에서 학생들이 수상을 해서 12월 7일 카지노 게임의원회관에서 시상식이 있을 예정이었다.카지노 게임로 계엄군이 진입하고 카지노 게임가 폐쇄되면 학생들의 시상식은 열릴 리 없었다.
나는 당장 수업을 걱정했다. 교육부 "휴교 검토 중"이라는 답변이 왔다.
밤 11시 반에 전화할 수 있는 최측근에게 전화를 했다.
황당함과 비웃음과 분노가 전달되었다.
원고를 쓰다 말고 컴퓨터로 유튜브와 방송사 라이브 방송을 켰다.
유튜브는 과다 접속으로 화질이 나빴고 방송사는 그나마 나았다.
통신망이 살아있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댓글은 계엄 찬성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눈을 의심할 비정상 현실이었다.
하지만 아직 방송사가 라이브 방송을 할 정도로 군부에 장악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45년 만에 다시 보는 블랙코미디였다.
6개 항목 중 집회 금지라니 새만금 생태계 복원을 위한 전북도청 월요 미사와 故 강태완 추모 집회가 걱정되었다.
공수부대가 카지노 게임로 진입했다는 문자에차례차례 답했다.
-역사가 심판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시민정신을 믿습니다
-(카지노 게임가) 절차에 맞춰 잘하겠죠
-투입되는 군인도 양심과 의식이 있겠죠
그리고 계엄 해제 결의안 190명 전원 가결
150여 분 만이었다.
두 시간 동안 공포에 떨었다.
평소 9시 반이면 자는 청주친구에게 내일 아침이면 보라고 짧게 상황을 전했다.
그런데 답이 왔다.
-표 끊어놓고 대기 중에 카지노 게임어
-어디로 가려고?
-서울 카지노 게임 가려고
정말 멋진 친구였다.
집에 먹을 것과 현금이 없고 차에는 기름이 떨어진 상태로 혼자서 이 낯선 곳에서 막막하고 불안한 심정으로 어디로 가야 하나, 누구를 찾아야 하나공포심에 일신을 걱정하고 있던 나에게는 과분한.
바로 그런 친구 같은 시민들이카지노 게임로 진입하는 계엄군을 막아섰고 긴급 출동한 카지노 게임의원 190명은 전원일치로 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수요일이 되어 카지노 게임고, 더는 원고 쓸 기력이 없어 잠에 들었다.
몇 시간 만에 눈을 뜨니 실내온도 16도.
온수 보일러를 틀고 한참을 샤워했다.
마지막 국물멸치를 넣고 구미에서 함양 농민으로부터 받은 배추를 넣고 무를 채 썰어 넣고 된장국을 끓였다.
한 알 남은 달걀을 부쳐 밥 위에 얹어 군산에서 숨이차가 선물해 준 들기름을 뿌려 비볐다.
앱으로 듣는 KBS 클래식 FM에는 청취자들이 밤새 잠을 못 자고 불안에 떨었다는 문자가 쇄도했다.
단출한 밥을 먹고 사진전에서 선물 받은원두를 갈아 티타늄 컵에 내려 우유를 탔다.
아무것도 모르는 콩이에게 사료를주고 산책을 하러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소포가 와 카지노 게임다.
일본인 친구로부터 출간 축하 선물로 온 보드라운 실내복과 히트텍과 양말 두 켤레와 양갱과 고급과자였다.
참 유니클로가 일본 브랜지였지?
책과이음에서 보내준 간식 마지막 맥스봉 한 개를월요일 전주 다녀오는 길에 먹었는데 간식이 또 채워졌다.
일본은 한국의 이 기가 막힌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
농로 저만치에 백로가 올라와 카지노 게임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살금살금다가가자 백로는 개울로 내려가 내가 다가가는 만큼 상류로 올라갔다. 오래전 정읍 동학농민의 길을 걸을 때처럼.
오랜만에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이 평화에 감사했다.
처음 뵙는 할머니가 반가워 인사하고카지노 게임 일어난 한심함과 안심에 대해 대화했다.
시골 할머니도 수준 높은 자유민주주의 시민정신을 가지셨는데 어찌하여.......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고 어스름 저녁에 산책을 하러 나갔다.
원래 목걸이가 무거워서 내가 새로 사다 매 준 헝겊 목걸이가 찢어져 카지노 게임고 콩이 목에는 원래 목걸이가 묶여 카지노 게임다. 개 짖는 소리가 한참 났는데 다른 집 개인줄 알고 나가 보지 않았다. 이웃집에 가서 물어보니 콩이가 목줄 풀린 채 다니길래 어떤 분이 데려와 목줄을 묶었다는데...... 대체 무슨 일이 카지노 게임던 걸까?
콩이 마저 없으면 난 이곳에서 살 자신이 없다.
집에 올라와 몇 달째 소리 나지 않는 오디오 세트를 만지작거렸다.
뭔가를 만지고 또 만지니 소리가 났다.
폰과 연결한 라디오도 나오고 레코드판도 재생된다.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내가 해냈다.
80장 중 여섯 장 남은 레코드를 다 들었다.
올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것 같다.
목요일 밤 故 강태완 추모집회 가려고 서두르다가 왼손에 화상을 입었다.
타는 고통 속에서 익산에 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픈 손으로 운전해 돌아와쉬지 않고 글을 썼다.
주말 시상식엔 결국 못 갔다.
월요일에 전주 생태계 복원 미사에 갔다 와서
화요일 낮에 콩이 밥 주러 잠깐 나가니앞집에 오는 남자가 다가왔다.
"데모하러 안 가요? 나는 바빠서 못 가지만, (그쪽은) 가야죠."
두문불출하는 나를 동네에서도 주시하나 보다.
자신은 일 때문에 바빠서 못 가지만 나는 가야한다는 시골 의식이 놀랍다.
나는 데모를 집에서 한다고,
원고지 157매 분량의 글을썼다고
속으로 말했다.
어깨가 아프다.
목도 아프다.
이런 나를 돌보듯 강정평화상단 귤이 한 박스 집으로 왔다.
숨이차가 보내준 선물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가을아리셀 희망버스 원고를 넘겼을 땐 화성의 샤인머스켓을 보내주었다.
숨이차의 드러나지 않는 연대는 투쟁의 동력이 된다.
광주의 주먹밥처럼.
지난 일주일.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