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닐라 Manila (24.12.31-25.01.02)
24년 말 우리 부부에게는 다소 우울한 사연들이 몇 가지 있었다. 남편에게 연말 마닐라 비행이 배정되었는데, 여행을 함께 떠나자~ 라는 느낌보다는, 같이 있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다는 판단으로 항공권을 예매했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쉽게 흔들릴 때, 물리적으로라도 함께 있는 시간을 길게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때는 2024년 12월 31일. 오후 반차를 냈다. 명절 연휴 전이나 말일과 같은 날엔 보통 회사에서 두세 시간조퇴를 시켜주곤 하는데, 점심 먹고 두세 시까지 버티고 있기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사람들은 반차가 아깝지 않냐고 물었지만, 조퇴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더 아쉬운 심정이었다. 사무실에 새해 인사를 미리 건네고, 집에 들러 가벼운 차림으로 환복 카지노 가입 쿠폰.새해를 해외에서 맞이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마닐라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 시각으로 밤 11시가 다 되어서였는데, 한국과는 시차가 있어 한국은 이미 새해가 밝았던 차였다. 시간을 거꾸로 날아 새해맞이를 두 시간 보류한 채, 비행기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25년 1월 1일이 되는 열두 시에는 남편과 함께 있고 싶었다. 입국 수속을 위해 늘어진 줄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경험은 그 나름 새롭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새해 인사를 건넬 상대가 있는 것이 더 낫잖아.
크루라인으로 먼저 수속을 마친 남편은 시간을 아끼고자 체크인을 하러 호텔로 떠났고 맥주라도 한 잔 할 만한 곳을 찾아보겠다고 카지노 가입 쿠폰.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큰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횡단보도가 없는 왕복 12차선쯤 되는 도로여서 공항 내 식당가와 상점가가 즐비한 아케이드를 돌아 돌아 호텔을 찾아가야 카지노 가입 쿠폰. 뛰듯 걷는 중 어둠 속에 누워 계신 분들께도 해.. 해피뉴이어.. 길가에 인기척도 없이 쉬고 계신 분들을 보며 놀란비명을 속으로 간신히 삼키기도 하면서. 헨젤과 그레텔처럼 가는 길에 점점이 더위를 남기며 옷을 벗어제끼고 호텔 앞에 도착했을 때는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호텔 로비에 도착했을 땐 11시 40분 즈음이었다. 남편은 마중 나와 있었으나 적당한 라운지나 근처 펍을 찾아 들어가기엔 마음이 촉박하기도 했고 우선 무거운 외투를 내려놓고 싶어서 우선 방으로 올라갔다. 창으로 보이는 불꽃놀이가 형형카지노 가입 쿠폰.
열두 시가 땡. 보신각 종소리도 송구영신 예배도 없이 2025년은 그렇게마닐라 호텔방에서 맞이했다.
이미 한국에서는 2시간 전 새해가 찾아왔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여느 하루와 다를 것 없는 밤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란 것이 퍽 다행이었다.빠르게 짐을 풀고새해 무드를 즐겨보자 하여 거리로 나섰다. 열두 시가 넘어서까지도 사방에서는 크고 작은 폭죽을 터트리고 부부젤라를 울려대며 시끄럽게 굴었고, 그것도 모자라 경찰들은 오토바이의 방구소리를 (feat. 매연) 탈탈탈탈 끝도 없이 재생해 댔다. 필리핀에서는 크리스마스와 신년이 가장 큰 행사라고 하는데, 신년을 맞이할 때는 중국의 풍습이 섞여 들어와 액운을 쫓는 의미로 밤이 새도록 폭죽을 터트린다고 한다. 행사장에서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며 카운트다운을 했더라면 장관이었겠다 싶었지만, 소박한 산책 시간도 너무 소중했다.
어느 가게든 들어가서 뭐라도 먹으며 새해를 맞으려 했는데모두 캄캄히 문이 닫혀있었고, 다들 거리에서 인사하며 밤을 보내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방에서 맥주를 시켜서 침대 위에서 창밖 불꽃놀이를 보면서 서로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해 주었다.새해 복 많이 받아요. 우리 더 행복하자!
날이 밝자마자곧장인트라무로스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인트라무로스는 마닐라의 몇 없는 관광지 중 하나인데, 과거식민지 시절에 스페인 사람들이 지어 놓은 성벽 도시로 구 도심이라고 했다. 쇼핑몰이나 워터파크 같은 곳을 가는 옵션도 있었지만, 왠지 유적지를 걸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에 흥미가 생겨 가보기로 했다.
아침 식사로 피자나 햄버거 같은 게 먹고 싶어서 맥도날드,졸리비를 기웃거리다 문 연 집을 찾지 못하고, 판다 익스프레스가 영업 중이기에 들어갔다. 신정에 다들 쉬어야지, 일하면 안 되지 암. 판다 익스프레스는 간단한 중식 패스트푸드점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와도 인기 있을 것 같았다. 그릇도 귀엽고 가격도 착하고 맛도 적당카지노 가입 쿠폰. 필리핀에서 중식을 먹는 것은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지만,레이오버를 따라다니며 현지식에 집착하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게 되었다. 다음에 다시와서 먹으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끼니를 잘 해결하고 산티아고 요새로 향하는데 이슬비가 시작됐다. 더운 날씨라 우선은 촉촉이 나리는 비를 맞으며구경을 강행하기로 했다. 수다를 떨며요새 안쪽으로 파고들어 갔다.과거 전쟁에서 주요 시설이 모여있던 인트라무로스를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요새라고 하는데 돌로 만들어진 벽과 탑들이거대하고 오래되어 나무와 풀이 우거져있고 경관이 아름다웠다. 곳곳에 늘어져 쉬고 있는 고양이들도 많아 구경하는 즐거움이 두 배. 한가롭게 노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강을 타고 적군의 배가 다가오는지 확인할 수 있는 돌 탑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수용시설도 구경했다.요새 옆으로 흐르는 파시그 강은 흐린 날씨 덕에 색이컴컴했다. 구경을 마치고 나가는 길엔 빗줄기가 거세져 입구 앞 상점에서 우산을 하나 구매해서 사이좋게 나눠 썼다.
산티아고 요새에서 시작한 우리의 발걸음은 마닐라 대성당을 거쳐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건물이라고 하는 성 어거스틴 교회로 이어졌다. 성당 앞에는 인트라무로스를 한 바퀴 투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차들이 줄 지어 서 있었는데, 인트라무로스에서 운영하는 공식 마차는 마부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다고 했다. 비가 와 흐린 날씨 속에 빨강 노랑체크 셔츠들이 예뻤다. 타 볼까도 고민했지만 충분히 걸을만하다고 생각되어산책을 이어갔다.
잠시 들어가 본 마닐라 대성당은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1월 1일을 맞이하는 새해 미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밖으로 나와 성 어거스틴 교회의 외관도 구경했다. 교회는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비가 천천히 잦아들고, 인근의 분위기가 예뻐 뷰가 좋은 카페를 찾아 들어가려고 했다. 어딜 가볼까 하다 왜인지 인트라무로스의 명물처럼 여겨지는 스타벅스로 피신했다. 더위에 지쳐 찬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마닐라 시티컵을 구매했다. 시답잖은 농담을 하고, 셀카를 찍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카페 앞은 밤을 새워 새해를 맞은 청춘들이 술에 취해 모여 앉아있었다. 남편에게 친구가 되자며 말을 걸기도 했다. 길거리에는 폭죽 찌꺼기와 포장재들이 가을 낙엽만큼 잔뜩 쌓여 한 곳에 모아져 있었다. 1월 1일에 땀을 뻘뻘 흘리며 길을 걷는 경험은 새롭다 못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인트라무로스를 직선으로 통과하여 리잘공원까지 이동했다. 마차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말들은 휴가도 없이 열일하며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리잘공원은 굉장히 넓었는데, 가운데에 작은 호수가 있어 유원지 느낌이었다. 휴일을 맞아 가족단위로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고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먹거나, 둘러앉아 어린이들의 재롱을 보고 있었다. 공원 한 바퀴를 돌면서 남편은 더위에 지쳐갔고, 높은 습도로 휴대폰 카메라가물 먹은 듯 먹먹했다.한국에 돌아온뒤에야 알아본 사실이지만, 리잘은 우리나라로 치면 안중근처럼 유명한 독립운동가라고 한다. 리잘공원은 한국으로 치면 사이즈가 큰 도산공원이었다.
우리는 더위를 피해 그랩을 잡아 타고 다음 목적지인 대형 쇼핑몰로 향했다.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도시의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마닐라는 수도이다 보니 필리핀의 다른 휴양지와는 다른 것이당연한데도 어찌나 신기했는지. 여기가 보홀과 같은 나라 맞아? 제주와 서울의 무드가 이렇게 달랐던가를 고민해 보게 되었다.
SMMOA (SM Mall of Asia)는 명성과 이름답게무척 넓어서여러 층으로 된 코엑스 같은 느낌이었다. 규모에 놀라기도 잠시 나이키, 샤넬, 유니클로.. 다 내가 아는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어서쇼핑을 해야겠다기보다는 와 본 것으로 족하다 생각하고, 점심 겸 저녁을 먹기로 카지노 가입 쿠폰.
규모가 큰만큼 정말 많은 종류, 많은 국적의 식당들이 있었는데 남편은 자꾸 한식에 관심을 표했다. 살짝쿵저항을 해보았지만 나 역시 특별히 먹고 싶은 메뉴가 없기도 했고,이태원에서 가봤던 단풍나무집이 현지에 새로 오픈을 했는지 호객행위를 하는 직원들이 많아 눈이 갔다. 마닐라에서 단풍나무집이라니,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쫓아 들어가 앉아 밥을 받아먹는데 아썩 맛이 좋네. 닭갈비와 뚝배기불고기를 깨끗하게 비우고 밖을 나섰다. 흡족한 한국인의 밥상.
다음 목적지는 COD (City of Dreams) 라 하는 마닐라의 카지노 호텔이었다. 원래 계획에 있던 일정은 아니었으나SM몰과 가깝기도 했고, 도파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간단히 카지노를 즐기고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카지노 가입 쿠폰.카지노 입구까지 바로 택시로 이동했는데, 들어서자마자 로비가황금빛으로 으리으리카지노 가입 쿠폰. 남편과 나는 각 2,000페소 (한국 돈으로 5만 원 정도) 싹만 나눠 들고 탕진하면 깨끗이 접고 돌아가기로 약속카지노 가입 쿠폰. 어떻게 하는 줄도 몰라 속성 과외도 받고, 맘에 드는 기계를 찾아 헤어졌다.
나는 몇 번의 잭팟을 만나기도 하였으나 기어코 빈손이 되었다. 남편을 찾아가 보니 비슷한 사정이었다. 몇 판만 더 하고 가자며 옆에 앉아 참견을 하고 있노라니, Super Win이 연달아 터졌다. 경쾌한 음악소리가 울려댔다. 소액을 걸고 하는 게임이라 큰 당첨금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우리는로또라도 당첨된 듯 신이 났다. 미련을 버리고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지노 밖으로 나가는 길 빅 휠이라고 하여 앞에 커다란 돌림판이 돌아가고, 멈추는 숫자를 맞추는 게임이 있는데 왠지 해보고 싶었다. 두어 판 경험해 보고, 이제 진짜 돌아가자며 마지막 판에 과감히 조커를 걸었다. 돌림판에 아주 작게 한 칸 있는 조커에 멈출 리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재밌자고 하는 거니까. 그리고 결과는? 조커 당첨! 너무 신나서 비명을 꺄악 질렀고 기계 소리뿐인 카지노에서 모두의 시선을 받고 말았다. 그래봤자 한 끼 밥 값 정도를 벌었지만 잘 되니 재미있었다. 달러로 환전하여 유유히 카지노를 빠져나왔다. 새 해맞이 사행성 게임은 별로지만, 올 한 해 있을 수많은 좋은 일 중 하나라고 여기기로 카지노 가입 쿠폰.
숙소로 돌아가서는 낮잠을 조금 잤다. 남편은 또 밤 비행기를 몰고 나를 집으로 데려가야 카지노 가입 쿠폰. 몇 페소를 삥 뜯어 먼저 공항으로 향카지노 가입 쿠폰.다시 복잡한 통로를 돌고 돌아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마쳤다.
공항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시티컵을 한 가지 더 사고 말았다. 앉아 있노라니 크루들과 있어야 할 남편이 털레털레 걸어오는 게 보였다. 어떻게 왔냐고 하니 기장님이 아내분과 시간을 보내라며 쫓아냈다고 한다. 덕분에 잠깐이나마 떠들며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짧은 여행에서 보내는 시간이 한 번도 부담되거나 귀찮지 않다고 느꼈는데 돌아오는 길 비행기에서 생각해 보니 모든 여정을 준비해 주는 남편의 덕이었다. 워낙에도 계획을 철저하게 수립하여 여행하는 타입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여행을 다닐 때면 이 정도로 의존적이진 않았는데. 오늘만몇 번을 택시를 탔는데도그랩 어플조차 없다는 게 말도 안 된다. 남편은 본인이 하자고 하는 것 먹자고 하는 것에 내가 다 좋다고만 하니 그게 고맙다고 말하곤 하는데, 정작 고마워할 사람은 나였다는 것을. 그 입에 담기엔 낯 뜨거운 "L"에 대해. 잠시 떨어져 앉은 기내에서 생각을 곱씹었다.
잠시 우울했던 연말을 뒤로하고.
새해를 사랑으로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