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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Feb 26. 2025

냉탕과 열탕사이

#2 삿포로 Sapporo (25.02.21-23)


삿포로 여행을 지난해 12월로 예약했었다. 눈 쌓인 삿포로에 봉착되고 싶은 감성과 더불어 연말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타국에서 느껴보자는 취지였다. 큰맘 먹고 식사까지 모두 포함된 값비싼 료칸을 예약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취소하게 되어 상심이 컸다. 특히나 9월부터 삿포로 여행만을 기대하며 브이로그까지 챙겨보던 남편은 좌절감을 온 얼굴로 표현하고, 또 다시금 속상함을 몇 번씩 토해내고는 했다.


2월로 미룬 삿포로 여행은 기존 계획했던 3박 4일보다 하루를 줄인 2박 3일 일정이었다. 그마저도 예약을 바꾼 후 회사에서의 업무가 변경되는 바람에, 도무지 휴가를 더 낼 수도 여행을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에 찾은 타협점이었다. 남편은 출발 전 날 밤부터 소풍 가는 초등학생처럼 우리 내일 진짜 가는 거냐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으로써는 레이오버가 아닌 온전한 해외여행은 지난 7월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최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무료 카지노 게임.

각오는 단단무료 카지노 게임.

옷차림은 좀 덜 단단무료 카지노 게임.


한국보다 삿포로가 덜 춥다는 말 한마디에, 추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 채 코트차림으로 멋을 부렸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패딩을 캐리어에 넣고 스웻셔츠 한 장만 걸친 채 출발을 했더란다.

비행기가 무사히 신 치토세 공항으로 내리고, 창 밖으로는 설국이 보였다. 출발 시 당당했던 자태와는 달리, 아무래도 홋카이도는 우리나라 보다 높은 곳에 있으니 엄청난 추위가 살을 에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피어올랐다. 나가보니 어라? 진짜 안 춥잖아. 볕이 좋고 하늘이 맑았다.


택시는 눈 쌓인 길을 뚫고 조잔케이에 위치한 료칸까지 한 시간 십여분을 달렸다. 창 밖 풍경이 너무 이질적이어서 믿기지 않았다. 눈이 정말 많았다. 차에서 고개를 돌려서 창 밖을 보면 창의 절반까지는 쌓인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을 치워 길을 내느라 차도와 인도 사이에는 쌓아 올린 눈으로 담벼락이 만들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면 쌓인 눈이 흩날려 눈이 내리는 듯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골목을 지날 때면 택시는 장난감 자동차가 된 듯 힘없이 미끄러지기도 하고, 얼어붙은 경사로를 기가 막히게 타고 오르기도 무료 카지노 게임.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여정이 하나의 투어 코스로 느껴질 만큼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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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칸까지의 드라이브 내내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무료 카지노 게임



우리는 료칸 주변을 벗어나지 않을 계획이었다.

몇 차례 택시와 전세탕 예약 메일을 보냈으나 읽고도 회신을 주지 않은 것 치고는 지나치게 다정하고 친절한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무료 카지노 게임. 방은 일본식 다다미 방에 침대만 웨스턴 스타일로 골라 예약무료 카지노 게임. 창밖으로 설경이 보이는 거실은 낭만적이고, 아늑한 침실은 분리되어 있고, 화장실에는 히노끼탕이 딸려있어 여차하면 밤 새 목욕을 할 수도 있었다.


우선은 대중탕에서 목욕을 하고 예약된 저녁을 먹기로 무료 카지노 게임. 저녁 시간까지 한 시간 반 정도 여유가 있어서 천천히 즐겨야지 했는데, 감이 없는 자의 착각이었다. 씻고 욕탕에서 조금 몸을 풀자니 곧 나가서 머리를 말려야 무료 카지노 게임. 탈의실에서 다른 쪽 문으로 연결된 노천탕을 늦게야 발견해서 잠시 나가보았는데, 눈이 쌓인 풍경 앞에 커다란 욕탕이 있어 그림 같았다. 일부러 쌓인 눈을 마구 만지고, 그대로 따끈한 물로 잠기기도 무료 카지노 게임.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하늘로 올라가서 곧장 눈이 되어 내릴 것 같았다.


저녁은 가이세키 정식으로, 일본식 코스 요리를 먹었다. 바닥이 뚫린 좌식 테이블에서 눈밭 뷰를 옆에 두고 사케를 한 병 비웠다. 사시미가 입에서 눈처럼 녹았다. 소바는 머리를 식히고, 나베는 마음을 덥혔다.


식사 후에는 라운지에 자리 잡았다. 하루 세 타임에 걸쳐 각종 다과를 제공하는데 저녁 타임은 사케와 생맥주 같은 주류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녁 식사에서 이미 배를 채울 대로 채웠음에도, 다과가 하나같이 너무 맛있어서 방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새로운 파이들이 계속 구워져 나왔다. 나중에는 자리에만 앉아있어도 직원분이 갓 구운 슈나 파이 같은 것을 한 판 씩 들고 다니며 접시에 올려주고 가기를 반복무료 카지노 게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의 부모가 돼지가 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런 행복은 새로운 종류의 함정인가? 어쩌면 살 찌워 잡아먹는 곳일 수도 있어.



장래 희망이 돼지 부부일 때 방문하면 좋을 곳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방으로 돌아가서는 다시 방에 딸린 욕조에서 목욕을 무료 카지노 게임. 창문을 활짝 열고 델 듯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있다가 더우면 창 밖으로 몸을 쭉 내밀었다. 몸에서 아무개 히어로처럼 김이 피어올라서 서로를 보며 깔깔 웃었다. 창문 옆에 쌓인 눈을 가지고 또 장난을 치고, 손이 얼음장이 되면 다시 뜨거운 물에 집어넣어 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가슴이 답답할 때까지 물에 잠겨있다가 다시 어깨가 오싹해질 때까지 창 밖으로 나오기를 반복무료 카지노 게임.






남편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또 욕탕에 들어갔다 나왔다. 나는 조식 시간에 맞추어 깼다. 방에 있는 유카타라 불리는 일본식 옷은 커다란 가운 형태의 천을 몸에 두르고 허리에 끈을 둘둘 둘러 묶으면 속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무척 편리무료 카지노 게임. 그 위에 가디건 처럼 생긴 겉옷을 하나 걸치면 넓은 소매 끝이 막혀있어서 주머니처럼 쓸 수 있었다. 잠옷 위에 대충 걸치고 머리를 틀어 올리고 아침을 먹었다.


나른함에 취해 조금 더 자고 일어나 편의점으로 산책을 떠났다. 낮의 거리를 산책하는 것은 차창이나 숙소 창 밖으로 보는 풍경보다 더 면면히 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건물 위에 쌓인 눈은 아무리 비좁은 처마여도 무조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모든 하늘과 땅의 경계는 종이 인형옷을 자를 때 일부러 일정하게 흰 테두리를 남겨 자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바위나 자동차 위에 쌓여있는 눈은 켜켜이 쌓이고 또 쌓인 탓에 질감이 뭉글거리는 것처럼 보여서 마치 수플레 팬케이크 위에 잔뜩 올라간 휘핑크림 같았다. 이따금씩 보이는 조경한 소나무 위에 얹어진 눈은 가지가지마다 한 큰 술 가득 설탕을 넣기 위해 요리를 준비 중인 것 같은 모양새였다. 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듯 기념품점과 편의점을 들리며 산책을 무료 카지노 게임. 돌아오는 길에 숙소 바로 앞에 있던 라멘집을 갈까 했는데 세시부터는 브레이크 타임이라 문이 닫혀버렸다.



삿포로는 겨울 쿨톤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라운지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슈퍼마리오 카트 대결을 몇 판 벌이고, 다섯 시로 예약한 전세탕으로 향무료 카지노 게임. 노천탕인데 꼭대기 층에 있어서 먼 풍경을 볼 수 있고, 가족끼리 같이 목욕할 수 있어 정답고 좋았다. 멀리 보이는 산은 바닥에 눈이 촘촘히 쌓여 아기의 머리털을 보듯 나무가 한가득 한가닥 선명무료 카지노 게임. 겨우내 창밖이 늘 이런 풍경이라면 아주 쉽게 감상에 젖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를 떠올렸다. 그 두 권짜리 책을 읽으며 감정을 문자로 배웠던 중고등학생 시절은 또 그만의 느낌이 있었다. 옛 노래를 들으면 자주 들었던 그때가 함께 재생되듯이, 책을 떠올리며 그 기분을 어렴풋이 기억무료 카지노 게임.



어깨 아저씨 같아 보이네



저녁 식사는 전 날과 메뉴가 다른 코스였다. 남편은 돼지고기 샤브샤브에 빠졌고, 나는 와규에 빠졌다. 습관처럼 라운지로 또 이끌려서 맥주를 좀 더 마시다가, 도저히 소화를 시키지 않고는 안될 것 같아 다시 밖으로 나섰다.


저녁 풍경을 구경할 때는 편의점을 두 군데나 더 들렸다. 밤에 방에서 마실 삿포로 클래식을 이미 낮 산책 때 쟁여두었는데, 처음 보는 맥주들이 있어서 또 골라 잡았다. 길을 내느라 양옆으로 쌓인 눈이 내 키만 했다. 모세가 바다를 갈랐다는데 그 구절이 자꾸만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걷다 말고 눈 위로 퍽 쓰러지는 장난을 치는데, 우리 집 침대처럼 포근하고 푹신했다. 머리카락이 젖어 차가운 줄도 모르고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폭신한 케이크 같은 눈덩이들



다시 유카타로 갈아입고 바깥에 작은 건물로 된 대중탕이 있다 하여 가보니, 마치 이 지역에 온천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있었을 것 같은 낡은 목욕탕이 있었다. 여탕에도 남탕에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남편과 노천탕 담을 사이에 두고 수다를 두런두런 떨고, 마구 노래를 불러댔다. 내일이면 집에 가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한없이 여유롭다가도 조급해지는 마음이었다.


연이어 대욕장에서 긴 목욕을 즐겼다. 그리고 라운지에서 또 한참을 떠들다가, 방에서 화투를 쳤다. 여행을 갈 때 종종 화투 한 모를 가지고 다니는데, 점심 내기나 택시비 내기 같은 것을 하면 아주 재미있다. 남편과 친구처럼 놀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결혼할 때 남편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딸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달라고.






두 번째 밤도 푹 자고, 조식을 먹었다. 전 날 보다 가벼운 코스를 선택했더니 일본식 가정식처럼 수란에 생선구이 같은 것들이 준비되었는데 건강하고 가뿐무료 카지노 게임. 준비를 하고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고 맥주가 가득 담긴 캐리어는 무거웠다.


택시를 타고 삿포로 역으로 향했다. 남편은 나에게 피크민을 사주기 위해 18kg짜리 캐리어를 끌고 고군분투했다. 거의 네다섯 군데의 갓챠샵과 소품샵을 돌아 마침내 발견했다. 나중에서야 깜짝으로 선물을 건네는 바람에 그땐 찾은 줄도 몰랐지만. 찾아 헤매는 시간이 길었던 탓에 남편이 가고 싶어 했던 라멘집 웨이팅은 포기해야 했다. 미안한 줄도 모르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가벼운 투닥거림이 있었다. 이게 다 떠나기 싫어서 그래.


공항에 도착한 JR선을 내려 출국장까지 가는 길은 IFC몰을 방불케 할 만큼 온갖 가게가 수도 없이 늘어서있었다. 심지어 라멘 로드가 따로 있어서 다행히 라멘에 생맥주 한 잔을 먹고 귀국할 수 있었다. 하도 돌아다니느라 땀이 났다. 삿포로 왜 이렇게 더워? 를 몇 번이나 떠들어댔다. 휴양지에서보다 더 땀을 많이 흘렸다는 후문.


이번 여행은 고대한 만큼 제대로 즐겨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었다. 심사평은 별이 다섯 개.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하고 싶은 게 많은 여행이었다. 목욕탕도 너무 좋고, 음식도 정말 맛있고, 사실은 새하얗고 새파란 자연경관 만으로도 제 몫을 하는 여행이었다.







(쿠키)


시도 때도 없이 피크민을 먹여 살리는 나를 위한 남편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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