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리랜서 번역가만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의 일이다. 한 사람이 이사 간 자기 집 사진을 올렸는데, 자연스럽게 번역 작업 공간의 사진을 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PC방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분위기라서 아늑함이 느껴지는 작업 공간,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피규어가 자리한 공간, 자신이 뜨개질한 덮개를 덮어 둔 공간. 모니터도 어찌나 제각각인지 서브 모니터가 위에 붙었다가 옆에 자리하는 등 다양했고, 각자 자신이 작업하기 좋은 크기의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키보드와 마우스의 다채로운 색상과 모양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너는 단체 채팅방에 이어지는 사진을 보다가 '저는 꿈도 못 꿀만큼 잘 꾸미셨네요'라고 답을 올리고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하면 작업 의욕이 더 상승할까?'
방을 꾸며볼까? 아니면 취미를 가져 볼까? 너는 언제나 작업 의욕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전 직장에서 항상 손발에 예술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아름다운 네일을 하던 여자 동료가 "난 미술관을 보는 취미에 돈을 쏟아붓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일하지 못했을 거야"라고 했듯이 일만큼 자신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취미를 가져야 오래도록 일을 그만두지 않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는 모니터 옆에 신줏단지처럼 모셔둔, 그러나 일이 대목이어서 펼쳐 보지 못한 한강의 책 <작별하지 않는다에 시선을 옮겼다. 잠깐 시선이 머물다가 너는 다시 노트북에서 카지노 게임에 들어갔다. 여전히 오늘도 모니터 속 하얀 창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책과 글쓰기. 이것이 네가 1분 안에 떠올릴 수 있는 훌륭한 취미였다. 쉽게 시작할 수 있고 멋지게 보이는 취미였다. 최근 이러한 생각을 여러 번 하자 너는 책과 글쓰기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네 삶에서 자신을 구해 줄 유일한 재미이자 구원으로까지 느껴졌다. 너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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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1
스물둘, 스물셋 정도였다. 날씨는 당시 너의 마음만큼이나 분명 좋았을 것이다. 너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서 읽고 있었다. 책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 너는 이를 번역가가 되는 방법이 담긴 책이라고 여겼다. 희한하게도 그날 네가 번역가가 되고 싶다고 강하게 꿈꿨기 때문이다. 너는 그때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었고 언젠가부터 번역가가 되는 법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었다. 지금은 번역가를 검색하면 다양한 번역가들의 책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분명 많지 않았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네가 단체 채팅방에서 본 번역가들의 방처럼 어떠한 제약도 없었다.그래서 접근하기 쉬워 보였지만, 그래서 진입 방법을 알기 어려웠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름을 알리면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시험에 합격하면 성공인 입시 방식만 거쳐 온 너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참 막연하였는데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 속에 깃든 자유분방함을 상상하면 좋았다. 심지어 그날 네가 있던 곳은 번역이라는 정적인 단어와 어울리는 고요한 학교 도서관이었고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 않았다. 너는 주로 혼자 일하고 자율성이 넘치는 일을 원했다. 너도 잊고 있던 어떠한 감정이 마음에 샘솟았다. 그건 네가 인생에서 두 번째로 느껴본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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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2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어느 날이었다. 이 순간도 너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서 자유로웠다. 너는 <혼자 하는 일본어 첫걸음이라는 책을 펼쳐서 조용한 독서실에 앉아 한글의 가나다라에 해당하는 히라가나를 외우고 있었다. 그때 느낀 묘한 감정, 독서실 온도, 일본어를 외우던 그 순간순간의 감각을 너는 지금도 잊지 않았다. 'の(노)'라는 히라가나가 외우기 어려워서 엎드려 'NO~'라고 외치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며 발음과 모양을 외웠다. 너는 시간이 흘러 그때 자신이 느낀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인생에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을 때 끓어오르는 생경한 감정이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몇 번 있다는데, 그 첫 번째가 이때라고 나중에 너는 확신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포인트는 변화라는 불규칙성을 띠는 단어임에도 꽤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어찌 보면 첫사랑이었다.독서실에서 조용히 일본어를 공부하던 순간은 네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싶은 순간이다.
하지만 일본어를 처음 공부한 뒤 시간이 흘러, 얼른 안정되고 싶은 마음에 전혀 다른 업무를 다루는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로 힘들 때마다 너는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되는 꿈을 주기적으로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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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
과거 1, 2를 생각하면 너는 도저히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금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이 일을 시작하게 해준 계기가 과거 1, 2였다면 이 일을 던져버리고 싶었던 때는 최근에 있었다. 크게도 있었고, 자잘하게도 있었다.
구구절절 써보아야 무엇하겠는가,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하기 싫을 때가 생긴다. 분명 내 삶을 꾸려 나갈 기둥이 되어 주는 일이지만 원동력이 생기지 않을 때가 생긴다. 더 힘을 들이지 않고도 똑똑하게 부를 이루는 사람을 보면 허무해진다.
불규칙한 삶을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프리랜서. 내 메신저 프로필에 적힌 문장이기도 하다. 이 문장을 진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최근이다. 그 전에는 혼란스러워했다. 규칙적인 삶을 추구하던 네가 불규칙한 삶에 적응하지 못했을 땐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문장 그대로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오후 열한 시까지 일하기도 하고, 때로는 평일에 갑자기 쉬어 버린다. 평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며 주말에 쉬는 주변 직장인과 상당히 다른 패턴이다. 보통 너는 휴가철이라고 불리는 성수기에 일이 바쁘고 비수기에는 한가할 때가 많다. 일반 직장인과 일의 속도와 주기가 다르면 "왜 그렇게 일을 하나?"라고 묻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났다. 너는 왜 그런지 이해시키기도 어려워했다.
주말에도 일했다는 말에 "그럼 평일에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나"라는 말도 최근에 들었다. 초면에 평일 열심히 일해서 끝날 일이었으면 주말에 했겠냐고 답하기는 그러하여,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주말에 일할 때가 있다"라고 답했다. 항상 회사에서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질문자는일하면서 쉬고 쉬면서 일하는, 일과 휴식의 경계선이 모호한너를 이해하지 못했다.사실 이제는 설명하기 귀찮고 이해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별 거 아닌 듯이 마음을 대충 얼버무려서 말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그렇듯 일하기도 귀찮은데 나의 일하는 형태까지 설명하려니 피곤하다. 그래도 글쓰기 모임에서 들었던 "다른 이에게 설명해야 하는 수고스러움까지 포함하여 내가 할 일이다"라는 말, 한 유명 번역가의 "우리 일이 원래 그렇다"라는 말에 그나마 위로를 받았다.
"프리랜서면 일이 없을 땐 어떡하나요?"라는 질문도 받은 적이 있다. "하하. 그럴 땐 어쩔 수 없죠"라고 네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답하자 안쓰럽다는 듯, 조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상대방은 너를 쳐다보았다. 모두를 단박에 끄덕이게 할 너의 답변 스킬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러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다음 일이 있을 때까지 공부하거나 실적서를 만들곤 합니다", "어차피 또 바빠질 것이기 때문에 이때 편하게 쉽니다"... 답변을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이 왜 짜증이 날까. 네가 예민할 성격일 수도 있다. 배려심이 많다고 널 감싸고도 싶다. 경험상 상대방이 갑자기 무례하게 질문할 때 네가 곤란한 적이 많았다. 이제는 프리랜서로 일한 지 시간이 꽤 흘러서 항상 일이 있고,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이 일을 거절해도 번역 회사가 납기일을 늘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인 너지만 당장 이 일이 끝나면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직업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기에 바빠도 일이 없을 때를 생각하면 벌벌 떤다. 그러나 사실 너는 직장에서 일할 때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회사에서 네가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외적으로, 내적으로 닥쳐와서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이도 저도 불안하다면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속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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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너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프리랜서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너는 한 모임에 나가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때 함께 있던 이들은 일을 좋아하냐며 믿지 않았다. 진정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끔 힘들지만 지금도 네 삶의 기둥이 될, 네가 좋아하고 먹고 자고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놓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포기하면 나중에 너무 후회할 자신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놓지 않겠다는 생각을 너는 의식적으로, 주기적으로 되뇌였다.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지금처럼 일하지는 못할 테니까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미리 굳게 다짐했다. 조금 더 효율성 있게 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눈앞의 일을 대처하기에 바쁘다. 분명 훨씬 일을 적게 하고 효율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을 너는 보았다. 나이가 들어 쇠약하고 환경이 변하더라도 이 일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 가능한 방법을 떠올리고 싶은데, 과연 이를 해낼 수 있을까 고민스럽다. 너의 어머니가 했던 말처럼 인생은 고민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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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중에 평생에 단 한 번뿐인 만남이라는 뜻의 '一期一会(일기일회)'라는 단어가 있다. 인생에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인연에 진심으로 대하라는 뜻이다. 이 일이라는 인연은 다행히 아직 네 곁에 머물러 주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손에서 놓아 주어야 할 부분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무리 힘들어도 이 일은 안 놓는다'는 생각은 제발 네 마음이 굳게 지키기를 바랐다. 타협하지 않는 이 생각의 저변에는 과거의 영원히 사랑하고 싶은 순간이 숨쉬고 있다. 독서실에 앉아 일본어를 외우던 순간, 학교 도서관에서 프리랜서를 꿈꾸던 그때. 내게는 무엇보다 반짝였던 순간. 카지노 게임 사이트 포인트. 사랑. 가치. 자아 실현의 도구.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운명적 순간이 분명 존재함에 너는 감사했다. 추가로 번역하면서 잔잔한, 그러나 희열에 찬 울림을 느끼는 순간이 있음에도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