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멸차고 찌질했던 연애사
나는 사실, 브런치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그런데 그때는 둘째가 태어났을 때여서 정신이 없었다.겨우 재운 아기 옆에 누워서 조용하고 공허하던 그 시간에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즐겁기도 했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마음속에 내 언젠가는 작가가 될 것이라는 옅은 꿈을 품은 채,
아기는 네 살이 되었고
나는 정말 정말 용기를 쥐어짜서 작가 신청을 했다.
서랍에 글 두 개와 블로그 링크를 걸어서 제출했다.
결과는?
그렇게 안타까우면 나 좀 데려가아-
에라이, 난 그냥 남의 글에 하트나 눌러야 될랑갑다
한참이 지나 내가 블로그의 모든 글을 오직 카지노 게임 보이게 해 놨었다는 게 기억났다.
하, 나 참!
내가 왜 철통보안이 됐게, 붕신같은 전남친 때문이지!
20대 초반에 잠깐 만났었던 그 사람은
겉모습과 다르게 매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별 생각이 없어서 말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어렸던 나는
‘어머 저 오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하며 망상 속의 그대와 연애를 시작했던 것이었다.
한 번씩 웃을 때 보조개가 귀엽고 좋아 보였다.
하지만 만나 보니 집착이 심했다.
나를 만나면 내 손을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자기가 가지고 간다.
그리고 문자목록 통화목록을 쭉 본다.
그때 폰은 수신/발신 메시지 저장이 따로 됐었는데,
그 모든 메시지들과 통화목록을 다 보고 나서야 폰을 돌려주었다.
나는 집에서도 그런 대접?을 못 받아봐서, 적잖이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내 친구들 모임에도 따라가고 싶어 하고, 모든 걸 다 관여하고 싶어 했다.
너무 고민이 되어 친한 언니들과의 모임에서 남친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요 언니들, 제 남자친구가 이래요... 어떡하죠?”
“어머, 너무 좋은데 난? 자기한테 관심 가져주는 거잖아. 몇 시에 집에 가냐 누구랑 만나냐 어디서 뭐 먹냐 그런 거 물어봐 주는 거, 너무 좋지 않아?”
핫 그... 그렇군요
저는 숨이 캉캉 막혀요 -_-
결국 그 연애는 그와의 기념일이 다가오는 것조차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이 들어 얼마 가지 못하고 정리했다.
정리카지노 게임고 생각했다.
그땐 문자메시지가 건당 요금을 받던 시절이었다
(꼴랑 40글자밖에 안 들어가면서!!)
그래서 우리들은 네이트온, msn 등으로 채팅하거나
싸이월드 방명록으로 약속을 잡곤 했다.
그런데 헤어지고 얼마가 지났을까,
그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잘 지내니?
친구들이랑 찜질방은 잘 다녀왔어?
보고 싶다..]
으으 이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내 스케줄을 알았지???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 공포감이 들었다.
그가 우리 집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내 친구들의 접점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로 내 미니홈피의 방명록을 모두 비공개로 전환하고
사진첩, 다이어리 등 모든 기능을 서로이웃에게만 공개하기로 바꾸었다.
아주 옛날에 친구들이 남긴 방명록들은 비공개로 바꾸는 기능이 없어서 추억을 지우는 게 속상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모두 삭제했다. 친구의 집을 타고 들어가서 또 내 사진이나 근황을 그가 보고, 알게 되는 게 싫었다.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나는 그 이후에 사귄 남자친구들에게는 집을 엉뚱한 방향이라고 알려주었고, 남친들이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갈 때
혹시라도 내 뒤를 밟거나 하면 안 되니까 우리 집과 상관없는 엉뚱한 출구로 나와서 마을버스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서 집에 들어가는 수고를 거뜬히 감내했다.
그럼에도 그는 악착같이 내 근황을 알아내서
나에게 연락을 하곤 했는데,
그의 호의로운 선물 소포를 뜯지도 않고 착불로 되돌려 보내고 나서야
그와 정리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그의 열정만큼 함께 회까닥으로 화답했더라면
우린 어쩌면 천생연분이 되었을까? 싶지만
나는 당최 그런 애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