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한 진보주의 2화
우리집에 정의감에 불타는 진보주의자가 있었다면,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마다 이모부와 크게 싸웠을지 모른다. 이모부는 사회적 강자다. 일단 남성이고 비장애인이다. 태어났을 때 등록된 성과 자신의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이고, 호봉이 높아서 많은 소득과 휴가를 보장받는 공무원이다. 심지어 한창 개발되고 있는 곳에 자가를 소유하고 있다. 이모 이야기에 따르면, 주변에 새 전철역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집값이 두 배 이상 올랐다.
이모부는 가진 것이 많다. 그럼에도 가족의 안위를 가장걱정한다. 외국인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겪었다는 뉴스를 보면 안타까워하면서도, 나와 사촌동생에게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퀴어퍼레이드나 총파업이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면, 절대 저런 일에 관심 두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애먼 남보다 내 가족을 지켜야 하고, 남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사회 주류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빈 손으로 영남에서 경기도로 올라와서 수억 원 어치 집까지 손에 넣은 이모부의 신조다.
이모부는 정치적 올바름과 동물권, 성소수자와 불법체류자 인권에 관심 없다. 그저 우리나라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그 속에서 가족이 가난으로 추락하지 않게 하는 데 관심 있을 뿐이다. 이모부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영남 출신의 소박한 가족주의자다. 정의감에 불타는 진보주의자가 보기에, 그런 이모부는 사회적 약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사회정의를 외면하는, 이기적인 강자의 표본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집 사람들은 정치 문제를 두고 싸우지 않는다. 진보주의자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우리집에서 가장 진보적이다. 나는 각자도생이 공멸이라고 믿는다. 불행은 어떤 식으로든 전염되기 때문에 사회적 협력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타고난 지능과 자라난 환경이 소득 격차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회를 더 많이 재분배해야 한다고 여긴다. 여러모로 이모부와는 상극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이모부를 이기적인 강자라고 욕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이모부가 무엇을 짊어지고 살았는지 봤으니까.
이모부는 정말 열심히 산다. 여성, 장애인, 트렌스젠더, 외국인 노동자보다는 비교적 편하게 많은 것을 누렸을지 몰라도, 하루하루를 고통 없이 즐기는 것은 아니다. 약자를 전혀 책임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프고 경력이 단절된 이모와 일할 수 없는 둘째 아들을 여태 부양하고 있으니까. 그런 이모부를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이 공정한 일일까. 이모부처럼 불안 속에서 하루를 이겨내는 사람들을이기주의자로몰아가는 것이세상을 더 다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될까.
그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암에 걸렸다고 해서 내 목감기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