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난 카지노 게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많은 카지노 게임들이 그랬듯 나에게도 '각성'같은 게 일어났다.
막연한 두려움이 실체로 드러났을 때, 내 울분이 단지 예민함이 아님을, 나만의 고유한 경험이 아니었음을 피부로 느꼈다. 이런 마음으로 많은 카지노 게임들은 포스트잇을 붙였을 것이다.
작고 네모난 메모지에 불과해 언제든 쉽게 떼어질 수 있는 걸 알면서도, 마음을 겹쳐 붙이는 그 마음.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그 힘.
나무위키에서는 강남역 '묻지마' 살인으로, 페미위키에선 강남역 '카지노 게임표적' 살인으로 표기되는 현실에도,
살인사건에조차 쏟아지는 카지노 게임혐오 속에서, 추모를 위해 포스트잇이라도 붙이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연대'였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말을, 이제라도 사회가 들어줘야 한다고.
'오빠' 없이 혼자 걸어도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고.
3년 뒤인 2019년. 한국사회에서 카지노 게임대상범죄는 줄어들기는 커녕 매년 증가하고 있었다. 그럼 대체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매일매일 얼마나 많은 카지노 게임들이 카지노 게임이라는 이유로 고통받는지.
1. 카지노 게임혐오나 카지노 게임 대상 범죄 기사를 매일 검색했다. 적으면 열다섯 개, 많으면 서른 개 정도였다. (기사화된 굵직한 사건들만 찾은 것이니 실제 범죄는 이보다 훨씬 많이 일어났을 것이다.) 헤드라인과 링크를 수집해서 해체했다.
2. 동시에, 온라인에서 익명의 불특정 다수들이 카지노 게임대상 범죄의 피해자에게 건네는 위로와 연대의 목소리를 발견하면 이 역시 따로 수집해 얇은 종이에 프린트했다.
3. 1과 2의 결과물을 겹쳐서 자른 뒤, 2000마리의 종이학을 접었다.
어두운 현실, 이미 벌어진 범죄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연대와 위로의 마음을 그 위에 겹칠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다. 종이학이 소원을 이뤄준다고 하는, 다소 낭만적인 소망에 기대 보고도 싶었다.
나는 여전히 살아남아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을 기릴 '기념비'를 만들고자 했다.
대항할 수 없는 폭력에 맞서기에는 연약할지라도,
의미 없어 보이는 익명의 소리들일지라도,
깨지기 쉬운 일시적인 응원과 연대일지라도 약자에 의한 기념비를.
〈바 람 난 카지노 게임〉(Hope, I’m Person)
‘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에 담긴 일탈과, 여성을 사람으로 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중의적으로 담았다.
카지노 게임.
사람이기를 바라면서 사람으로 대하기를 바라는 카지노 게임.
바람, 난 카지노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