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에서 비롯된 불안의 일상적 사례들
지난 화에 이어 집착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불안의 사례들을다룹니다. 중간에 긴 삽입구가 있으니 미리 참고해주세요.
어쨌든 이로써 집착이란 태도와 불안 사이의 연관성은 상당 부분 해명되었을 것이다. 불안은 집착의 가장 직접적인 산물로서, 집착의 배후에서 그것을 역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해 낸다.
하지만 집착과 연관된 경험들을 검토하다 보면, 불안이 집착의 결과로 일어나는 현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집착을 하는 사람은 그집착 대상과 섞일 수 없는 의지나 욕망의 표현을 억누르기도한다. 현재 작용 중인 욕망의 주변부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병존 불가능한 인식 내용이 치고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같은 태도의 가장 극적인 형태는 아마도 종교적 경건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가끔씩 주도적 의식의 주변부로 흘러드는 불순한 생각들을 필요 이상으로 억누름으로써 신성 모독적 사고가 터져 나오도록 자초하곤 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분명 억압력에 가로막힌 본능적 의지가 그 힘에 굴복하다 못해 결국 반항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식으로부터 심하게 괴리되어 억압력을 이질적으로 대하게 된 의지의 측면이, 자신을 부정하는 그 힘을 밀쳐내며 자기 존재를 주장하다 보니, 화의 성질이 스며들어 마침내는 폭력적 성향마저 나타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대립 양상은인간관계 영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강압적인 교사의 명령에 굴복하던 학생이갑자기 돌변하여반항적으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물론 이처럼 괴리가 심하게 일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본능적 의지는 자신의 출신 성분을 잊지 않는다. 즉, 그 의지는 억압력에 순순히 동조하여 반대 방향으로 성질 변화를 일으킨 뒤, 집착의 반작용으로 일어난 불안을 향해 흘러들어 가 그 불안을 강화한다.
말하자면, 이 경우에는 집착이 억압이란 과정을 통해 다소 우회적인 방식으로 불안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최종적인 결과가 동일하다고 해서 이 과정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억압 과정 그 자체를 통해 표현에 미치는 집착의 영향력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즉, 집착에서 비롯된 불안은 불안 대상을 끌어들이는 내부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외부 인식의수용에 영향을 주지만, 집착에서 파생된 억압력은 그 집착 대상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측면들을 거부하면서 내적 태도의표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 전체 과정은 마치, 집착하는 당사자가 그 집착 대상을 보호하기 위해 안팎으로부터 쳐들어오는 저항 세력을 밀쳐내는 것처럼 일어나는데, 여기서 억압이란 태도가 담당하는 역할을 고려해 본다면 집착 상황에서 이 억압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집착에 수반되는 이 억압은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그것은 아마도 외부의 인정에 집착하는 상황에서 가장 쉽게 관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타인의 인정에 강하게 집착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는 분명 상대의 기대에 위배되거나, 위배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모든 행동 양식을 억압함으로써 스스로 불안을 자초할 것이다. 상대방의 평가에 얽매이게 되면 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측면만 표현해 내면서 인정을 받으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불안에 억압이 관여한다는 점을 인식 못할 것이고, 어쩌면 불안과 집착 사이의 연관성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상대에게 거절당하는 것 같은 상상 내용이 불안의 원인으로 전면에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만일 당사자가 그 상상 내용에 설득당해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라도 한다면, 그는 상대에 대한 집착을 강화함으로써 가장 직접적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억압을 도리어 심화하고 말 것이다.
이런 일은 한 개인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집단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 개인의 평가든 집단의 평가든 행동의 폭을 제약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격식 있는 자리 나 낯선 환경 같은 상황과 연계된 불안도집착과억압의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집단의 평가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이 상상 내용은 나름의 현실성마저 지니고 있어 뿌리치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같은 불안의 내용을 불안의 원인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불안의 대상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간에, 얼마든지 차후에 덧붙여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위험과 연관된 불안의 의미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반대 가능성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환경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리라 여겨지는 자신의 측면들을 사전에 반사적으로 억압한 데서 불안이 파생된 것이라면, 그와 같은 행동 양식 억압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정당한 것인지 스스로 자문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보니 위의 원리와 긴밀하게 연관된 듯 보이는 현상 하나가 머리에 떠오른다. 사람들이 보통 ‘강박적’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행동 양식이 바로 그것이다. 혹시 이런 행동 양식도 지금까지 설명한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해명해 낼 수 있는 것 아닐까? 너무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감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행동 양식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관찰하다 보면 분명 겹치는 측면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직접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보통 좋은 것을 지나치게 가리고 거기에 집착하는 경향성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무언가를 표현할 때도 좋은 측면만 표현해 내고 나쁜 측면은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 하나의 전체적인 의지에 판단의 틀을 들이밀어 좋은 것만 여과해 내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외부 인식을 수용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부정적이라고 판단한 인식 내용이 눈에 들어오면 그것을 단순히 못 본 체하거나 인식 영역 밖으로 밀쳐내버리곤 한다. 이와 같은 그들의 행동 양식은,욕망의 대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데서 비롯되는 두 가지 결과에 거의 그대로 들어맞는다.표현을 억누르는 측면은 집착에서 파생되는 억압에, 인식을 회피하는 측면은 집착과 연관된 불안의 작용에 각각 대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적인 집착의 경우와는 달리, 강박적 태도가 취해지는 상황에서는 거부당한 심리 요소들이 인식 영역으로 뚫고 들어오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을 가해 온다. 그것들은 마치 무시당한 것에 화가 나기라도 한 것처럼 당사자가 방심한 틈을 타 억압력을 뚫고 의식으로 침범해 들어오거나 불안의 대상들을 끈질기게 끌어들임으로써 주체를 당혹감에 빠뜨린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마도 거절당한 심리 요소들이 너무 많거나 강도가 너무 세서 압력을 견디지 못한 채 의식 영역으로 밀려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관심의 편향이 지나치다 보니 관심을 박탈당한 세력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 처한 당사자는 보통 본능적 의지의 이 같은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못한다. 그는 좋다고 판단한 것, 현실과 조화를 이룬다고 판단한 그것을 더욱 움켜쥠으로써 의식으로 스며드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단순히 고개를 돌리려 한다. 즉, 강박적 사고나 행위를 통해 좋은 것을 강화하고 거기 매달림으로써 나쁘다고 판단한 것을 의식에서 다시 밀어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수차례에 걸친 반복이 요구된다. 그렇게 반복함으로써 그 심리 요소와 반대되는 성질의 관심을 축적해야만 그것을 밀쳐내거나 억압하는 데 필요한 힘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같은 시도는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얼마 못 가 다시 무너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의식 영역으로 표출되어 해소되려는 본능적 의지를 짓눌러 기존의 긴장 상태를 영속화하는 조처일 뿐이기 때문이다.아마도 이 본능적 심리 요소들은 머지않아 불안과 함께 다시 터져 나오면서 그 무익한 노력을 재차 반복할 수밖에 없게 할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거부당한 요소들이 보내는 신호를 제대로 해석해 냈더라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교착 상태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것이 불안의 대상처럼 다뤄지는 이유를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모르는 것 또는 미지의 것이 불안의 대상으로 자리 잡는 이유는, 한마디로 당사자가 취하는 안전 조처 때문이다.
잘 모르는 대상과 관계를 맺는 당사자는 그 상황 속으로 어떤 태도를 삽입해 넣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부적절한 것으로 판명 날 우려가 있는 행동 양식들을 일단 억누르고 보는 것이 보통인데, 이 같은 안전 조처를 취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바로 무지이므로 당사자에게는 마치 무지 그 자체가 불안의 직접적 대상인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무지 자체에는 두려움을 일으킬 만한 요인이 아무것도 없다. 알지 못하는 대상과 마주한 당사자가 무지의 영향으로 사실상 억누를 필요가 없는 행동 양식까지 광범위하게 억압하면서 스스로 불안을 자초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지 자체가 아니라무지로 인해 보류된 자신의 행위 의지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억압이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것은 대개 안전해 보이는 행동 양식에 대한 집착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유발된다. 다시 말해, 알지 못하는 대상이나 상황과 마주한 당사자는 보통 어디서든 통용될 만하지만 그만큼 표현의 폭도 비좁은 특정 태도를 단단히 고수함으로써 그 밖의 다른 태도가 표출되는 것을 반사적으로 억압한다. 집착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억압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억압의 범위가 해당 대상에 대한 무지의 정도에 비례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잘 모르면 모를수록 안전해 보이는 태도에 강하게 집착하게 될 것이고, 억압되는 표현의 범위는 다시 이 집착의 강도에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경우에는 무지와 불안이 한 실체의 두 측면처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불안에 완전히 다른 의미, 즉대상을 향한 관심 부족을 나타내는 신호의 의미를 부여해야 마땅할 것이다. 정당한 관심을 기울였다면 대상을 더 잘 알았을 것이고, 대상을 더 잘 알았다면 불필요한 집착과 억압은 애초에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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