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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 Feb 17. 2025

취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연습기록 7

일상의 다이나믹이 생기는 순간들

악기를 배운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 좀 잘하는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오를 때가 온다. 처음에 안되던 음도 제법 잘 소리내고, 손가락 운지법도 이제는 안 헷갈린다. 조표가 한두개 붙은 악보바로 계이름을읽고어설프게나마 연주할 수 있다. 레슨 도중 선생님이 물어보는 질문에 자신 없는 목소리지만 그래도 맞는 대답을 할 수 있다. 진짜 내가 실력이 좋아졌을까 의심스러워서 예전에 연습했던 곡을 불어봤는데 혼자서도 멈추지 않고 완곡할 수 있다! 연습한 보람이 있구나 이제부터 더 좋아질 일만 남았을꺼야 라고 안도하는 순간 다음미션을 받는다. 악보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도 좋은데, 조금 더 다이나믹을 살려 음악적으로 표현해 볼까요?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사실 나는 아직도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부터는프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처럼악보를 해석해야 다. 그 동안은 코딩된 로봇마냥 주어진 계이름, 박자, 리듬 등을 출력했다면 이제는 딥러닝을 하는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 한글을 뗀 외국인에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보여주고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기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몇 년동안 악보에게 시키는 것만 연습했고, 가끔 그것 마저도 오류 날 때가 있는데! 똑같이 솔솔솔 세 음을 연달아 불어도 박자에 따라 첫 음에 악센트를 줄지, 이어지는 음악의 흐름을 고려해 점점 강하게 할지,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가 돋보이도록 셋 다 가볍게 불지를 내가 판단헤서 연주해야 하는 것이다.

구형 기기에 최신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면 버벅거리거나 기기가 꺼지는 것처럼 악보에 다이나믹 표현에 대한 메모가 늘어날수록 내 실력은 오히려 거꾸로 가기 시작한다. 여기를 약하게 불라고 했던가? 둥글게 굴리는 듯한 느낌으로 불라고 했는데 그게 뭐지? 생각이 많아지니 손가락이 틀리고, 숨이 약해지니 소리가 또 뒤집힌다. 결국 정확하지도 음악적이지도 않은 연주가 되버린다.

따로 셈여림 표시는 없지만 음이 점점 올라가고 있으니 크레센도라 생각하고 점점 크게 불어 보세요, 두박자를 끄는게 맞지만 멜로디가 바로 이어지니조금만 더 짧게 불어 보세요, 이 때는 악기를 살짝 안으로 말아보세요 등 혼자서는 절대 못찾을 힌트를 레슨을 통해찾게 된다. 이제는 어느정도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아직도 배워야할 게 많다는 겸손함으로 바뀐다.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걸 받아들였을 때의 기쁨도 생긴다.

도레미파솔라시도시라솔파미레도를 계속해서 불면 힘들기만 하고 음악 같이 들리지도 않는다. 비록 연주하기는 까다로울지라도 옥타브에 변화를 주고, 조표를 달고, 리듬을 바꿔야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생겨난다. 취미로 하는데도 꾸준히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하는 이유다. 아직도 배워야할게 많다는 사실이 부담스럽지 않고 설렌다. 하도 많이 반복해서 다음 주에 무슨 업무를 해야 할지, 다음 달에는 어떤 업무를 하고 있을지 뻔한 일상에서 다음 레슨에서는 어떤걸 배우게 될지, 다음 곡은 어떤 곡일지 예상할 수 없어 기대가 생긴다.오늘 못한걸 다음에는 잘해내고 싶다는 의욕 덕분에 유튜브에서 쇼츠 영상을 보는게 아니라 연주 영상을 찾아보게 만든다. 조금 더 음악적인 느낌을 이해하고자 책도 찾아본다. 악기가 만들어준 내 일상의 다이나믹이 또 이번주에 출근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준다. 내일은 조금 일찍 출근해서 빨리 퇴근해야지. 그래야 연습실에 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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