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지 생시인지 가물가물한 기억이었지만 그날 뒷산의 기억은 마흔넷이 지금도 또렷하다.
나만 그러한 걸까, 아니면 나와 같은 동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에 비해 나에게만 잦은 일이었을까.
이런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할 곳은 없었다.
부모님에게도 친언니, 친구들에게도 입 밖으로 내뱉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으니까.
국민학교 저학년 때의 기억이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십여분 정도의 거리였다.
등교시간을 놓쳐 이미 지각은 따놓은 당상이었기에 더 여유를 부리며 골목을 걸어갔다.
제시간에 집을 나섰더라면 집에서 학교까지 온통 아이들로 가득 차 시끌벅적할 길이 조용했다.
쌀집을 지나 구멍카지노 게임만 지나면 학교 절반은 온 셈이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여기는 지혜네 집, 여기는 형석이네 집.... 좀 잘 살았던 친구들의 집 대문이 보인다.
구멍카지노 게임를 채 가지 않았을 때 맞은편에 한 남자가 담벼락에 등을 기대 서 있는 걸 보았다.
무슨 생각이 있었겠는가. 고작 10살 남짓 되었던 어린 꼬맹이는 세월아 네월아 걷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눈썹을 씰룩이더니 시선을 자신의 아랫도리로 향했다.
나 또한 그 시선을 따랐다.
지퍼만 열린 채 불쑥 나와있는 그것.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지나가는 어른 한 명 보이지 않았고 텅 빈 골목엔 그 카지노 게임과 나 단 둘 뿐이었다.
앞만 보고 걸었다. 머지않아 구멍카지노 게임가 나타날 거다.
종종걸음으로 카지노 게임 앞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았다.
그 카지노 게임은 그 자리 그대로 서있었다.
다행히도 날 따라오지는 않았다.
그리곤 어떻게 학교에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후로 난 지각을 하지 않았다.
텅 빈 골목에 혼자 학교를 간다는 건 다시 그 카지노 게임을 마주칠까 너무 무서운 일이었기에.
그때 변태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뒷산에 날 데리고 간 그도 변태였을 터.
또렷이 기억에 박힌 그들을 카지노 게임이라 부르기로 했다.
다시는 카지노 게임들을 마주하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