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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만화가 Apr 01. 2025

카지노 게임 왕


카지노 게임

학교를 가야 하는 단 한 가지 이유를 찾자면, 역시 카지노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등교를 해서, 카지노 게임을 먹고, 하교를 했다면, 하루치 학교생활의 90%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 밖의 것들, 예컨대 성적과 교우관계 같은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일 뿐이다.


성적은 올릴 수 있고, 부서진 교우관계는 의외의 계기로 회복되곤 하지만, 지나간 카지노 게임은 다시 먹을 수 없다.


같은 반 아이들과 줄을 서서, 같은 음식을 받고, 정해진 시간 동안 먹고, 정해진 위치에 정리한다.


카지노 게임은 그 자체로 멋진 군무임과 동시에 인류학적 가치가 높은 의식이다.


이제 카지노 게임보다는 성인병 환자용 특수식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음에도 어렸을 때 먹었던 카지노 게임의 향과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카지노 게임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과학 교실 봉사를 나갔을 때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아이들이 아주 심사숙고하면서 카지노 게임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미트볼을 몇 개 받을 것인지, 그리고 김치를 어느 칸에 받을 것인지를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리고 수저를 움직이기 전에 자신이 완성한 식판을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천장 벽화를 바라보는 미켈란젤로처럼.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나름의 규칙을 정해두고, 은색 스테인리스 식판 위에 밥과 반찬을 받았다.


보통 카지노 게임은 밥과 국, 그리고 3개의 반찬으로 구성된다.


밥의 자리는 왼쪽 아래, 국의 자리는 오른쪽 아래이다.


3개의 반찬 자리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김치와 나물 같은 밑반찬들은 왼쪽과 오른쪽의 작은 반찬 칸, 그러니까 좌의정과 우의정 자리에 담는다.


그리고 식판의 옥좌라 할 수 있는 중간의 넓은 칸은 당연히 그날 반찬왕의 몫이다!


그렇다.


매일의 카지노 게임에는, 그날의 반찬왕이 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것이 카지노 게임 묘미다.


사실상 그날 카지노 게임의 성패는 반찬왕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반찬왕들은 다른 반찬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고 이국적이다. (토마토스파게티와 미국식 핫도그)


평범한비범함으로 포장된 어떤 왕들은 언제나 호응이 좋다. (불고기와 제육볶음)


어떤 왕은 전반적인 선호도는 떨어지지만, 소수의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는다. (오징어볶음과 낚지소면)


어떤 왕들은, 카지노 게임 시간을 기대했던 아이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코다리조림)


보통은 수요일에 가장 강한 반찬왕이 배치되지만, 그 것이 꼭 잔반의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반찬왕의 가장 큰 책무는 다른 밑반찬들과 함께 학생들의 쌀밥 섭취를 돕는 것이며, 이는 식판 위의 조화를 필수조건으로 한다.


가령, 토마토스파게티가 재첩 미역국과 함께 나온다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최강의 반찬왕은 무엇일까?


아마 모두들 마음속에 떠오르는 저마다의 답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민했고, 최근에야 비로소 나만의 답을 얻었다.


바로 군만두다.


군만두야말로 카지노 게임 반찬 계의 왕 중의 왕, 대표이사, 천하대장군, 그리고 황제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카지노 게임 스파게티는 나폴리 파스타의 하위 호환이고, 카지노 게임 카레는 오뚜기 카레의 평범한 변주일 뿐이지만, 카지노 게임 군만두는 그 자체로 다른 만두와는 차별되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별로 만두를 좋아하지 않지만, 카지노 게임용 군만두만 보면 이상하게 식욕이 돋는다.


지나치게 튀긴 나머지 바삭을 넘어 푸석해져 버린 만두피.


육즙이 다 빠져서 텁텁해져 버린 만두소.


모양은 제각각이고, 색도 썩 균일하지 않다.


그런데도 그 군만두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카지노 게임 군만두 같은 경우는 한 사람 앞에 2개, 혹은 3개 씩만 배정이 되기 때문에, 양껏 먹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감질나는 상황이, 군만두의 맛을 배는 더 돋웠으리라.


"겨우 군만두가?"


라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확고하다.


어찌나 확고한지 왕이나 회장, 대장 같은 최상급 명사들을 군만두로 바꾸어서 써도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광개토 군만두. 피겨 군만두 김연아. 제 47대 미국 군만두 트럼프.


중학교 때 한 번, 카지노 게임 메뉴로 나온 군만두가 통째로 없어진 적이 있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카지노 게임실이 따로 없어서, 점심시간이 되면 당번들이 배급 장소로 내려가서 그날 먹을 음식을 카트에 담아 교실로 가지고 와야 했다.


빈 손으로 교실로 돌아온 카지노 게임 당번이 말했다.


"군만두가 없어졌어."


우리는 모두 사색이 되었다.


군만두가 없는 식사, 그러니까 반찬왕이 사라진 카지노 게임은 무정부상태만큼이나 재앙이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나름의 짝을 지어 군만두를 찾아 교정을 헤맸다.

(중학교에서 카지노 게임 반찬이 없어지는 것만큼 큰 사건이 또 있을까?)


마침내 우리는 한 층 위에 있는 어느 3학년 교실에서, 우리 반 이름이 쓰인 반찬통을 끼고 앉아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처럼 군만두를 퍼먹고 있는 형님들을 발견했다.


즉시 반장과 주번(바로 나다)이 교무실로 파견되었다.


"군만두가 없어졌어요."


반장이 말했다.


"어디 갔는데?"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고 있던 담임 선생님이 물었다.


"3학년 형들이 가져갔어요."


내가 말했다.


"가서 달라고 해."


계속된 패배에 기분이 좋지 않아 진 선생님이 말했다.


그리고 손을 휘휘 저었다.


"가서 달라고 하래."


우리는 반으로 돌아가서 선생님의 진언을 전했다.


하지만 대체 누가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우리는 그날 군만두의 자리를 빈칸으로 남겨 둔 채 옥수수밥과 오징어국으로 배를 채워야만 했다.


나는 전날 먹은 옻닭 때문에 학교에서 기절하고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군만두가 없어진 그날이 더 힘들고 괴로웠다.


당시 우리 군만두를 가져갔던 3학년 형 중, 안씨 성을 가진 선배가 한 명 있었다.


당연히 우리는 그를 '안형'이라고 불렀다.


안형은 선도부 군만두, 그러니까 선도부장이었는데, 단번에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크고 거친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어이. 거기. 딱 서 봐라."


하굣길에 종종 우리는안형의 목소리를 듣곤 했다.


뒤를 돌아보면, 안형과 그 친구들이 마치 아기 가젤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우리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공부와 입시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가여웠는지, 안형은 우리를 근처 포장마차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와 친구가 어묵 국물 한 모금도 들이켜기도 전에, 혼자서 떡볶이 국물에 비빈 순대 한 접시와 꼬마 김밥 두세 줄을 호올스 먹듯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내일 또 보자'라는 말만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와중에 어여쁜 후배들의 뒤통수를 한 대씩 시원하게 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안형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빈 순대 접시와 은박지를 보면서 삶의 비정함과 무상함을 곱씹어야만 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는데, 그래야만 "그냥 근처에 떨어진 쓰레기랑 오뎅 꼬치만 줍고 가라."라는 포장마차 할머니의 인심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건 안형은 그렇게 종종 우리들을 긴장시켜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아주 빈틈없는 중학생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안형이 전교 군만두에 출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상하지만, 우리는 후보자 연설을 위해 학교 TV 화면에 나온 안형이 반가웠다.


어쩐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유명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우리는 모두 안형에게 투표를 했다.


그렇게 안형은 무난하게 전교 군만두에 당선되었다.


나는 이 사건이 참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로, 많은 선거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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