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만화가 Mar 25. 2025

두 번의 클라이맥스와 80년 간의 카지노 게임 게임

카지노 게임

안드로메다 솥뚜껑 별에 사는 외계인 소년 K군은 마지막까지 미루어 두었던 여름방학 관찰 일기 주제로 '인간'을 선정한다.


솥뚜껑별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K군의 아버지는 이마에 붙은 17개의 눈으로 아들에게 탐탁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아주 속 보이는 주제 선택이로구나 아들아."


K군은 네 번째 손목에 차고 있는 솥뚜껑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짜증스럽게 대꾸한다.


"별수 없잖아요? 개학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고요."


평균적인 인간의 수명은 솥뚜껑 별에서 방영되는 어린이용 시트콤 한 회만큼의 시간도 되지 못한다.


솥뚜껑별의 길고도 장엄한 생태에 비교하면, 지구에 사는 인간이라는 종의 일생은 지나치게 짧고 단조롭다.


"내 생각에는, 좀 더 흥미로운 주제가 좋을 것 같은데.... 예를 들어, 해바라기나 백색왜성같은 것들 말이다."


아버지는 대안들을 제안하지만, K군은 귀찮다는 손짓 한 번으로 아버지를 방에서 쫓아낸다.


그리고 솥뚜껑 소파에 앉아 솥뚜껑 TV를 켜고는, 근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온 '인간의 세계' 다큐멘터리를 재생시킨다. (솥뚜껑별은 행성 간 이동과 신체 재생 기술을 발명했지만, 안타깝게도 영상 재생만큼은 필름식 VHS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내용은 예상만큼이나 지루하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일단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선택한 다음,자신의 선택을 변호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


다큐멘터리가 끝났을 때는 이미 K군의 17개의 눈 중 16개가 감겨 있다.


마지막 하나의 눈이 감기기 직전, K군은 가까스로 노트에 관찰 일기를 한 줄 남기는 데 성공한다.


그의 공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대부분 인간의 일생은 9개월을 사이에 둔 두 번의 클라이맥스, 그리고 그 이후 80년 간의 카지노 게임 게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은, 남자와 여자에게서 발사된 반쪽짜리 세포 두 개가 결합하여 탄생의 씨앗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다.


사람의 인생에서 두 번째로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은, 탄생의 씨앗이 9달간의 수중 전지훈련을 거친 후비로소 첫 폐호흡을 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그 뒤는 길고 긴 카지노 게임 게임이며, 지난한 에필로그일 뿐이다.


인생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두 번의 클라이맥스는 위대한 성공 신화의 상징이다.


5억 개의 정자가 펼치는 죽음의 레이스. 그승리자만이 세포 분열의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품을 떠나 질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는, 현대 의학이 아무리 견고해졌더라도, 위험하고 감동적인업적이다.


따라서 그 이후에 세상에 나온 탄생의 씨앗들이 지구에서 겪는 성공과 실패는 실상 그들이 태어남으로써 이루었던 성취에 비하면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이다.


첫걸음마도, 물리법칙의 발명도, 남자 100m 9초의 벽도, 한 조각에 100달러가 넘는 특급 호텔의 크레이프 치즈 케이크도, 저궤도 소형 위성을 이용한 차세대 이동 통신도, 모두 카지노 게임 스테이지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하지만 2025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음과 같은 말들과 맞닥뜨린다.


"인생은 리허설이 없는 본 카지노 게임이다. 최선을 다하라! 노력하라! 한 번 뿐인 인생이니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열심히 휴식하고, 더 열심히 탐구하라!


좋은 말이지만, 나는 이 말에 한 가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SEGA에서 발매하는카지노 게임 중에 '슈퍼 소닉'이라는 것이 있다.


파란색 고슴도치가 되어서 빠른 속도로 스테이지를 누비며 코인을 먹고 적을 물리치는 카지노 게임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종종 별 모양 지팡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소닉을 움직여 지팡이를 건드리면 숨겨진 카지노 게임 스테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


카지노 게임 스테이지에는 코인이 무한하게 널려 있으며, 닿으면 목숨을 잃는 몬스터도 없다.


대신 제한 시간이 주어진다.


카지노 게임 스테이지에서는 소닉을 움직여 코인을 잔뜩 먹을 수 있다.


물론 말 그대로 카지노 게임이기 때문에 굳이 움직일 필요는 없다.


코인을 얼마나 먹었건 간에, 제한 시간이 다 되면 소닉은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퇴장당한다.


카지노 게임 스테이지에서 획득한 코인은 본 게임에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사실 코인은 그다지 '슈퍼 소닉'을 플레이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카지노 게임 스테이지는 정말 카지노 게임 스테이지일 뿐인 것이다.


그 시간 동안 과자를먹어도 되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된다.


하지만 나는 이제까지 슈퍼 소닉 게임을 하면서 카지노 게임 스테이지를 대충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다들 마지막 1초까지 코인을 얻기 위해 열정적으로 조이스틱을 돌렸다.


카지노 게임 스테이지라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옆 사람의 갑상선암보다 내 여름감기가 더 아프고, 사촌이 나보다 100원만 더 이득을 봐도 배가 알싸하게 아파오는 것이 인간이다.


락 콘서트장에서도 내 욕하는 소리는 귀신같이 들린다.


새로 산 노트북의 디스플레이 픽셀이 하나만 나가 있어도 속이 뒤집어진다.


그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어떻게 얻은 80년의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인데,허투루 쓸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로 후회한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내 노력 부족 때문이 아니며, 오히려 지금의 나의 상상력 부족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 내가 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러다 최근에 2주 동안 다른 업무 없이 어학 공부에 매진할 기회가 생겼는데, 어이쿠,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 했던 것의 반의반도 못 했다.


과거의 나는 언제나 한심하고 못마땅하다.


하지만 분명 그때의 나는 주어진 전장 속에서 포탄을 피하고 적을 향해 깃발을 치켜들기위해 갖은 힘을 다했으리라.


따라서 그 시절의 나를 의식의 법정에 세워, 노력을 다하지 못한 죄를 묻는 것은 비겁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최선으로 살아간다.


누군가가 한심하고 못마땅하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단지 사람마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주변 사람들에게조금 더 관대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발버둥 치며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더 큰 최선과 더 큰 노력을 요구하는 말에는 침묵해야 하며, 오로지 어디에 최선을 다할 것인지에 관해서만 이야기해야 한다.


80년 간의 카지노 게임 게임을 어디에 초점을 두고 발버둥 칠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그리고 예술 작품들은 카지노 게임 게임에 대한 위트 넘치는가이드북이다.


내가 좋아하는 독일계 미국 작가는 소설의 입을 빌어, 카지노 게임 게임의 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안녕, 아가들아.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긴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춥단다.


그리고 둥글고 축축하고 붐비는 곳이지.


여기선 고작해야 백 년 정도밖에 못 산단다.


아가들아,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규칙을 말해줄까?


제기랄.


착하게 살아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