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육아를 다시 선택할 건가요?
직장인들의 하루 일과 중 점심시간만큼 짜릿하고 신나는 시간이 또 있을까. 순간값으로는 분명 더한 기쁨과 환희의 시간들이 있겠지만, 하루하루가 모여 산처럼 쌓였을 때, 즐거움의 평균값으로 점심시간을 능가하는 시간은 아마 없으리라고 본다. 점심시간이 어디 밥시간일 뿐이겠나. 신성한 근로기준법이 노동자에게 허용한 휴게시간으로, (법적으로는)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오롯한 자유의 시간이다. 자유의 맛은 늘 짜릿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와 동료들은 자유를 반납한 채 막내 K가 사 온 김밥더미를 두고 사무실 회의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대충 먹고, 각자 자리로 카지노 쿠폰가 업무에 매진해야 하는 날이다. 몇 달간 끌어온 프로젝트의 완성이 코앞이었다. 고지를 눈앞에 둔 우리는 아주 호전적 눈빛으로 둘러앉아 우적우적 김밥을 씹었다. 그러던 중에 Y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Y는 잠시 전화를 받고 오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먹던 김밥을 다시 포일로 돌돌 말며 말했다.
"아이가 콧물이 난대요. 잠깐 내려가서 살펴보고 금방 카지노 쿠폰올게요."
Y는 직장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는 워킹대디다. 후다닥 사라지는 Y의 뒷모습을 보며, 이구동성으로 중얼거렸다. 열은 안 나야 할 텐데... 아이가 열이 나면 어린이집에서는 하원을 권할 테고, 당장은 퇴근할 수 없는 Y로서는 누군가에게 긴급 SOS 신호를 보내야 할 테니 말이다. 우리 중 유일한 미혼인 K가 물었다.
"선배님들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또 결혼하고, 아기도 낳으실 거예요?"
이어지는 정적. 뒤따르는 키득거림.
이른바 결혼적령기인 K는 요즘 결혼과 육아에 대해 관심이 지대하다. K의 부모님도, 여자친구의 부모님도 둘 다 나이가 찼으니 2세 생각도 해야 하지 않냐며 슬슬 날을 잡자고 은근히 독촉하시는 모양이다. 그런데 부모님에게서 독립하여 꽤 오랜 시간 만족스러운 1인 가구 생활을 이어온 K로서는 '결혼과 육아'라는 과제가 과연 식용버섯인지 독버섯인지 영 고민이 많은 듯하다.
"절대 안 해요."
"내가 미쳤어요? 모르니까 했지."
"어휴, 결혼은 해도 애는 안 낳죠."
"나는 동거만 할래요. 결혼도 안 해요."
"맞네, 대리님이 제일 현명하네요. 동거만 하고, 결혼도 안 해야겠어요. 푸하하!"
우리는 서로 손사래를 치면서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런 우리를 향해 K는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좌절의 몸짓을 보이며 소리쳤다.
"아, 뭐야! 그럼 저 결혼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한바탕 웃음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웃음 끝에 누군가 다시 얘기했다.
"근데 또 결혼하고 아기 낳아서 키우면서 느끼는 또 다른 행복이 있어요."
"맞아, 아이가 있고 없고는 서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 상호비교가 어렵죠."
"정답이 없다는 말이 달리 있겠어요."
식사를 마친 우리는 김밥 포장지와 나무젓가락을 비닐봉지에 모아 입구를 꽉꽉 묶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누군가는 물티슈를 가져와 테이블을 닦았고, 누군가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리고 모두 후다닥 각자의 자리로 카지노 쿠폰가 다시 업무에 몰입했다.
뭐, 비슷한 것 아닐까. 나도 Y도 K도, 그리고 다른 동료들도 이놈의 회사 로또만 맞아봐라, 입에 달고 살면서도 때로 이렇게 점심시간도 봄볕도 마다하고 일에 매달린다. 다들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당연히 가끔은 직장생활이고 일이고 그냥 진짜 똥 같다. 그럴 때면 과거로 돌아가 이 직업, 이 회사를 택하려는 내 머리에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지만, 그 순간은 지나가게 되어 있고 또다시 소소한 즐거움과 보람찬 순간들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결혼과 육아도 그런 것 같다. 내 모든 자유를 앗아간 것 마냥 꽤 자주 무거운 책임감에 몸서리치지만, 가족과 아이가 주는 안온함과 넘치는 행복도 매일 반드시 찾아오고야 만다. 가진 것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살라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교훈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틀림없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Y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이 감기는 심하지 않고, 아내가 반차를 쓰고 아이를 데려가기로 했다며 큰 숨을 몰아쉬었다. 괜한 미안함에 머리를 긁적이는 그를 향해, 다층적인 동지애로써, 우리는 그저 씩 웃어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