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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Jan 06. 2022

카지노 게임 김치의 추억

그리고 고려인의 슬픈 역사에 대하여


나는 상당한 잡식가다. 혹자는 미식가란 단어를 선호하지만 나에게는 어쩐지 낯간지럽고 맞지 않는 양복 같은 느낌이 드는 단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축복처럼 낯선 음식을 사랑하는 나는 타고난 카지노 게임가이거나 혹은 잡식가임에 분명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지의 영역인 상상 속의 러시아 음식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나올 법한 농노들의 거친 까샤(Ка́ша, 귀리죽)처럼, 어쩐지 정제되지 않은 야성적인 느낌을 품고 있었다.


생전 처음 놀이동산을 간 어린아이처럼, 나는 한 대로변의 커다란 슈퍼마켓의 구경거리에 압도당해 있었다. 다채로운 새로운 먹을거리의 향연 속에 눈에 띄는 순서대로 새로운 음식을 카트에 담기 시작했다.


묵고 있던 호스텔까지는 상당한 거리를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한 손에 들 수 있는 양만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음은 가볍게, 두 손은 무겁게”라는 말은 카지노 게임자에게 반대로 작용한다.


해바라기 씨를 곱게 갈아 물, 설탕과 뭉쳐 만든 벽돌 모양새의 할바(Халва)는 페르시아에서 유래했지만 러시아에서 흔한 과자이다. 먼 옛날, 교토에서 다도 체험 중 먼지같이 부스러지는 차과자를 삼켰다가 목이 막혀 연거푸 차를 마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맛이다.


달콤한 할바를 곁들인 러시아식 티타임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립톤(Lipton) 사의 자그마한 화이트 티 박스도 한 개 집어 들었다. 키릴 문자로 적힌 포장은, 소담스러운 하얀 꽃잎이 그려진 흔한 다국적 회사의 차도 매혹적으로 보이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슈퍼마켓 가장 구석진 곳엔 손바닥만 한 네모난 투명 박스에 담긴 즉석식품 코너가 있었다. 흡사 동네 반찬 가게를 보는 듯한 익숙함에 발길을 멈추고 박스를 고르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주황색 카지노 게임을 가늘게 채 썰어 향신료와 기름에 버무린 카지노 게임 김치다. 한국식 카지노 게임(морковь по-корейски)으로 불리곤 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희생당한 고려인들의 슬픔이 담긴 음식이다.


일본 강제 점령 하, 가난한 조선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어 구소련 극동 지방에 정착한다. 당시 일본과 대립 중이던 구소련은 그들이 일본인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스파이 활동을 의심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다.


6,400km에 달하는 열차 이동에서만 수백 명이 죽었으며, 척박한 환경 속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수만 명이 죽어갔다. 그렇게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김치의 대체품으로 만든 것이 카지노 게임 김치다.


숙소로 돌아와 소박한 저녁상을 차린다.


흑빵 위에 시큼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카지노 게임 김치를 올려 한 입 베어 물며 한국을 떠올렸다.


그리고 얼어붙은 낯선 땅에서 단 한 줌의 고국이라도 찾아 헤맸을 고려인의 향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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