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여자의 특권에 대해서
그녀의 고성이 병동을 채운다. 출처: 픽사베이
**제가 의사로서 만났던 환자들의 이야기가 있는 소중한 글입니다. 환자보호를 위해 일부 정보는 각색하였습니다.
아악, 악, 아아악
붉은 노을빛이 그대로 드리우는 진통실.
아무도 없는 가족대기실.
의사 두 명과 간호사 두 명은 제 할 일이 바쁘다.
손 잡아 주는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비명소리.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처음 분만을 본 그날이다.
결혼하면 임신은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나와 남편 모두 건강하니, 당연히 건강한 아이를 낳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쉬운 일인 줄 알았다. 출처: 픽사베이
학생 시절, 산부인과 실습을 4주나 했지만 분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분만 자체도 적은 데다가 대학병원의 특성상 학생 참관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산부인과 의사가 될 것도 아니었으니 그리 서운하지도 않았다.
나는 난임병원을 다녔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시험관 시술을 준비해야지, 했었는데 운 좋게도 자연임신이 되었다. 인생이 뜻대로 되면 재미가 없지. 임신도 어려웠는데, 다발성 기형아를 품고 있는 탓에 서울의 큰 병원 여러 곳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기형아를 낳아야 한다는 예정된 슬픔. 포기할 수도 없는 아이의 미래,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형아 엄마로서의 삶을 감내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걱정이 아이를 만난다는 설렘보다 컸다. 하지만 아이를 직접 낳고 보니 참으로 예쁘고 귀했다. 나는 많은 축하를 받았다. 축복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아이는 내게 기쁨이었다.
내 인생, 계획에 없었던 일은 기형아를 낳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라니. 나는 산부인과 의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길을 걷기로 결심을 하고 나니 이전에 분만 실습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출산은 산부인과 꽃이니까. 게다가 글로만 배운 분만을 내가 직접 치르고 엄마가 되고 나니 분만이라는 것이 단순히 아기와 태반을 포함하는 수태산물을 산모의 복중에서 바깥으로 배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생명이 시작되는 곳. 피와 물이 흘러넘치는 곳. 여자, 그 삶의 시간이 기록되는 곳. 시작과 끝,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 산부인과. 출처: 언스플래쉬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 차의 시작이었던 3월 2일. 우리 의국 레지던트는 4년 차 선생님 한 명과 나를 포함한 1년 차 세 명, 그렇게 네 명이 전부였다.
“오늘 분만 있을 것 같으니까 퇴근이 좀 늦어져도 보고 가세요. ”
와, 첫날부터 분만을 다 보고. 꽤 운이 좋네.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분만을 보고 가기로 했다. 내가 애를 낳아만 봤지, 남이 애 낳는 걸 본 적은 없는데. 근데 산모가 누구지? 익숙카지노 쿠폰 않은 전산을 열어 환자 정보를 확인했다.
20세. 특이 병력 없는 39주 초산모. 진통 있어 입원함. 미혼모 시설 거주 중.
“선생님, 이제 곧 분만이에요. 분만실로 오세요. ”
당직실 문을 열고 분만실로 향카지노 쿠폰. 진통실에 홀로 누워있는 그녀는 연신 몸을 비틀며 신음하고 있었다.
남편은 내 손을 잡아주었다. 통증은 잔잔한 너울처럼 시작되다가 몰아치는 파도가 되어 나를 휘감아 내던졌다. 진통의 파도가 나를 덮을 때마다 남편의 손을 힘껏 부여잡고 내 고통을 그대로 전달해주려고 카지노 쿠폰. 남편은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무섭고 두렵다가도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남편은 내 곁에 있어주었다.
그녀는 혼자였다. 키가 작고 못생긴 그녀는, 있는 힘을 모두 쥐어짜는 것 같았다. 여드름이 가득한 까만 피부가 빨개지면서 더 못나보였다. 나는 분만 중인 산모가 저렇게 못생겼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조금 더 힘내요. 얼마 안 남았어요.”
산부인과 의사 1일 차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손을 잡아주고 힘내라는 말을 전해주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몰아쉬는 그 뜨거운 숨이 내 손에 닿자 그때의 고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문득 그녀의 보호자가 궁금했다. 아이 아빠는 누구일까. 퇴원하면 어디로 가는 걸까. 누가 돌봐주게 될까. 그리고 아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녀의 분만은 허탈할 정도로 금방 끝났다. 진통의 절정에서 그녀가 내질렀던 절규 섞인 비명이 끝나고 나니 피비린내와 갓 태어난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분만실을 채웠다. 간호사는 아기를 신생아실로 이동시켜 주었고, 나와 4년 차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후처치를 카지노 쿠폰.
진통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내 남편, 아침 첫차로 서울에 올라온 우리 엄마, 진행 상황을 쉽게 물어보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하셨던 시부모님. 나의 딸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낸 으앙, 그 소리에 그렇게 살갑지 않았던 우리 가족도 그 순간만큼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행복해카지노 쿠폰.
회복실로 이동한 그녀는 여전히 혼자였다.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프리라운딩 때 만난 그녀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몸은 좀 어때요? ”
“선생님, 이거 봐요. 어제 선물 받았어요. 너무 예쁘죠. ”
그녀는 흰색 바탕에 노란 병아리가 수없이 그려져 있는 작은 옷을 손에 쥐고는 밝게 웃었다.
“누가 왔었어요? 정말 예쁜 옷이네요. ”
“친한 언니요. 어제 와서 이거 주고 갔는데, 아파서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풀어봤어요. 너무 예쁘죠. ”
“그러게요. 예쁘네요. 아가는 보고 왔어요? ”
“아, 아직이요. “
“아가랑 같이 퇴원하죠? ”
“네. 근데 아가는 입양 보낼 거예요. ”
“아, 그래요. 자, 누워봐요. ”
나는 배를 눌러 자궁의 위치와 패드를 확인하고 병실을 나왔다.
그녀는 왜 아이를 낳았을까.
임신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을까.
아이를 낳고 결혼하려고 했던 게 잘 안된 건 아닐까.
아니면 혼자라도 아이를 키울 결심이 있었던 걸까.
임신을 일찍 알았지만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던 걸까.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이런 일을 또 겪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혼자 진통과 분만을 겪어내고는, 다음 날 입양보낼 아가의 옷을 손에 쥐고 웃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임신과 출산이 누구의 선택이었는지. 출처: 픽사베이
얼마 전, 임신 5주 차에 임신중절수술을 받은 23세 환자가 질염 증상으로 내원했다가 이런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제가 얼마 전에 임신중절수술을 했거든요. 이런 수술하는 사람 많아요? ”
“네. 아무래도 이제는 임신 초기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으니까 적지는 않죠. “
“선생님. “
“네. “
“근데요, 카지노 쿠폰는 사람도 많아요? ”
쉬이 대답이 나오지 않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지나간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을 맞대는 것, 서로의 존재를, 뜨거운 마음을 몸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임신이라는 흔적이 남을까 무섭고 두려웠다. 그리고 연달아 내 친구, 내 동생, 내 딸의 모습도 그녀의 붉어진 코끝에 보이는 듯했다. 그 어떤 여자가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동안 임신중절수술 후에 만났던 환자들은 이런 질문들을 했었다.
언제부터 관계할 수 있어요?
언제 생리해요?
수술한 거 나중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카지노 쿠폰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다만, 이미 수술은 받은 거고, 수술을 받을 때에는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던 거잖아요.
지금 아기 낳아서 키울 수 없는 상황이니까.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을 지속해서 후회를 할 건지, 수술을 받고 후회를 할 건지는 모두 가지 않은 길이니 본인들도 알 수가 없겠죠.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돈 말고도 필요한 것도, 신경 써야 하는 것들도 많더라구요. 막연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아이도 세상에 태어났는데 행복하게 살아야 카지노 쿠폰 않겠어요?
어쨌든 지금은 몸을 무리카지노 쿠폰 말고, 조리를 잘해야 하는 시기잖아요. 일단 건강에 집중하는 게 먼저예요.
앞으로는 피임을 좀 더 신경 써서 하는 게 중요하구요. 경구피임약 매일 챙겨 먹기 힘들면 미레나도 좋은 옵션이에요.
한번 수술받았다고 내 몸 어디에 흔적이 크게 남는 건 아니지만 여러 번 받게 되면 자궁 내막에 유착이라고 하는 수술자국, 상처 같은 게 생길 수 있어요. 물론 그게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근데 문제는, 그러면 내가 진짜 나중에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싶을 때 그게 뜻대로 안 될 수 있거든요. 착상이 잘 안 되니까, 임신이 어려워질 수 있어요. 그럼 이전에 수술받았던 것들을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리고 중절수술하다가 생길 수 있는 출혈이나 감염, 아니면 자궁이 뚫리거나 하는 이런 사고들도 흔카지노 쿠폰는 않지만 일단 생기면 그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잖아요. 어떤 수술이든 안 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겠죠.
수술하고 최소한달은 관계카지노 쿠폰 말고, 이후에는 꼭 피임하고요. 콘돔은 성병 예방 위해서 하는 거니까 피임약 먹거나 미레나 넣어도 꼭 콘돔 쓰세요. 가다실도 안 맞았으면 꼭 맞고. 뭔가 이상 있는 거 같으면 바로 병원 오고. 내 몸은 내가 지켜야지, 남자친구가 대신 수술받아줄 것도 아니고 약 먹어줄 것도 아니니까. 나는 내가 지키는 거예요. 뭐 또 궁금한 거 있어요? “
“아니에요. 그게 궁금했어요. 카지노 쿠폰는 사람 있는지. ”
모든 선택에는 감정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후회’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를 때때로 옭아맬 때가 있다. 사랑과 연애에서는 누구보다 쿨하고 싶지만, 임신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가장 슬픈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감당하지 못해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내 삶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면, 그 순간의 나는 최선을 다했음을 인정해 주자. 임신은 여자의 특권 아닌가. 적어도 임신에 대해서, 스스로 죄책감을 주지는 않았으면 한다.
**위기임산부: 「모자보건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임신 중 여성 및 분만 후 6개월 미만인 여성으로서 경제적ㆍ심리적ㆍ신체적 사유 등으로 인하여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을 말한다.
출처: 아동권리보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