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밖의 어느 모녀 이야기
오전 이른 시간 김할머니가 다녀가고 진료시간이 끝날 때쯤 온 이할머니는 혼자였다. 지난번 내원력을 확인해 보니, 지난 겨울 질분비물로 내원하여 다른 원장님의 진료를 봤었는데, 그때 자궁경부의 이상소견이 있어서 조직검사 후 상급병원 진료가 의뢰가 된 분이었다.
구부정한 허리, 밖으로 휘어진 가느다란 다리, 우리 병원은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어찌 올라오셨을까. 손톱마저도 쭈글쭈글한 손, 평생을 밖에서 일만 하시는 듯 까만 피부와 흐릿해진 눈동자. 지난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큰 병원 가서 원추절제술, 자궁경부 잘라내는 수술받으셨냐 물으니 잘 모르신단다. 언제 수술을 받았냐, 어디로 갔었냐, 이후에 병원 또 갔었냐, 그간에 괜찮으셨냐, 내 질문은 끝도 없는데 이할머니의 대답은 오직 하나다. 몰라유.
“누구랑 가셨는데요? ”
“그땐 딸이랑 갔지. ”
“그럼 딸이랑 또 결과 들으러 가셨어야지. 힘들게 그거 하고 왜 결과를 안 들으셨어요. ”
“어이구, 그게 뭐라고, 힘들게 일하면서 서울 사는 애를 내가 왜 또 불러. ”
일단 밑부터 보자고 말씀드렸더니 아이구, 소리와 함께 천천히 일어나신다. 정말 천천히. 내가 후, 불면 쓰러지실 것만 같다. 천천히 하셔도 괜찮으니 제발 넘어지지만 마세요.
밑을 보니 수술도 안 하신 것 같다. 아마도 조직검사만 조금 하신 듯하다. 이건 암이다. 이를 어쩌나. 할머니는 분명히 노란 분비물이 속옷에 묻는다고 하셨는데, 난 아직 아무것도 안 했고 자궁경부를 노려만 봤는데 피가 난다.
컴프레션(compression, 압박)! 언젠가 본 의학드라마에서 적어도 한 번씩은 들었던 대사. 우리는 어딘가 피가 나면 본능적으로 꾸욱 누른다. 혈관을 눌러 피가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의료현장에서도 어디든 피가 날 땐 일단 누르고 본다. 가장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니까.
나는 일단 이할머니의 자궁경부에 거즈를 질 안 가득 넣어 꾹 눌러두었다. 피야, 제발 그만 나라. 그리고 이할머니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큰 병원 가시라고. 꼭 가셔야 한다고. 계속 못 가신단다. 혼자서는 절대로 안되신단다. 택시 타고 가시고 따님에게 그리 오라고 해서 같이 설명 들으라고 하니 택시 탈 돈도 아깝고 힘들게 일하는 딸은 내 걱정 안 하고 살아야 한다며 연거푸 괜찮다는 말만 하신다. 괜찮아, 괜찮아. 그러다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하냐,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협박. 질 안에 넣어둔 거즈라도 제때 빼야 하는데. 저게 저 안에서 썩으면 어쩌나.
이할머니는 여전히 천천히, 느리게 진료실 문 밖으로 나갔다. 잘 듣지도 못하셔서 밖에서 간호사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계속 아니라고만 하시면 저희가 따님한테 전화드릴 수밖에 없어요. 지금 병원 가셔야 한다고요. 택시 불러드려요? ”
나는 괜스레 이할머니가 미워졌다. 왜 딸을 불효녀로 만들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이할머니네 집에,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사정의 드라마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할머니의 뒷모습에서 떠오르는 드라마는 이런 거였다.
서울에 살며 일하고 애들 키우는 딸이 안타깝기만 한 늙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 차마 큰 병원 가야 한다는 얘기도 미안해서 못했는데 동네 산부인과에서 딸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바람에 딸이 알아버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아프면 말을 했어야지. 딸은 급하게 근처 대학병원에 예약을 해주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오랜만에 딸을 봤다. 아직도 아기 같은 내 딸인데, 눈가에 주름이 보인다. 가만 보니 드문드문 흰머리도 보인다. 언제쯤 맘 편하게, 몸 편하게 살려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하고 저릿할 때가 있다.
대학병원은 참 정신없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그냥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프지도 않은데 참 귀찮고 번거롭게 되었다. 그나저나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왜 이리 모퉁이가 많은지, 혼자 왔으면 길 헤맬 뻔했겠다고 생각했다. 의사가 뭐라 말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빨리 우리 딸 보내줘야 하는데. 오늘 나 때문에 회사도 못 가고, 직장에서 눈치 주는 건 아닌가 모르겄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조직검사 결과 나오려면 일주일은 걸린대. 다음 주에 나랑 같이 와. 알았지? ”
“뭘, 너랑 같이 와. 나 혼자 와도 돼. 잘 모르면 여기 1층에 물어보면 되지. ”
결과 확인을 하러 가야 하는 전 날, 딸에게 전화가 왔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내일 병원 가야 하잖아. 온라인 카지노 게임 혼자 갈 수 있겠어? ”
“어휴, 야. 당연하지. 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아직 그 정도는 다녀. 잘 모르면 택시 타고 갔다가 올게. 걱정 말고, 넌 너 일이나 잘해. 밥은 먹었냐? ”
“그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미안해. 내가 또 회사를 하루 빠지기가 어려워. 온라인 카지노 게임. 미안해. 내일 꼭 다녀와서 말해줘. 알았지? ”
“걱정마. 넌 밥이나 잘 챙겨먹고. ”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차 많고 사람 많은 곳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은데 별 일 아니겄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병원 갔다 왔어? ”
“응. 별거 아니래. 그냥 지금처럼 지내면 된대. ”
“진짜야? ”
“그럼. 내가 뭣하러 그짓말하누. 걱정 말아라. 들어가라. 밥은 먹었냐? 끊는다. ”
지금, 이 순간이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건강을 챙겨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왜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이마저도 뺏는 걸까.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생각 나서였을까.
우리 온라인 카지노 게임. 평생 두 딸 곱게 키우느라 본인 옷 한 벌 맘 놓고 사입은 적 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그 시대 대부분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이 그랬듯이 절약과 알뜰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내가 공부를 오래 한 데다가, 학생 때 결혼을 하는 바람에 내가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에는 나도 내 살림 챙기느라 부모님께 용돈 한번 넉넉하게 드리지를 못했다. 그래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싫은 내색 하신 적 없고 뭘 바라신 적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작은 간식거리라도 사가면 다시는 사 오지 말라시며 집에 가져가라고 다시 챙겨주시곤 하셨다. 내가 출산 후에 전공의 생활을 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함께 살 때에도 그랬다. 내가 같이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 하면 이 시간에 잠을 더 자라, 누워라도 있어라 하며 거절하셨고 미용실 가서 같이 머리 단장 하자고 해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친구가 하는 저 먼 동네 미용실에서 3만 원이면 할 수 있다고 싫어하셨다.
언젠가 한 번은, 내가 밤샘 당직을 하고 다음 날 오전에 퇴근하는 날이었다. 오전에 퇴근하면 옷 한 벌 사러 백화점에 가자고 했더니, 역시나 싫다고 하셨다. 싫다는 표현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내가 두어 번 더 말하자 짜증을 내셨다. 싫다는데 왜 그래. 그 시간에 와서 잠이나 자.
그날 난 혼자 백화점에 가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이 좋아할 만한 브랜드에서 몇 백만 원짜리 재킷을 샀다. 직원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체형과 취향을 말하고, 내가 입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 보며 신중하게, 고르고 골랐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좋아하길 바라면서. 내가 이렇게 힘들게 밤새워가며, 그야말로 피땀흘려 번 돈으로 산 옷을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좋아만 해 주면 난 그걸로 충분했다.
집에 와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옷꾸러미를 내미는 순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역시나 왜 이런 걸 사 왔냐며 타박을 했고, 나도 빈정 상했지만 그래도 한번 입어나 보자며 입혀드렸다. 아이구. 이걸 어쩌나. 너무나도 안 어울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마음에 안 들지? 옷은 예쁜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랑 잘 안 어울리는 거 같아. ”
“그러게. 옷은 이쁜데. 나랑은 좀 안 어울리지? ”
“어쩔 수 없지. 지금 가서 바꿔오자. 나 오늘 아니면 또 시간 내기 어렵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혼자서 백화점 가기가 어렵잖아. 내 차로 지금 편하게 후딱 갔다 오자. ”
“뭘 바꿔. 그냥 입으면 되지. ”
그 순간 화가 너무 많이 났다. 내가 이 재킷을 사려면 밤을 몇 번이나 새야 하는데, 이렇게 힘들게 벌어서 사온 옷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마음에 안 들면 무슨 소용이람. 마음에 안 드는 옷은 손도 잘 안 가는데. 이걸 돈 주고 샀냐고, 그 돈 주고 샀냐고, 그런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모시고 백화점에 다시 갔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이것저것 입어보시더니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딱 어울리는 예쁜 코트를 골라내셨다.
“진작 같이 갔으면 이렇게 왔다 갔다 안 했잖아. 내가 자주 뭐 같이 하자는 것도 아닌데, 내가 가끔 데이트 신청하면 좀 받아주고 그래. ”
“그냥 집에 와서 누워라도 있지 뭘 이런 거를 사 온다고 그래. 우리 딸 힘들게 번 돈 이렇게 쓰는 것도 싫으니까 그렇지. ”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나 이 정도 움직이고 돌아다닐 체력 있고, 이런 거 가끔 살 정도로 돈도 벌어. 그리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더 나이 들기 전에 나랑 추억도 만들면 좋잖아. ”
하지만 이후로도 이런 일은 자주 있었다. 내가 어디 같이 놀러 가자 해도 싫다, 같이 먹으러 가자 해도 싫다, 뭔가 사다 드린다 해도 싫다고만 하셨다. 항상 그 시간에 너 쉬어,라는 배려인지 거절인지 알 수 없는 대답만 하셨다. 병원에 가고, 무슨 검사를 받고, 약을 먹어도 절대 먼저 말을 안 하셨다. 하물며 딸이 의사인데도. 너 걱정할까 봐 그랬지, 라면서.
꼭 소고기 먹으러 가는 거 아니고, 꼭 해외여행 가는 거 아니고, 꼭 명품 선물 해드리는 거 아니고, 그저 같이 동네 국숫집에서 국수 한 그릇에 나 어렸을 적 이야기도 하고, 같이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가끔은 미용실에서 나란히 앉아 파마도 해보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게 그렇게 좋대, 하면서 화장품 샘플도 나눠 쓰면서.
꽃 피면 꽃구경, 비 오면 비 구경, 눈 오면 눈 구경이나 같이 하자는 건데.
내가 당한 많은 거절과 나를 위한다고 숨겨왔던 부모님의 사정들이 내가 부모님께 다가가는 걸 어렵게 한다는 걸 알고 계실까. 언젠가 아빠가 술에 취하셔서는 동생에게 너네는 왜 여행도 한번 안 보내주냐고 하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근교 리조트를 예약하고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역시 또 싫다고 하셨다. 억지로라도 끌고 가시면 좋아하실까. 억지로 내가 졸라대서 만드는 추억 말고 서로 웃으며 흔쾌하게 주고받는 그런 추억을 만들고 싶은데.
며칠 전 어버이날이라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앞니가 없길래 여쭤봤더니, 임플란트를 하신단다. 나는 그것도 그제야 알았다.
내가 나쁜 사람이라, 내가 불효녀라 그런 걸까. 이런 유치한 생각에 마음 불편한 5월이다. 김할머니가 딸의 도움을 다정하게 받아들인 것처럼, 우리 부모님도 나의 진심을 조금 더 쉽게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효도는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일로 여겨졌지만, 사실 효도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거니까.
**제가 직접 진료실에서 겪은 일을 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주요 환자 정보는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사진출처는 픽사베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