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카지노 쿠폰 개인전 오프닝을 다녀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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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태어나서 처음 본 어른의 행동을 모방한다. 어린백조가 어른오리를 부모로 여기는 안데르센의 ‘미운 아기 오리’처럼. 사람 또한 다르지 않다. 태어나서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고, 학교에 가서는 선생과 선배의 말과 행동을 따라한다. 그래서 ‘먼저 선’ 선생과 선배란 개념과 말이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성인이 되어 직업세계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선생과 선배, 먼저 직업세계를 개척한 인물들은 그 직장과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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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는 유연하다. 인지신경언어학에서 ‘의미’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경험으로 우리의 기억이 재구성 되듯 우리 삶의 의미도 어디서 누굴 만나고 어떻게 함께하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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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다. 디자인을 처음 배울때, 배움의 방향을 상실했을때마다 윤호섭 선생님 곁에서 길을 잃지 않았고 삶의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아이콘인 안상수 선생님을 동경하며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감, 나아가 디자인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질 수 있었다. 백조 같은 두분이 계셨기에 미운 오리인 내가 그나마 백조같은 느낌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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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안상수 선생님의 개인전 오프닝에 다녀오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전시 구성과 작품도 인상적이었지만, 더욱 크게 다가온것은 오프닝의 풍경이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디자인 분야의 사람들. 안상수 선생님의 전시장 오프닝은 마치 한 분야의 동창회 같았다. 나는 많은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디자이너로서의 지난 20년이 스쳐갔다. 그렇다. 디자이너로서 나란 존재는 이 분야의 사람들 속에서 의미가 축적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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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의 품격은 그 분야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안상수 선생님이 걸어온 길, 한글, 이상, 타이포그래피, 파티, 퍼포먼스 등등 어제 전시에서 느낀 감각들, 전시장에서 만난 분들의 면면은 그 자체로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품격 그 자체였다. 나는 그 품격 속에서 다시금 디자인 백조를 동경하는 아기 오리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두근두근, 뭔가 삶이 새로 재구성되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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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윤호섭 선생님의 DDP 전시는 많은 환경운동가와 디자이너들이 오랜만에 서로 반갑게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안상수 선생님의 전시도 이제 그 자체로 전시 이상의 무언가가 된듯 싶다. 전시를 계기로 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연결되고, 자존감을 되찾고,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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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오며 새삼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한 분야를 개척하고 이끌어온 어른의 전시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한 분야를 일궈낸 어른의 작품은 그 분의 멋진 작업물만이 아니라 그 분이 일궈낸 그 분야의 ‘사람들’이란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