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세연 Mar 28. 2025

야구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자격이 있는 여자의 망한 연애 하나

야구 심판 자격만 있고 경력은 없는, 어느 작가의 통쾌한 인생 탈삼진기

야구 시즌이 되니, 문득 생각난 이야기가 있다.


며칠 전, 친구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는 그냥 인간 넷플릭스 그 자체야. 멜로 찍다가 느와르 찍고, 코미디에 액션, 미스터리, 공포, 그리고 감동 스포츠까지 다 있잖아. 그래서 네가 소설가가 된 건가?" 그렇다. 나는 정말 별별 걸 다 경험했다. 심지어 야구 심판까지. 나에게는 야구 심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12년이었다. 회사에서 몰컴 하다가 운명처럼 '야구심판학교 수강생 모집'을 발견했다. 이게 웬일인가? 그걸 보자마자 항상 생각만 하던 게 머릿속에 스쳤다. '그라운드를 밟고 싶다. 선수로 못 밟으면, 심판으로 밟지. 뭐.' 세상 모든 일은, 원래 이렇게 가볍게 시작하는 법이다.


직장인이던 나는 매주 금요일 조퇴를 했다.조퇴를 하고학교에 가서 3시간짜리 이론 수업을 들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기 수업을 했다. 진짜 열심히 했다. 추워서 동상에 걸릴 뻔도 했고, 공에 맞아 몸이 멍 투성이가 되기도 했고, 흙먼지가 눈에 들어가도 심판은 눈을 감으면 안 된다고 해서 온종일 눈을 부릅뜨고 다녔었다.


그렇게 이론 수업으로 야구룰을 달달 외웠고, 실기 수업에서는 뛰고 뒹굴기를 몇 달.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나는 대한민국에서 야구룰을 가장 잘 아는 여성 작가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나는 4기 야구심판학교 졸업생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웃픈건, 나에겐 야구심판 자격은 있지만 심판 경력은 전무하다는 거다. 이유는 웃기게도 사랑 때문이었다. 심판학교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정말 별로였다. 유독 나한테만 시비 거는 것 같고, 자꾸 뛰라고 시키고, 눈 감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키도 덩치도 엄청 커서 맹수 같았다. 으르렁거리다가 내 목덜미를 콱 물어버릴 것 같은 그런 남자였다.


그렇게 서로 으르렁 거렸는데, 어느 날그 남자의 의외성이 나를 심쿵하게 만들었고, 우린 혐오 관계에서 얼떨결에 사랑이라는 이상한 코스로 진입하게 된 거였다.하지만 그 사랑의 대가는 꽤나 특이했다. 그는 나에게 심판 활동을 하지 말라고 했다. 심지어 우리가 만난 곳이그 심판학교였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더 기가 막혔다.


"너무 튀어. 여자가 야구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왜 해?"


이게 무슨 조선시대 발언인가. 지금이라면, "뭔 소리야?"했겠지만 그때의 난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훨씬 멍청했다. 결국 그 남자가 좋으니까, 그의 말대로 조용히 얌전히 조신하게 지냈다. 내가 원했던, 그라운드에서 볼카운트를 세는 여자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 연애도 결국 끝났고, 그리고 나는 아주 명확하게 깨달았다.어쩌면사랑에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필요한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야구에는 룰이 존재한다. 심판도 있고, 비디오판독도 있다. 그런데 사랑은 다르다.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없고, 리플레이가 가능한 비디오판독도 없다. 그냥 아무렇게나 날아오는 변화구를 알아서 잘 피해야 하는 게임이다. 빈볼이라도 맞으면 한동안 계속 아프다.


심판 없는 사랑 때문에 오리지널 버전의나를 죽이고, 리버스 버전의나로 살았던 그 시기 때문인지 그날 이후로 나는 하고 싶은 건 꼭 하려고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내 인생이 복합장르물이 된 것이다. 심판을 하지 못한 내 인생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인생은 마치 그라운드 위에 오른 선수와 같다. 이왕 타석에 선 거, 헛스윙을 하더라도 시원하게 휘둘러보는 거다. 그러다 운 좋으면 홈런 날리고 박수받는 거고, 삼진 당하면 다음 타석에 잘 치면 된다.그러니까 우리, 하고 싶은 건 일단 다 해보고 삽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