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의 연수를 다녀와서
1.
2008년에 발령을 받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좋은 국어교사가 되고 싶었다. 수업을 잘해서 인정받고 싶었다. 신규 교사니까 당연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당연한 게 아니었다고 지금은 안)다.
생각보다 수업에 관해 고민을 나눌 사람이 학교에는 없었고, 그렇게 찾은 곳이 부산국어교사 모임이었다. 면허도 없던 시절이라 월요일 저녁이면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시청역까지 갔고, 열 시쯤 공부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곤 했다.
특별한 수업 방법을 배웠던 것은 아니다. 나의 수업 고민, 망한 수업 경험을 털어놓을 뿐인데 돌아오는 길에는 왠지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겨 신기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을 끊은 것은 월요일 저녁 왕복 두 시간이 넘는 외출이 부담스러웠기도 했고,
나의 관심사가 수업보다는 개인적인 일에 치우쳤기 때문이라고 기억한다. (그때쯤 빡시게 연애하고, 결혼을 했다)
여름과 겨울에 한 차례씩 전국의 국어교사가 신청해 모이는 연수에만드문드문 참석하다가 광주에서의 여름 연수였던가. 총 2박 3일의 여정에서 2박을 채우지 못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도망 와 버렸다.
어린 아들이 보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정말 그 이유뿐이었을까 생각하면....
어느 순간 연수에 온 선생님들에게 배우고 의지하기보다 비교가 되기 시작했다. 저 선생님이 저렇게 성장할 동안 온라인 카지노 게임 뭐 했지, 하는 생각. 맨날 연수 들으면 뭐 하나, 수업은 그때그때 되는 대로 하게 될 텐데. 좋은 수업 방법을 모르면 몰라, 알면서도 못하는 기분은 더 별로였다.
사실은 부산국어교사모임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너무 멋진 선생님들이 많은 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나는 나대로 부족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많이 헤매었고,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 나이를 먹었다.
육아휴직과 병휴직을 번갈아 하며 학교를 떠나있는동안, 내 마음이 사실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았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니었고,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지, 왜 인정받아야만 하는지 스스로 답할 수 없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사춘기처럼, 육아를 도와주는 엄마를 향해 화를 쏟아내기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면서 나의 인정욕구가 어떤 결핍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편해졌느냐, 하면 이번에 참여한 전국모 겨울 연수에서 '비교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는 못한다.
역시 선생님들 너무 멋지고 왕 대단하시다. 강사로 오신 분들만이 아니다. 모둠 토의로 짧게 의견을 나눈 선생님들, 같은 방을 쓰며 새벽 2시까지 함께 밤막걸리를 마신 선생님들, 연차가 적은 선생님, 많은 선생님, 대공연장에서 함께 연극을 보고 강연을 들은 선생님들 모두 모두 자기만의 멋짐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 평균의 합이 자기 자신이라던데, 그렇다면 나도 한 멋짐 하는 사람이려나.
2.
유난히 즐겁게 참여한 겨울 연수였다.
특히그림자 소설 수업으로 유명하신김제식 선생님을 만나고 반짝반짝하는 눈빛으로 수업을 들었다.
제식선생님은 자기소개부터 강의까지 나의 거울을 보는 느낌이었다. INFP라더니, 앉아 있는 선생님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시고, 하던 말씀 삼천포로 빠졌다가 "제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죠?" 하는 대사, 허리 아파서 뒤에 자주 서 계시는 것까지 아주 나와 똑닮이었다.
정신 분석학에서 강조하는 '들어주기'와 '드러내기'를 이론적 뼈대 삼아 아이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풀어쓰는 과정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 삶을 치유해 나가는 수업이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선생님 스스로 사비 천오백만 원을 들여 정신과 상담을 받으셨고, 그 과정에서 정혜신 선생님 도움을 크게 받으셨으며, 마침내 당신의 무의식을 만나셨다고 한다. 그동안 당신 안에 가득했던 '인정욕구'를 이제는 많이 내려놓으셨다고.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버리는 선생님들을 보며 교사와 학생의 '겪은 일 쓰기' 필요성을 더욱 절박하게 느끼신다고도 했다.
나만 빼고 다들 김제식 선생님의 그림자 소설 수업을 아는 듯했다. 연수가 끝나면 꼭 찾아봐야지 했는데 13분반 단톡에 선생님께서 자료를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더 감사한 일은, 연수는 끝났지만 13분반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교실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단톡에서 간간이, 꾸준히 이어지는 '겪은 일 쓰기'에 대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소통은 자꾸만 나를 들여다보게 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이 없다는 말, '나'란 뭘까라고 묻는다면 답은 '감정'이라는 것, 그렇다면 나는 내 감정을 얼마나 잘 알고 가까운가 하는 성찰이 이어지는 요즘이다.
내 감정을 우선으로 해야지 해놓고, 내 새끼들이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지 살피느라 여념이 없다. 내 아이들만큼은 자기 자신으로 살게 해야지 하고 꾸준히 다짐하는데, 내 감정도 좀 더 살펴야겠다.
3.
저 사람들이 저렇게 성장하는 동안 나는 뭐 했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뭐 하긴, 애 낳고 키웠지! 하고 변명을 하곤 한다. 그러고는 더 크게 자괴감을 느낀다.
아마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걸? 하고 위로를 했다가, '으이구, 못났다~' 하기도 한다.
이제는 너무너무 멋진 사람을 만났을 때,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을 열심히 하기로 한다.
내가 최고라면 더 이상 배울 사람이 없을 텐데, 최고인 사람 옆에서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공부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
나는 이제 공부하는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남아 즐겁게 공부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