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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Feb 27. 2025

카지노 게임으로 극복할 수 없어
【페인 앤 글로리】

Pain & Glory

72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


카지노 게임: 영화감독

마르셀로: 카지노 게임의 옛연인

알베르토: 카지노 게임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살바도르는 영화감독으로 성공했지만 그만큼의 고통을 안게 된다. 영광 뒤에 따라오는 고통은 그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살바도르의 어린 시절을 계속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뇌인성 천식, 좌골 신경통, 귓병, 이명, 근육통, 어깨건염, 군발성두통, 우울증.카지노 게임가 앓고 있는 병명을 추린 것이다.


살바도르가 만든 영화가 리마스터링 되어 개봉한다. 상영이 끝난 후 감독과의 인터뷰가 계획되어 있다. 살바도르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그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알베르토와 함께 있다. 극장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과 전화 연결이 된다. 말을 하다 갑자기 그때 주연 배우인 알베르토가 연기할 때 헤로인을 하고 있었다는 충격 발언을 한다. 알베르토가 안 한다고 약속하고 헤로인을 한 것에 대해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말해버렸다. 이후 알베르토와 언쟁을 벌인다.


둘은 원수처럼 지내지만 ‘중독’이라는 작품으로 관계가 회복된다. 카지노 게임의 자전적인 내용을 1인극으로 무대에 올린다. 둘은 연극을 매개로 다시 관계가 이어지고 헤로인을 함께 피운다.


‘영화를 못 찍는다면 내 인생은 의미가 없어’


살바도르는 1981년 마르셀로를 만나 카지노 게임한다. 둘은 동성연애자다.마르셀로는 헤로인을 한다. 중독을 극복해보려고 둘은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카지노 게임이 그의 중독을 이기기에는 부족하다. 극 중 주인공은 자신과 떨어져야만 마르셀로가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독백 연극이다.


연극이 끝나고 친숙한 관객 마르셀로가 있다고 알베르토가 카지노 게임에게 알려준다. 마르셀로는 우연히 극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마르셀로는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한다. 집 앞에서 전화하는 것을 집안에서 보고 있는 카지노 게임. 마르셀로는 헤로인이 없는 아르헨티나로 가 결혼도 한다. 아들 둘을 낳고 살다 지금은 이혼조정중이다. 따로 만나는 다른 사람도 있다.세월이 한참 흘러 우연히 극장에 들어온 것이다.




옛 연인을 만나 다시 만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본다. “여자야? 남자야?”라고 물어보는 장면이 인상 깊다. 양성애자에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니 이상할 것도 없다. 둘은 쿨하게 헤어진다. 한때 카지노 게임했던 사람이지만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헤어진다. 아르헨티나에 놀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마르셀로는 떠난다.

“나와 떨어져야 마르셀로가 구원받을 것 같았어,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할까?”


‘카지노 게임하는 이를 구하기에 카지노 게임만으로는 부족했다.’는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카지노 게임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우리의 카지노 게임은 위대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그 힘이 미미하기도 하다. 카지노 게임하는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며 도와주고 싶지만 그에게 타인일 수 밖에 없다.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어른이 되면 더욱 카지노 게임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 되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하지만 헤어지는 연인들이 생긴다. 삶은 곧 카지노 게임이라고 말할 수 도 있지만 우리 삶을 이루는 요소는 카지노 게임 외에도 많기 때문이다. 삶의 고갱은 카지노 게임이지만 그 외의 것들이 우리 삶을 차지한다.


나의 존재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때, 그를 떠나보내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질 때 고통을 무릅쓰고 이별을 택하게 된다. 카지노 게임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이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로 미워할 때까지 기다리면 카지노 게임마저 미움으로 변해버린다.


살바도르와 마르셀로도 적당한 시기에 안녕을 고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한 사람은 아내와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린다. 또 다른 사람은 질병에 고통받으며 삶을 겨우겨우 이어간다. 누구 하나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절감하며 살아간다. 카지노 게임이 전부가 아님을 알지만 끊임 없이 희구한다.



살바도르는 매니저에게 많은 것을 일임하고 조용히 글을 쓰며 칩거한다. 그의 집, 의상, 영화의 도입부에서 그의 질병을 설명해주는 그래픽이 유니크하다. 무채색 계열의 옷을 많이 입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칼라 전시라도 하듯 그의 공간과 의상은 화려하다. 각각의 색이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잘 어우러져 보는 내내 즐겁다. 화려함 속에 우울함이라니.


세련되고 다채로운 인테리어의 공간 속에서 헤로인으로 두통의 고통 속을 벗어나는 우울한 카지노 게임. 차라리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행복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그는 어린 시절 똑똑해서 글을 일찍 깨우쳤다. 글을 모르는 석공에게 대신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석공은 카지노 게임의 동굴 속 집 벽을 페인트 칠해주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글을 가르치고 친하게 지낸다. 석공은 어느 날 어린 카지노 게임를 그린다. 골판지 뒷면에 캐리커쳐 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우연치고는 기묘하게 이 그림이 카지노 게임의 손에 들어온다. 그림 뒤에 편지가 있다. ‘글과 수를 가르쳐주어서 고맙다’고 주소까지 알려준다.


그래서일까, 자포자기 식으로 포기했던 몸을 다시 살리기 위해 살바도르는 병원을 찾는다. 어떻게 지금까지 고통을 참았냐는 의사에게 다른 약으로 잘 처방해달라고 부탁한다. 헤로인도 끊으려 노력하며 다시 영화를 찍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가 끝나니 스토리보다 화려한 색감이 머릿속에 정돈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비비드하다.


일러스트: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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