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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Jan 08. 2025

작가님, 선생님... 그리고 카지노 가입 쿠폰!

호칭에 대하여.

이십 대 후반 처음 글작업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 주변에선 나를 "작가님"이라 불렀다.

실제론 보조작가였을 때도 굳이 "누구누구보조작가님" 이런 식으로 구분해 부르지는 않으니 그냥 "OO씨". 아니면 "작가님"이었는데...


그 탓일까. 남이 그렇게 불러주니 나도 내가 작가인 줄 알고 산 세월이 제법 길다.

일이 없어 놀 때도 어디 가면 꼭 나는 나를 작가라고 소개했고, 출입국 신고서에도 꼭 "Writer" 라고 적곤 했는데...


그러다 결혼을 했다. 그랬더니 간혹 들어오던 일도 뚝 끊겨, 더이상 작가라고 우길래야 우길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이때부터 나는 나를 "작가" 대신 "늙은신혼아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늙은신혼아내는 직업도 직위도 아니지만, 뒤늦게 결혼에 성공한 모태솔로 출신 (전직)로맨스작가 나는, 그 어떤 호칭이나 타이틀보다 나를 집약해 설명할 수 있는 이 말이 참 좋았다.


그런데 늙은신혼아내는 직업이 아녔다. 돈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만 나를 그렇게 소개할 뿐, 정작 나를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유튜버가 됐더라면...?)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이제 더이상 신혼 아내가 아니다.

게다가 나는 아이가 없는 관계로 "누구누구의 엄마"도 아니다.

직장에선 팀장님, 집에선 누구누구 엄마이자 아내 등으로 불리우는 보통의 또래들과 비교하면, 내가 가진 거라곤 내 이름 석자 밖엔 없는데...


동네 초등 독서&논술 학원에 나가기 시작하자, 이번엔 아이들이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 대학에서 강사로 일할 때, 갓 대학생이 된 1학년생 한 명이 나를 교수님 대신 "선생님"이라 불러놓곤 혼자 겸연쩍어 하던 일이 있었는데 (참고로 강사였던 나는 교수님보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듣기엔 더 편했다), 그때 이후로 선생님 소리를 들어본 건 5,6년 만이다.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내가 그 교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럼없이 나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도리어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학원을 관두는 순간까지도 나에게 이름을 물어보거나 나를 이름으로 부른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는데. 그냥 나는 "선생님"일 뿐이었는데...


(학원 강사 일을 짧게 하고 그만둔 경위는 차차 풀어낼 예정)


학원을 관두고 한 달여를 쉬면서 당근 알바를 뒤적이다가 이번에 내가 찾은 일은 유치원 급식 알바다.

정확히는 방학 동안 위탁 급식을 하는 업체에 고용되어 아이들에게 급식을 배식해 주는 일이다.

그러자 지난 달엔 "선생님"으로 불리던 내가 갑자기 "카지노 가입 쿠폰"이 됐다.

매일 아침 급식을 차에 싣고 가져다 주시는 업체의 기사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첫 날 나에게 대뜸,


"카지노 가입 쿠폰~"


"카지노 가입 쿠폰, 그렇게 하시면 안돼요!" "카지노 가입 쿠폰, 이건 이렇게 하셔야 돼요." "카지노 가입 쿠폰, 수고하셨어요." 등등.

기분이 묘했다.

간혹 마트에서 일하는 주부 사원을 주변에서 "여사님"으로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내가 바로 그 여사님이 될 줄이야...

마트 카지노 가입 쿠폰, 주방 카지노 가입 쿠폰, 그리고 나는 급식 카지노 가입 쿠폰...

그러고보면 주변에 직업도 아닌 일을 직위도 없이 하는 비정규직 주부들은 다 여사님인 것 같다.

어리고 젊을 땐 보통 "학생"으로 불리운다. 그런데 더이상 학생으로 불리울 수 없는 나이가 되면, 학생 대신 "카지노 가입 쿠폰"이 되는 것인지…?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비정규직인 걸로 한 번, 그리고 나이듦으로 또 한 번, 생각해보면 사람을 두 번 죽이는 호칭이라니까?"


지나가는 말로, 우스개소리처럼 떠든 말이긴 하지만

솔직하 카지노 가입 쿠폰 소리가 듣기 좋은 건 아니다.

기사님이 조금만 덜 친철했더라면, 제발 그 호칭은 좀 하지 말아달라고 쏘아 붙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무나 친절한 분의 존중과 호의가 가득 담긴 표현인 걸 알기에, 오늘도 나는 급식 카지노 가입 쿠폰으로 두 시간 반을 지내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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