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리꾸러 기러꾸와 오너드라이버사이
연식이 느껴지는 제목의 향기
그렇다.
'그 언저리즈음의 나이겠구나'싶은 바로 그 나이로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꾸러기'라는 말도 들어본 지 오래이다. 누가 말했듯 언어란 생물과 같아서 마다마다의 수명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꾸러기 시절의 나는 빨리 30대가 되고 싶었다. 막연히 30대가 되면 적당함에서 조금 넘치는 월급과 직급, 멋있는 옷을 걸쳐 입고 반짝거리는 차 한 대쯤 사서 한 손으로 핸들 돌리며 온 세상을 누비고 다닐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말하자면 씨는 하나도 뿌리지 않은 채 활짝 핀 꽃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슬픈 사실은내가 씨를 하나도 뿌리지 않았음을 30대가 끝나갈 무렵에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 시절에는 카지노 게임가 운전할 수 있는 집은 매우 드물었다. 학원라이딩은 카지노 게임들이 도맡아 하는 요즘의 일상과는 꽤나 달랐다. 나의 감성과는 맞지 않는 네이비와 블루의 중간쯤인 어중간한 컬러의 프레스토 조수석에 앉아 카지노 게임와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카지노 게임의 올드팝 셀렉션을 들으면서 바깥 풍경을 보는 시간들이 내내 즐거웠다.
그렇게 드라이브를 좋아했던 내가 운전대 한번 못 잡고 조수석에서만 나이를 먹어 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20대가 되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운전면허는 땄지만 30년 가까이 그 면허증의 쓰임새라는 것은 주민등록증을 대신하는 신분증일 뿐. 본의 아니게 얻게 된 무사고, 무위반 기록은 더욱 이 세상에서의 현실미를 떨어뜨린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손에 넣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일들이 알고 보니 꽤나 많은 과정과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만 할 수 있게 된다는 당연한 이치를 너무 늦게 깨달았나 싶을 때가 많이 있다. 항상 김치를 밥그릇으로 옮겨와 젓가락을 한 짝씩 양손에 쥐고 반씩 갈라 먹으면 식탁 저편에서 한 손으로 척척 김치를 반으로 갈라서 밥 위에 착 얹어서 드시던 카지노 게임의 모습이 그렇게 큰 카지노 게임처럼 느껴졌었다. 나도 카지노 게임가 되면 김치를 한 손으로 척척 젓가락으로 찢어먹을 수 있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가 된 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도 김치를 한 손으로 찢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훌륭한 카지노 게임이 되는 줄 알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각종 고급 스킬들이 몸에 착착 달라붙어 나를 능력자로 점프업 시켜주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얻은 특별한 스킬이라는 것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누구와 닮았는지 타인에게 비교적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 한 가지뿐이다.
"그 사람은 얼굴이 가수 이**와 배우 김**을 섞어 2로 나눈 얼굴이야!"
이쯤 되면 모두 눈치챘을 것이다.
이 스킬은 세상 살아가는데 1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심지어 가까운 인간관계에서도.
나는 아이에게 어떤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지 가끔 생각해 본다.
아이를 조수석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떠날 일은 평생 없겠지만 문득 밤에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아니면 깻잎을 잔뜩 얹은 떡볶이를 먹으며 아이는 나를 추억해 줄까? 길가의 따릉이를 보면 공룡헬멧을 쓰고 카지노 게임 뒤를 쫓아 한강변을 달리며 보던 카지노 게임의 등이 생각날까? 아니면 숙제하라고! 씻으라고! 치우라고! 소리쳤던 눈 찢어진 카지노 게임만이 남아있을까.
그 모두가 너의 카지노 게임에 대한 기억이겠지만 아주 가끔은 애틋하게 추억해 주길.
비록 김치는 한 손으로 못 찢었지만 두 손 가득 너에게 애정을 부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