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와 연금술 사이
초등학생이었던가 막내이모는 사주책을 보며 나의 운세는 대기만성형이라고 알려주었다. '대기만성'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의 청춘이 무지갯빛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청춘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지나고 50대가 코 앞인데 대기(大器)도 만성(晩成)도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기만성대신 나의 정신과 육체를 사로잡은 것은 '노화'이다. 이렇게 빨리 노화가 진행된다면 대기만성이 이루어진 들 마음껏 누릴 수 있겠는가 싶을 정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안과에서 노안이 있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 생경한 단어를 내 안에서 소화시키기가 그렇게 어려웠었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났을 때의 일카지노 게임. 친구는 안경을 낀 채 휴대폰을 자유롭게 보고 있었다. 나는 이미 선글라스도 아닌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고 노안을 뽐내며 휴대폰을 본 지 제법 되었다. 친구의 휴대폰 화면을 보니 글자크기가 내 화면의 두 배였다.
헙!
이건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놀라움과 감탄, 그리고 깨달음이 있었다. 글자크기를 키울 것인가,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릴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내 사진첩에 점유율을 높여만 가는 꽃사진들과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는 종잇장 같은 몸뚱이. 노안이 심해서인지 귀도 더 안 들리는 요즈음. 더구나 성격은 점점 급해져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보이면 가방 먼저 던지시는 어르신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슬프다고 해야 할지 포용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 생각이라는 것이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빠르게 구현되는 신비로운 세계에 진입했다. 어떤 때는 뿌옇게 생각만 한 것이 행동이 먼저 튀어나올 때도 있어 놀라기도 한다.
효율성을 위해서인지 순서를 건너뛰기도 일쑤카지노 게임. 얼마 전 은행에서의 일카지노 게임. 아무리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번호표를 뽑고 바로 버려버린 적도 있다.
과연 나는 몇 번이었는가.
기억은 나지 않고 번호표는 잘게 찢어 휴지통에 넣어버렸다. (셀프벌칙게임인가?)
거기에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들의 노화 또한 나를 전면적으로 공격한다. "파스타라면 크림소스죠. 치즈 잔뜩 뿌려주시고요!" 라며 느끼함만을 추구하던 식습관은 점점 '로제소스'로 탈바꿈했다. 기초대사량도 현저히 떨어져 한 끼만 굶으면 그럭저럭 몸무게가 다시 돌아가던 시절도 이제 저 멀리 떠나갔다. 한, 두 끼 정도 굶는다 한들 나의 체중은 소신 있고 뚝심 있다. 그렇게 잘 먹던 밥도 때로는 속이 거북해 더 이상 먹지 못할 때가 있다. 이렇게 맛난 음식이 넘치는 세상에 소화도 잘 못시키는 몸이 되다니 더 없는 슬픔이 한없이 밀려온다.
하나하나 복기해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이지만 여전히 카지노 게임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든 잘하려다 넘어졌을 때도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나는 '카지노 게임'에 기대어 살아왔다. 결국 잘되지 않겠냐며 스윽스윽 제 손으로 토닥이며 말이다.
때로는 근거 없는 믿음이 다시 시작할 용기가 되기도 한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늘었으니까라고 나를 다독이며 어쩌면 오지 않을 카지노 게임을 또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