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22
어제 기온을 생각하고 얇고 하늘하늘한 봄 원피스를 입었다. 비가 오므로 생활방수 되는 트렌치코트를 그 위에 입었다. 현관문을 나서자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날씨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 기분 좋게 걸었다. 시계를 보니 8시 40분. 헉! 늦었다. 그런데 오늘은 뛰고 싶지 않았다. 늦으면 늦는 거지 죽고 살 일이 아니므로 걷는 속도대로 갔다. 버스에 타고 하던 대로 짠테크를 했다. 휴대폰에 정신 팔려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내려야 할 정류장이 벌써 다음이다. 시계를 봤다. 55분. 어머나! 잘하면 지각하지 않을 시간이다. 버스는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나를 57분에 내려줬다. 이러면 안 뛸 수가 없다. '늦을 테면늦으라지'하는 마음이었는데 우연히 제시간에 출근하다니 행운이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는데 퇴근할 때는 그쳤다. 퇴근길에 만난 직원이 우산 든 나에게 "지금 비 안 와요"라고 말해서 알았다. 비 온 뒤 특유의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우산을 쓰지 않아 걷기 편했다. 오늘 저녁은 무료 카지노 게임모임 멤버들과 저녁을 먹는 날이다. 버스 타고 다른 동네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비가 오지 않아 한결 가벼운 마음이다.
작년 이맘때,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후배 남자 팀장 D, 그와 친한 H와 T에게 저녁을 산 적 있다. 그때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회사 이슈를 두고 내기를 했다. 2:2로 나누어서 지는 쪽이 고기를 사기로 했다. 첫 판은 내가 졌다. 나와한편이었던 T와 반반 부담하고 소고기를 샀다. 그 자리에서 회사 이슈를 두고 또 내기를 했다. 세 명이 나와 다른 의견이었는데 내기 성립을 위해 D가 나와 한 편이 되기로 했다. 두 번째도 졌다. 내 예측이 틀렸지만 결과가 마음에 들어 기분 좋게 샀다. 맛있는 고깃집에서 재미난 시간을 보낸 우리는 다음번 내기를 뭐로 할지 정하기로 했다. 한 번도 지지 않은 H가 특히 신나 했다. 회사 이슈는 너무 예측 가능한 것들이어서 대통령 탄핵 결과를 두고 무료 카지노 게임했다. '만장일치다, 아니다'를 놓고. 하도 정국이 어수선할 때라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이쯤 되자 모임이 자연스레 '무료 카지노 게임모임'이 되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는 날 숨죽여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내기에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만장일치로 인용되었을 때 박수를 쳤다. 세 번째 판에서 이긴 거다. 그 결과로 오늘 저녁을 얻어먹었다. 역시 얻어먹는 일은 참 즐겁다. 요리사가 주는 대로 먹는 곳으로 갔다. 메뉴 없는 곳. 이모카세가 아니라 삼촌카세. 익히 아는 집인데 코로나 이전에 가고 처음 갔다. 음식솜씨가 여전했다. 나와 한편이었던 H는 불패 기록을 세웠다.세 명이 돌아가면서 졌는데. 우리는 다음 내기를 또 했다. 다시 결과 예측이 어려운 회사 이슈를 두고 내기했다. 희망하는 결과는 넷이 똑같았지만, 예측 의견은 갈렸다. 작년 이맘때 같은 이슈로 내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그때와 반대 의견을 냈다. 혹여 지더라도 기분 좋게 살 수 있도록. 두 번째 내기처럼 세 명의 의견은 같았으나 내기 성립을 위해 H가 나와한 편이 되기로 했다. 불패 기록 중인 H의 운빨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져야 더 좋은 무료 카지노 게임다.
무료 카지노 게임모임은 스트레스받고 재미를 찾기 어려운 회사생활에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친해도 같이 밥 먹는 날짜를 잡기가 어려운데 이런 핑계로 제법 자주 모이게 된다. 더구나 술 잘 마시는 후배들 틈에서 술 안 먹고 어울릴 수 있어 더 좋다. 얘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때문에 식당 문을 닫지 못하는 사장님을 위해 서둘러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로등과 흰 구름으로 밤하늘이 환히 보였다. 그제야 하루 종일 하늘 사진을 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비 오는 날이라 찍어봐야 희뿌연 하늘일 거라 짐작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밤길 올려다본 하늘은 비가 개어 맑았고,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어 미소가 지어졌다.